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제와 소유는 선을 원한다. 그러나 그 두 가지가 각각 낳은 것은 악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이 두 가지가 서로 배타적이기때문이며 제각기 사회의 두 요소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공유제는 독립성과 비례균형을 무시하는 반면, 소유는 평등과 법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평등, 법, 독립성, 비례균형이라는 이 네 가지 원리에 토대를 둔 사회를 머릿속에 그려본다면... ...


1. 평등은 어떤 경우라도 정의와 형평을 침해하지 않는다.


2. 법은 사실들에 대한 과학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결코 독립성과 충돌하지 않는다.


3. 개개인 상호간의 독립성 즉 사적 이성의 자주성은 재능과 능력의 차이에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법의 한계 안에서는 아무 위험없이 존속할 수 있다.


4. 비례균형은 물질의 영역이 아니라 지능과 감정의 영역에서만 인정되는 것으로서, 정의 및 사회적 평등을 침해하지 않고도 준수될 수 있다.

 

공유제와 소유의 종합이라 할 수 있는 이 제 3의 사회 형태를 우리는 자유라고 부를 것이다.(자유란 권리와 의무를 균형잡는 일이다.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균형을 잡는 것, 즉 자신을 다른 사람의 수준에 놓은 것이다.)


인간에게 있는 사회성은 성찰을 통해 정의가 되고, 능력들의 맞물림을 통해 형평이 되며, 자유를 그 정식으로 삼는다. ..의무와 권리는 우리들 안에서 욕구로부터 생겨나는 바, 이 욕구라는 것은 외부 존재와의 관련에서 생각되면 권리가 되며, 우리 자신과의 관련에서 생각하면 의무가 된다. 우리는 동료들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칭찬에 값는 것은 의무이며, 우리가 우리의 업적에 따라 평가받는 것은 권리이다. 우리에게 먹고 자려는 욕구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수면과 영양에 필요한 물품들을 마련하는 것은 권리이며, 자연이 필요로 할 때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은 의무이다. 407-410

 

 

사회성은 감성적 존재들 사이의 인력과 같은 것이다. 정의는 성찰과 인식을 수반하는 바로 이 인력이다....정의가 사회적 본능과 성찰의 혼합물인 것처럼, 형평은 정의와 취향의 혼합물, 내가 원하는 식으로 표현하자면 평가하고 이념화하는 능력의 혼합생산물이다. ...사회성, 정의, 형평,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동료들과의 소통을 추구하게 하는 본능적인 능력에 대한 정확한 정의 定意 이다. 이 본능적 능력의 물리적 표현 형태는 [자연 및 노동의 생산물에서의 평등]이라는 정식으로 나타난다....만일 내가 사회에서 내 동료보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한동아리가 아니다.

 

 

정의란, 무게를 달고 길이를 잴 수 있는 유형의 물질들을 배분하는 데 참여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성이다. 반면에 형평이란 측정될 수 없는 물질, 즉 경의와 존중을 동반하는 정의이다....법률학, 경제학, 심리학 등 모든 것이 우리에게 평등의 법칙을 부여한다. 권리와 의무, 재능과 노동에 따른 보상, 사랑과 열정의 약동, 이 모든 것이 굳건한 척도에 의해 미리 정해지며 수와 균형에 의존한다. 조건들의 평등, 이것이야말로 사회들의 원리이고, 보편적 연대성, 이것이야말로 이 원리의 재가이다....

 

 

피억압자에 대한 배려는 장관들의 곤혹스러움에 우선한다고, 그리고 조건들의 평등은 원초적인 법칙이며 공공 경제와 입법도 여기에 의존한다고. 노동의 권리, 그리고 재산의 균등한 분배에 대한 권리는 권력의 근심걱정 앞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나는 어중간하게 끝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만일 언약의 궤에 손을 댄다면 내가 그 뚜껑을 벗겨내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으리라고 믿어도 좋다. 불의라는 성역을 둘러싼 신비를 벗겨내야 하고 낡은 언약의 석판을 부숴버려야 하며, 모든 낡은 숭배 대상들을 짐승의 먹이로 던져 버려야 한다. 327-364

 

 

 

뱀발.

 

 

1. 백만명의 사회, 십만명의 사회, 만명의 사회...천명의 사회라면 굶어도 굶어죽는 사람은 없어야 할 것이다. 자살을 한다면 그 사회의 문제점이 여실히 보일 것이다. 사회적 본능은 무엇일까? 그런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공유제를 주장한다면 다들 반대할 것이다. 공유제는 개인의 독립성이 사라지면 취향과 능력을 반영하는 비례균형을 살리지 못하는 악이다. 이는 지난 이,삼백년을 통해 누구나 절감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소유를 인정하는 것이 그 해법인가? 사회는 평등하지도 않다. 인간을 굶어죽이고 우울하게 만들어 죽이는 법의 부재를 용인할 것인가? 천명의 사회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형평이라고는 조금도 안중에 없는 이 구조를 용인할 것인가? 좀더 정의롭고, 좀더 형평이 맞았으면 좋겠고, 좀더 사회를 배려하면 좋지 않겠는가? 만명의 사회라면 당신은 좀더 생각하고 동의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본능이 왜 만명, 십만명,,,억만명이 산다고 달라져야 하는가? 뭔가 사회의 원리가 다를 것이라고 추측하는가? 다 죽는다. 소유권에 기반하는 법체계는 다시 원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점유하다가 가는 것이라면, 그리고 굶어죽고, 억울해죽고, 아파서 죽는 이 현실을 통곡한다면,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면 자유만을 평등만을 소유만을 박애만 주장하는 치기에서 벗어나서 자유도 평등도 소유도 정의도 형평도 같이 꿰뚫고 버무리는 사회에 대해 같이 느껴야 한다는 말은 공감하기 어렵지 않다. 성찰할 수 있는가? 구체적으로 가슴저리도록....그렇다면 다단하고 복잡한 지금 현실도 한 꺼풀 벗겨질 수 있으리라. 부자됨을 부끄러워할 수 있으리라. 무지를 부끄러워하고 사회를 위해 표시내지 않고 할 일들을 찾아할 수 있으리라. 배고파, 억울해죽고, 우울해죽는 이들의 마음만이 아니라 몸도 달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보다가 마음에 걸려 남긴다. 이른 잠, 꿈에 눌려 힘들다. 과거는 한번은 망치로 한번은 해머로 온다. 무거운 날이다. 부채는 이리도 많은지 싫다. 억울함은 이리도 많은지 싫다. 꽃들은 제 몸에 맞는 나비와 새들을 불러들이는데, 우리는 무슨 꼴이람 이렇게 허접하게 굴러가지 않는 세상걱정이나 해야 된다니 말야. 리셋하거나 새로만들거나? 위험한가? 그래 위험하지 당신이 그렇게 위험하다고 느끼는 세속에 절은 그 찌질한 생각이 더 위험할 수도 있는 건 아닌가 ㅎ.....안 그런가?

 

 

3. 치기는 이렇게 생긴다. 거인의 우쭐에 힘입어, 그 어깨에 타고 잠깐 보이는 안개너머 실루엣... 거인의 어깨에 내려오면 다시 아득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일상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쩌라구...곧 잊혀지고 버리는 소비의 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을 어쩌라구....방법은 있는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낙숫물로 바위뚫기........! 생각으로 생각뚫기! 말을 먹지 않고 나눈다면...생각을 머금지 말고 나눈다면... ... 사회성이란 무엇인가? 왜 살지? 좋을 삶이란 무엇인가? ....입에 풀칠도 못하고 있다고... ...풀칠은 사회가 해줘야하는거야. 최소한 먹고살게는 해줘야하는 거라구....네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문제라구...이 사람아...세상 제법 산 것처럼 얘기하지 말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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