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읍 일본인 이주어촌 답사 사후 연구
초록
골목에 골목으로 이어진 파도소리가 바람만큼 목청을 돋구는 듯하다. 한시간 반쯤 몇번을 되돌았는지 모르겠다. 대게와 과메기 축제로 호객하는 가게의 불빛이 찬란하다. 이곳 발품으로 돌아다니다가 느낀 것은 묘하게도 목포와 통영을 겹쳐 놓은 듯했다. 변두리 읍내라 발길이 덜 닿아서인지 흔적인 남은 길은 생각보다 한참 길게 느껴졌다. 원형은 그대로 남은 채 말이다. 사후에 확인한 일이지만 통영, 거제도, 외나로도 수많은 항만도시에 자연이주는 물론 조선총독부는 광범위하게 이주정책을 취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일본의 기근으로 구룡포인근까지 고등어 어획을 했는데 한일합방이후 어업협정이 다시 개정되면서 본격적인 이주를 한 셈이다. 선주들은 물론, 자리잡고 있는 신사와 건축기술은 쿄토에서, 일본인 거리에 쓰인 자재는 오사카에서, 이주민은 가가와에서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항만의 거리들이 2000년이 넘어서야 연구가 되는 듯하다.
구길은 버젓이 일본인, 산중턱은 조선인 마을이 겹치듯 산다. 하지만 이곳에 초등학교는 폐교되어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그리로 슬레이트 집은 인기척 없는 곳이 많다. 외국인노동자의 목소리가 뒷골목에서 들린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공원은 일본인 성의 모양을 쓴 탑신 위에 지역유지들이 충혼탑을 세웠다가 철거해서 옆에 다시 따로 세우고, 일본인들의 돌지주에 유지의 이름을 써서 세우고 일본인이름은 시멘트칠을 해 뒤로 돌려놓았다.
여전히 목소리없는자가 이곳을 지키며 살아간다. 주도로의 상권과 별개로 시공간이 공존한다. 아이들은 인근 도시로 보냈을 것이고...돈만 버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을은 돌아올 수 있을까 이 공백의 시대를 향후 어떻게 기억해낼까 넋을 기리는 일본인의 이름위에 유지를 이름을 새기듯, 지금은 또 다른 덧칠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이곳의 먹을 거리는 대게와 과메기가 아니란다. 모리국수가 이곳을 특색있는 음식인데, 그 까꾸네 모리국수집을 겨우 찾아가니 막 가게문을 닫는 참이었다. 뒷골목의 삶을 눈여겨보는 이가 없는 듯 이렇게 호황의 뒷그늘을 찾는이도 아는 이도 없는 것은 아닌지... ...
1. 박준성,한국 근대기 일본인 이주어촌의 주거공간구성과 변용에 관한 연구(2006),대한건축학회논문집
2. 박준성외, 한국 근대기 일본 이주어촌의 포구 취락구조와 주거형태에 관한 연구(2004), ,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 김준 외, 일제강점기 일본인 이주어촌형성과 변용에 관한 연구(2006), 대한건축학회논문집
4. 안국진,김용미, 구룡포 일본인 가옥의 특징과 입면 설계방침 3가지(2010), 대한건축학회논문집
김주일,이대준, 구룡포 근대 일본인 가옥 지역의 현황과 특징에 대한 연구(2010), 대한건축학회논문집
5. 이상윤,김태영, 구룡포읍 일본인 이주어촌에 관한 조사연구(2004), 대한건축학회논문집
외 [구룡포에 살았다. 아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