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일기

그런 날이면 창백한 물고기에게 황금빛 수의를
땅이 내준 길만 따라 흐르는 작은 강물에게 거미의 다
리를
무엇에 차이기 전애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돌맹이
에게 이쁜 날개를
한 번도 땅의 가슴을 만져본 적 없는 하늘에게 부드러
운 손가락을
높은 곳에서 떨어져본 마음을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마음 받아주는 두 팔을
높은 곳에 올라가기 전에
네 곁으로 가는 다리를
그러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이미 삐풀어진 입술을
그 입술의 미세한 떨림을

떨림이 전하지 못하는 신음을
크게 그려줘 내 몸에 곱게 새겨줘
그런 날이면 망친 그림을
잘못 그려진 나를 구기지 말아줘 버리지 말아줘
잘못 그려진 나에게 두껍게 밤을 칠해줘
칼자국도무섭지않아대못도,동전모서라도,그런
날이면 새로 생긴 흉터에서 밑그림 반짝이는 그런 날

 

 

거인족

 

별은 없었다

그녀도 없었다

나는 화가 나서

해를 향해

술병을 던졌다

해가 산 뒤로 슬쩍 피하며

딱딱하고 캄캄한 하늘이

술병에 부딪혀 깨지며 쏟아졌다

 

별은 없었다

그녀도 없었다

이글거리는 나의 눈동자 속으로

유리조각이 산산이 쏟아져내렸다

 

청춘 2

맞아 죽고 싶습니다

푸른 사과 더미에

깔려 죽고 싶습니다

 

붉은 사과들이 한두개 씩

떨어집니다

가을날의 중심으로

 

누군가 너무 일찍 나무를 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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