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외면

 

 

비를 그으려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가

나뭇잎 뒤에 매달려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

나비 쪽을 외면하는

늦은 오후

 

 

 

목련의 첫 발음

 

 

밀봉하는 데 석 달은 걸렸겠다
귀퉁이를 죽-찢어 개봉할 수는 없는 봉투

 

펼치는 데 한 달은
박새가 울다 갔다

 

겹겹 곱게 접은 편지

 

입술 자국이나 찍어 보내지
체온이라도 한 움큼 담아 보내든지

 

어쩌자고
여린 실핏줄 같은 지문만
숨결처럼 묻어 있다

 

너를 부르자면 첫 발음에 목이 메어서
온 생이 떨린다

 

한 줄 읽는 데만도
다시 백년의 세월이 필요하겠다

 

 

 

 

소리 그림자

 

매달렸던 그 끝에서

아쉬운 듯 두려운 듯 망설이다

손을 놓고 뛰어내리는 물방울

 

 

토-

  -오-

      -옥

소리 아득하다

 

 

긴 모음은

물방울의,

물방울 소리의 그림자

 

 

산산이 흩어지는 울음소리를 다스려

제 안으로 감싸는, 끌어안는

소리 그림자

 

 

기억에서 지워진 다음에도

실루엣으로 오래 남은 사람처럼

 

 

그 모음 길다

참 깊다

 

 

 

 

뱀발. 이곳은 봄이 진다. 봄의 꽃(시)샘이 아마 조금 늦추려는지, 깊은 그늘에 아직 목련 잎 탐하는 박새를 끌어들이지는 못했겠지. 꽃도 때를 모르고 피워 나비들은 부산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밭이나 상경하는 꽃들은 천천히 꽃을 열면 싶다. 좋아하는 나비들이 제 꽃을 찾을 수 있게... (봄을 태우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흑색의 경계가 선명하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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