말년이라는 것은 사회 내에 안착함으로써 얻게 되는 많은 보상들을 얻기에는 늦었다는(그리고 이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그런 보상에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쉽게 읽히고 이해되는 것도 포함된다. 44


말년성은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것에서 벗어나는 자발적 망명이며, 그것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 살아남는 것이다. 38


화해되지 않은 개인의 비판적 사고는 "저항의 힘"을 드러낸다..."자신의 양심을 외면하지 않고, 겁에 질려 원치 않는 행동을 하지도 않는 비타협적인 비판적 사상가는 바로 굴복하지 않는 자이다." 침묵과 균열로 작업한다는 것은 포장과 관리를 피한다는 것이며, 사실상 자신의 말년성 지위를 수락하고 수행한다는 뜻이다. 37


슈트라우스를 이해하는 것은 "잡음 아래에 깔린 웅얼거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 음악에서 스스로를 찬양하고 있는 삶은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도르노는 "몰락에도 필멸 이상의 무언가의 흔적이, 해체로도 소멸시킬 수 없는 경험이 존재한다"고 끝맺는다. 54


당신네들이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동안 나는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경험에 경의를 표하게."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묘비명으로 적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모두들 그의 말에 동의한다. 70

 

주네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반항과 열정, 죽음과 재생이 서로 긴밀하게 얽힌 곳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그의 독특한 감수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18

 

[프루스트를 위하여] - '재능 때문이든 몸이 약해서든 유복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들이 예술가나 학자 같은 소위 지적인 직업을 갖게 되면, 동료라는 혐오스러운 타이틀을 단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몹시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그의 재산을 질투하거나 그의 진지한 의도를 불신하고, 그를 기득권층이 은밀하게 보낸 사절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는 뜻만이 아니다. 그 같은 의심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적개심에서 비롯되지만 보통은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정신적인 일에 종사한다는 것은 이제 '실제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노동과 부서가 엄격하게 분업화되고 인원이 제한을 받는 비지니스가 된 것이다. 돈 버는 일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정신적 직종을 택한, 재산이 넉넉한 사람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는 벌을 받는다. 그는 '전문 직업인'이 아니며, 자신이 다루는 주제를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경쟁의 서열레서 딜레탕트밖에 안 된다. 그래서 그가 경력을 이어가려면 자신이 어떤 완고한 전문가보다 더 고집스럽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미니아 모랄리아 첫 에세이

 

 


 

 위대한 시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내가 꼽는 한 기준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갱신과 변모의 정신이다. 시인에게 물리적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원로’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나이 들수록 “털을 곤두서게 하고 까다롭고 가차 없는, 심지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도전”(에드워드 사이드)을 감행하는 성취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는 시인으로서는 죽은 것이다. 시인은 오직 자기 자신과만 경쟁한다(오길영 한겨레 9.13)

<오리엔탈리즘>의 작가(에드워드 사이드)가 변명하고 있소. 바로 그것이 ‘말년의 양식’이라고. 아도르노와 더불어 망명객 출신이자 67세에 죽어 만년 축에 가본 적 없는 이 문명사가는 <말년의 양식>(2005)에서 힘주어 말했소. 생애의 후기에 예술가는 자신의 지금까지의 일과 시대의 관습과도 다른 기묘한 작풍을 드러내어 최후까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라고. 그것이 훗날 역사의 소중한 부분이 된다 (김윤식 문학산책 2012. 3.4 )

 

 

뱀발.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모임에서 논의한 [지식인의 표상] 뒤에 이 [말년의 양식]에 대한 소개를 신문과 책을 통해 되돌려 받는다. 며칠 전 차수리를 맡기고 남는 시간 동아일보를 보다가 난, 한기자의 김지하 취재기사를 보았다. 그 여기자는 김지하가 취재기사를 몇군데 밖에 수정하지 않는 넓은 아량을 보여주었다고  쓰고 있었다. 말년이란 무엇일까?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말년은 분명 그것이 아닌 듯하였다. 끊임없이 작품활동에 전념하는 고은시인을 말하는 것 같지도 않는 생각이 들었다. 늙는다는 것, 원로라는 것 이 모든 것, 우리의 상식은 이 말년을 비껴가는 듯하다. 아직 남은 장들을 살피고 있다. 노년의 역사를 읽다가 멈춘 [말년] 과 [양식]에 서성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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