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너를 탐하면서부터이다. 님에게로 가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길이 너란 걸 말이다. 저릿저릿 스며드는 너를 갖게되면서 불편하다. 그러나 너는 차별도 차등도 두지 않아, 저 지구 한바퀴를 안을 수 있는 말은 너밖에 없다. 저 마음의 끝과 디뎌온 역사의 보폭을 느낄 수 있게 해줘 고맙다. 너를 헤아리는 순간, 네가 읽히는 순간 네가 내뫔 속 어딘가 꿈틀거린다.  너로 가는 길 너로 가는 길목, 너가 되는 교각이다

 

 

앎과느낌 

 

 앎과 함에 갇히면 느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느낌은 그렇다고 온전히 머무름에서 오지 않는다. 함과 앎의 온기가 가시지 않고 남아있을 무렵, 며칠이든 몇달이든 차고 기울도록 마음도 몸도 열어둘 때야 조금 조금 기웃기웃 하는 것이다. 너무 기댈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기엔 아쉽다. 유대의 밑절미가 되기도 하기때문이다. 앎과 함, 그것을 벼리게 하거나 또 다른 깊은 맛을 보게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삶 

 

 삶을 얘기할 수 있을까? 동물처럼, 짐승처럼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조건을 공유하고, 세상이 삶에 말걸 수 있을까? 작은 울타리로 그래도 삶의 조건이 가혹하더라도 삶을 나눌 수 있을까? 머리 속, 생각 속에서 벗어나 삶을 그래도 조금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삶을 이야기하고 나누는 농도가 진해질 수 있을까? 공동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스러우면서도 일상의 합, 일상의 곱인 삶이 곁에 와서 친할 수 있을까? 막연함이 아니라 조금 더 세세함이나 예민함이 스며드는 삶을 나눌 수 있을까? 철학의 머리말이 아니라 가슴을 적시고, 마음과 몸에 남고 육화된 몸말로 생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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