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음

 

 

사람들은 마음에 실체가 있느냐고 묻는다. 마음에 달렸다라는 말처럼 관념론에 기반한 사고때문에 그 마음이 오해를 받는 것은 아닌가 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현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일에 열정을 기울이거나 시간에 대한 맷집으로 드러내놓기 때문이다. 논리나 이성, 토론, 논쟁의 자리에서 사람들은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분간하려 애를 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의견의 바닥에 깔린 마음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늘 진심은 시간에 바래면서 제 모습을 드러내놓는 이유이다. 진위의 자리에 이 마음은 기웃거리고 드러내놓지 못해 상황을 딛고서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객관적인 사실이나 논리보다 마음이 더 유물론에 가깝다고 여긴다.  이런 바탕때문에 지금여기의 진보를 믿지 못하는 이유로 마음을 든다.

 

 논리와 이성에 얽매여 마음은 분주하기만 하다. 반짝 눈빛에 감도는 따듯한 마음은 어느 새 해야할 일에 얽매여 마음은 그 사람밖에서 어슬렁거린다. 마음을 모으고, 마음을 어루만지며, 마음을 키울 수 없다. 그 마음은 벌써 여기저기 바쁘게 쫓아가기만 하여 잡을 수 없다. 마음은 끊임없이 갈라서며 마음 모으는 일들 사이 산길에 돌탑처럼 아무것도 쌓이는 것이 없다. 마음은 없고 갈길만 있어 늘 그 자리다. 마음 주는 이들은 많지만 마음이 맞춰지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고 언제 시간에 무르익어 마음이 우연히 딱 맞는 날이 있을거기 때문이다.  이론이나 사명감, 논리보다 마음을 살핀다면 분명 진보의 걸음걸이와 뒷모습이 달라질텐데 말이다. 보무도 당당하게...

 

 

모 임 

 

하나가 아니라 둘, 둘이 아니라 셋. 모임은 연애보다 사랑보다 어려우리라. 왜 둘만이 아니라 셋이상을 지향하는 그 몸말때문이다.  사실 마음이나 모임이나 그 형태소를 보면 다를 것이 하나 없다. 위치와 순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둘이 아니라 셋은 열리고 창조적인 공간이다. 풍성해지는 시작이다. 하지만 뭔가 바라고, 그곳에 쑤셔넣어야 할 것이 있고, 사명감의 단위로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가 들어서는 순간 비참을 각오해야 한다. 모임은 다름을 받아들일 감수성의 공간이다. 모임은 다름을 만드는 창조성의 공간이다. 모임은 다름을 통해 자라나는 시공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런 결사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해본 적이 별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자유스러움에 대해 세심해본 적이 없다.

 

 

나-너 

 

나가 아니라 나-너  또는 너-나, 이것도 많이 부족해 나-너-,  너-나- 에 점선이나 실선을 긋는다. 나의 과잉의 시대, 약한나, 먼나로 나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강한나의 중력이 무시무시한 나만의 시대. 그래서 너의 손길에 모멸차다. -너의 관계 속에 풍요로워지는 나가 없다. 오로지 나만의 건강, 강함의 족속만 있다. -너-나-너의 추체험이 가능하지 않는 시대이다. 무수한 학문도 이를 가정하고 독립된 나가 없음에도 가정하고 사상누각을 만들어 버렸다. 너의 손길 속에 자라고, 내가 너 속에 깃들여짐으로서 여기까지 왔음에도 너의 호흡이 없이 한순간도 서 있을 수 없는데도 여전히. 아름다움은 불쑥 다가서는 너로부터 생기는 것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나'이다. 학문을 소각해서 없애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개인을 필요에 의해 만든 뒤로 이렇게 뒷걸음치는 나밖에 없다면 그 의심은 오로지 '나'가 받아야 한다

 

 

온 도 

 

 물과 얼음, 물과 수증기. 얼음, 수증기, 눈의 실체를 믿는다. 거기에다가 변하기 전 그 설레임을 더 믿는다. 온도! 늘 마음과 몸의 경계에 두는 말이다. 지금보다 나은 덧셈의 말이기에 들으면서도 흔들린다. 마음이 통하고 흘러갈 수 있기에 너로 향하는 몸짓이기도 하다. 전복의 말이 아니라 몸짓, 맘짓, 손짓 모두를 조금이라도 받아주는 말이어서 반갑다. 어디에 의탁하는 말이 아니어서 좋다. 나의 끄트머리, 먼나의 곁에 늘 너란 빈칸을 두어서 좋다. 모임과 모임들 사이 어디 하나 우쭐거리지 않아서 좋다. 만남과 만남 사이 냉정히 소비하고 취사선택하지 않아 좋다. 때를 기다려주는 다정다감의 다리는 놓는 말이어서 늘 곁에 두고 싶다.

 

 

뱀발. 자주 쓰는 말들. 혀끝에 맴도는 말들이 별반 많지 않다. 딱딱한 말들은 혓바늘을 돋게 만들어 불편하다. 벗들은 말한다. 당신 말은 너무 추상적이라고, 모호하다고도 한다. 그렇다고 고쳐야 한다는 고치고 말리라는 다짐을 해야하는 이유가 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여울은 여울이고 느긋하게 몸에 담긴 것이 그 색깔이기도 한 연유겠다. 보살펴 살핀 말들, 살피고 싶은 말들에 대한 태그를 달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다. 너에게로 향하는 점선에 실선을 조금씩 덧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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