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문득 그런 불순한 생각이 스며든 것일까?  그녀들을 지켜본지가 꽤나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모임자리마다 깊어지지 않고 배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런 불순한 생각이 가끔 까끌하게 돋아올라와도 내리누른다. 잘못 본 것이겠지? 예단하면 되지 않는데... ...


 

그녀들이란 괄호안에 나를 집어 넣어본다.  집도 있고 아이들도 크고, 아직도 몸에 붙지 않은 집, 갖출 건 다 갖춘 이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나 있는 것인지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돈을 벌고 쓰는 규모는 알 수도 없고 알려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 되었으니 미루어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진보를 쇼울처럼 치장하거나,  까다로운 소비를 통해 다른 이들과 구별짓기를 하는 이들의 자연스러움이 목에 넘기기엔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몸은 의도와 상관없이 일상에 익숙해 있거나 절어있는 습속들이 비슷하여 또 한패가 아니던가하고 뜨끔해지는 것이다.

 

진보를 자랑거리로 삼아서 장삼이사와 다르다는 용도로 쓰는 순간 안타깝게도 의도는 사라진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가져가지 않고, 구별과 차별의 용도로 소비하는 순간 손가락질하는 이들과 달라질 것이 없다.

 

이미 기득권자가 되어있음을 안다. 거느린 자식들의 삶에 연연해하지 않지만 연연한다. 인문학의 자산만이 버텨줄 공간을 준다.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취직도 못한다는 절박이 부모들을 이 경쟁에 목매이게 한다는 사실도 안다. 그 내성이 생긴 인문의 폭만큼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을 여유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지금보다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번 것과 쓰는 것에 대해 서로 투명해질 수 있을까? 교육열과 교육비의 격차를 서로 허심탄회하게 나눠 얘기할 수 있을까? 모임의 살림살이를 조금이라도 삶의 결 속에서 얘기를 나누어 볼 수 있을까? 모두 허물이 있음을 알고, 그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가며 기댈 수 있을까? 일상의 세세한 결을 나누고 논쟁하고 토론해나가는 방법은 없을까? 

 

진보란 쇼울을 내려놓고...일상을 터 놓고 진지해질 수 있을까? 괜한 생각이 걸려 이제서야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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