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정관념에 대한 반론 - 인간의 본성, 기준점에 대해 성선설, 선악설로 규정짓는 것은 세세하게 살피는데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동한 생각하거나 나누었던 고정관념들을 살펴보고, 다소 유연한 경계를 살펴보는 것이 오히려 논의를 확장해나가는데 유용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피터싱어의 행동경제학의 게임이론 등을 통해 살펴보는 협력적 진화를 차용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경직되게 생각하여 찬반으로 정황을 설명하는 것은 이렇게 다소 유연하게 살펴보는 것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인간본성이라는 것의 경직된 해석과 선입견에 가득한 생각을 보수든 진보든 열어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유보적인 입장에 두게 되면 제도와 변화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사물과 정황을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서로 좋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책에서 피터싱어가 말미 마무리하면서 생각을 모아둔 것이다.

 


- 인간의 본성을 부정해서도,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한 것이라고 주장해서도,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무한히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 정치적 혁명에 의해서든 사회적 변화에 의해서든 혹은 보다 나은 교육에 의해서든, 인간들 사이의 모든 갈등과 분쟁이 언젠가는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 모든 불평등이 차별, 편견, 억압 혹은 사회적 조건들로부터만 기인한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불평등의 일부는 이들로부터 유래했겠지만 모든 경우에 그럴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정책을 제시할 때에는 그 정책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어떤 것이 '자연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는 식의 추론을 거부해야 한다.
-어떤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 아래에서 살든지,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키고, 권력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친족들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경쟁보다는 협조를 촉진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경쟁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향해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인간이 아닌 동물들을 착취해도 된다는 생각은 사람과 동물 간의 간극을 과장하는 다윈주의 이전의 유산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동물들의 도덕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 약자, 빈자, 그리고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섬으로써 좌파가 가졌던 전통적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이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곰곰이 연구해야 한다. 105-106

 

다윈주의 좌파들은 상호 협조가 가져다줄 이득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하는 필수적인 전제들을 이해함으로써, 사회의 낙오자들을 낳게 되는 경제적 조건들을 가능한 한 없애나가려고 노력한다. 일부 좌파들은 협소한 경제적 관점에 입각해서 사회정책을 평가하곤 한다. 하지만 인간 심리에 대한 진화이론으로부터 출발하면, 순전히 경제적으로만 이해했을 때 고용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노동자들을 실제로 고용에서 배제했을 때 발생하게 될 잠재적 사회적 비용이 얼마인가를 계산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모든 것이 자유로운 경쟁시장의 원리에 의해 지배됨으로써 사회적으로 낙오된 자들이 증가하여 밤길 다니는 일이 위험해질 정도가 되느니, 정부는 고용을 증대시킬 수 있도록 경쟁시장에 간섭을 하는 것이 낫다.  89

 


생디칼리슴과 집산주의와 아나키즘의 목표는 모두 현재의 경제적 위계 및 사적 소유 전반을 철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집산주의는 모든 이의 소유를 지향하고 아나키즘은 무소유를 지향하는 반면, 생디칼리슴은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소유를 지향한다. 따라서 생디칼리슴은 사회주의가 설파한 경제이론 및 계급투쟁론을 순전히 노동조합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입장이다. 생디칼리슴은 집산주의가 의존하는 대의제 정치 활동을 완강히 거부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디칼리슴은 아나키즘과 훨씬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아나키즘과 다른 점은 사실상 행동의 범위에 국한되어 있다. 109-110


길드 사회주의


길드 사회주의자가 보기에 국가는 소비자 자격을 지닌 공동체의 연합인 반면, 전국 길드는 생산자 자격으로 그들을 대표하는 기구이다. 따라서 의회와 길드 평의회는 저마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대표하는 양대 권력으로서 동등하다...길드 사회주의자가 보기에 국가 사회주의는 사람을 소비자로만 파악하는 반면 생디칼리슴은 오로지 생산자로만 파악한다. 그래서 길드 사회주의자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그 두 관점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전국 길드를 지지하는 이들의 목표이다. 생디칼리스트는 모든 것을 생산자들의 노동 조직에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집산주의자는 소비자들의 지역 조직 또는 정치 조직에 모든 것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 모두 똑같이 비판받아야 한다. 단지 한쪽으 관점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두 관점을 일치시킬 수 없다고 말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을 순전히 상업적인 활동으로, 생기도 기쁨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소수를 배불리는 활동 대신 전국 길드와 함께 일하자. 노동을 돈으로 사고파는 대신 책임감을 갖고 일하자. 오늘날 끔찍할 만큼 비대해진 국가와 주식회사의 관료주의 대신 자치 정부와 권력 분산을 추구하자. 그러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노동의 기쁨'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의 양만 아니라 질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중세 시대를 연상케 하는 케케묵은 표어도 있고 '노동의 기쁨'같은 표어도 있지만, 어쩌면 그런 표어를 믿고 따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와 집산주의의 철학, 즉 노동은 결코 즐거워질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노동자의 유일한 희망은 소소한 오락거리를 한가득 안고서 더 길게, 더 풍요롭게 누리는 여가 시간뿐이라고 단언하는 그따위 철학에 영원토록 굴복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과로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짓이다. 그것을 일이 아니다. 과로는 소수에게 사치재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모두의 복리를 위한 일이 아니다. 일은, 노동은, 생리적으로 필요한 것, 몸에 축적된 힘을 소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 자체가 건강이자 삶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부문의 유익한 일들이 마지못해 이루어진다면 이는 단지 그 일이 과로이기 때문이거나 부적절하게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145

 

범죄를 바라보는 견해


예방 과정에 따르는 고통은 외과수술에 뛰따르는 통증처럼 안타까워 할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폭력 충동에 이끌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삶이 아니라 이익을 주는 삶을 통해 이기심을 더 많이 충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조치는 범죄자의 시야 및 욕망의 범위를 넓혀 주는 것이다....부자가 부를 쌓으려고 저지르는 악행은 대개의 경우 빈민이 저지르는 한찮은 범죄보다 사회에 더욱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데도 불구하고 기존 질서를 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고 넘어간다.... 172

 

대의제 민주주의의 보완


지역이든 산업이든 아니면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든 간에, 오로지 작은 부문에만 관련된 문제를 전 국민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 같은 해악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은 현재로서는 국가 내의 모든 주요 집단에 자치를 허락하는 것, 그럼으로써 다른 집단보다 해당 집단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모조리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길드사회주의자들이 생디칼리슴의 가장 독창적인 사상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개념이 바로 개별 산업을 자치 단위로 조직하여 내부 문제에 관한 한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나는 명백히 별개의 이해관계를 지닌 다른 부문까지 이러한 조치를 넓혀 가면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가 스스로 드러낸 해악들을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180


산업별 길드의 자치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의 자유를 지키고자 한다. 그들의 제안은 오늘날 지역을 기반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 해당 공동체를 소비자의 처지에서 대표하는 의회와 더불어 '길드 의회'를 만들자는 것이다...공장법이나 탄광 규제법 같은 법안들을 지금은 국가가 제정하지만 미래에는 길드 의회가 제정할 것이며, 그러한 법률을 집행하는 길드 의회의 권력은 오늘날의 국가 권력과 똑같을 것이다. 181

 

예속관계


자본주의 공동체라면 어디에나 명령을 내리는 이들과 대개는 고분고분히 복종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여론은 흑과 백의 양 극단 사이에서 조금씩 짙어지는 회색 띠처럼 분포하지만, 이 두 계급의 가치관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데 익숙한 사람은 반대에 부딪힐 경우 분개하기 마련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 반대를 사악한 것으로, 따라서 반드시 분쇄해야 할 것으로 확신한다.

 

경쟁심의 진실은 권력욕에서도 진실로 드러난다.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는 형태의 권력은 명령을 내리는 권력이자 공개적으로든 비밀리에든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권력이다. 이러한 형태의 권력은 타인이 바라지 않는 일을 강제로 시킬 때에만 드러나므로 본질 자체가 타인에 대한 방해이다. 210


 경쟁심이 전적으로 해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공공에 대한 봉사나 발견, 예술 작품 창작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쟁심은 매우 유용한 자극이 되어 사람으로부터 한층 더 유익한 노력을 이끌어 낸다. 그것이 해로운 경우는 수량이 제한된 재화를 얻고자 할 때, 따라서 한 사람의 소유가 다른 사람의 궁핍을 초래할 때이다. 이러한 형태를 띤 경쟁심은 공포를 수반하게 마련이며 공포는 필연적으로 잔인성을 낳는다. 210

 

편견의 폐해


인종이나 지역의 반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경쟁의 해악으로 눈을 돌릴 뿐, 협력의 미덕에는 눈을 감는다. 그런 사람은 동료들의 결점에는 너그러우면서 익숙지 않은 이방인의 결점에는 혐오감을 느낀다. 201

 

경쟁교육의 폐해


경쟁을 유발하는 장학금 제도는 아예 없느니보다는 낫지만 여러 관점에서 비판할 만하다. 그러한 제도는 한참 어린 아이들의 학업에 경쟁심을 불어넣는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지식을 그 자체에 내재한 흥미나 중요성보다 시험에 쓸모 있는 것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 이러한 제도에서는 어려운 문제를 느긋이 생각하느라 둔해 보이는 인재보다 일찌감치 판에 박힌 질문에 술술 대답하는 인재가 더 높이 평가받는다. 가장 해로운 단점은 아마도 어린 나이에 과로한 나머지 장성했을 때 활력과 흥미를 잃는 경향일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영재들이 이러한 이유 탓에 촉이 무뎌지고 감이 떨어지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진실이다. 222

 

예술이 과학보다 덜 융성한 한가지 이유


오늘날 창조적 업적의 상당 부분은 다른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과학 및 연구 부문의 업적은 대개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성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학자들은 교직 활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 한 이러한 관행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그나마 과학과 교직은 결합하기가 쉽기 때문에 오늘날 과학 분야는 활기를 띠고 있다. 음악 분야에서는 연주를 병행하는 작곡가가 비슷한 이점을 누리지만, 연주자가 아닌 음악가는 부자이거나 대중의 취향에 냉큼 영합하지 않는 한 곤궁할 수밖에 없다. 요즘 세상에는 순수 예술 분야에서 순전히 훌륭한 작품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창작 시간을 넉넉히 보장하는 부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는 유일한 이유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늘날 예술이 과학보다 덜 융성한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225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소유보다 창조를 추구하는 정신에 따라 살아가는 삶에는 근원적인 행복이 존재한다. 이러한 행복은 적대적인 환경이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서가 권하는 삶의 방식이자 세상의 모든 위대한 스승들이 권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일찍이 이러한 삶의 방식을 찾은 이들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삶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외부의 권력에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장애와 압제에 굴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끌어모아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정치 및 경제를 개혁하여 세상을 재창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개개인이 도덕적으로 다시 태어나면 개혁에 필요한 모든 것은 아무런 저항 없이 저절로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만들어 낼 기쁨보다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남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사로잡혀 있다. 239

 

절대 다수는 돈을 벌어야만 하는 운명의 노예이다. 그들 대부분은 열심히 일하도록 압박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본업 밖에서 즐거움이나 여가를 얻기 힘들다. 중년의 막바지에 은퇴할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권태에 시달리는데 이는 그들이 막상 자유를 얻었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며, 한때 일 이외의 활동에 지녔던 흥미가 이미 고갈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예외적으로 운이 좋은 경우이다. 대다수는 눈앞에 도사린 빈곤의 공포에 시달리며 노년까지 일을 해야 한다......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자기 일의 방향성에 대해 의견을 내지 못한다. 일하는 동기는....일이 예술가의 창작 활동처럼 즐거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비웃음을 사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같은 해악들 가운데 태반은 전혀 불필요한 것이다. 만약 인류 가운데 문명화된 일부로 하여금 남의 고통보다 자기 자신의 행복을 더 탐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면, 또한 다른 계급이나 국가가 몰래 앞서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파괴 행위 대신 건설적인 개선 작업에 전념하여 그 성과를 전 세계와 함께 나누도록 유도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한 세대가 끝나기 전에 세상사의 기준이 되는 체제 전체를 뿌리부터 가지까지 송두리째 개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45-246


우리가 애타게 보고 싶어 하는 세상에는 오늘날 일상에서 반복되는 비극적인 단조로움보다 삶의 기쁨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유년기를 벗어나면 으레 앞날의 걱정에 고개를 수그리고 더는 마음 편히 즐거워하지 못하며, 다만 때맞춰 울리는 시계 소리를 듣고 일종의 진지한 의식 같은 환락에 탐닉할 뿐이다. '어린아이처럼 살아라'는 많은 사람에게 여러 모로 유용한 충고인데, 그 속에는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마라'는 교훈 또한 담겨 있다.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이런 교훈을 따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느지막한 나이에도 아이 같은 단순함을 간직한 사람이 적지 않다.... 261-262


우리가 반드시 찾아야 할 세상은 창조적 정신이 살아있는 세상, 삶이 곧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한 모험인 세상이다. 그 세상의 토대는 우리가 소유한 것을 지키려는 욕구나 타인이 소유한 것을 갖고자 하는 욕구가 아니라 창조적 충동이어야 한다. 그 세상에서 애정은 대가를 바라지 않을 것이고, 연애는 지배 본능을 벗어던질 것이며, 잔인성과 시기는 행복한 삶을 일구고 그 삶을 정신적 환희로 채우기 위하여 자유롭게 진보하는 모든 본능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러한 세상은 실현될 수 있다. 지금은 다만 사람들이 마음먹고 만들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뱀발. 책갈피를 펼쳐둔다. 할 말은 많지만 남겨두자. 진리는 우회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통쾌하기도 하다.  지금은 다만 사람들이 마음먹고 만들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만드는 즐거움보다는 그 말이 맞는니, 보잘 것 없느니 따지는 것을 더 좋아한다. 세상은 뒷걸음치든 말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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