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가을산 > 자기조직화, 길 만들기

전인미답의 숲 속에 길을 내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뻥 뚫린 길을 시원하게 내는 것.
엘리트들의 계획과 설계를 바탕으로, 정부의 중앙집권적인 통제 하에 땅을 수용하고 고속도로를 까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 필요에 따라 이리 저리 헤메면서 길을 찾아가는 것.
처음에는 한걸음 한걸음 나뭇가지를 헤치고 거미줄을 피하면서 전진해야 하지만, 
그 길이 유용한 길임이 판명되고 그 길을 찾는 사라들이 늘면 그 길은 곧 오솔길이 되고, 도로가 될 것이다.

이 두 방법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고, 길의 목적이나 기능, 필요성의 경중에 따라 어느 방법이 더 유용한 것인지 선택이 달라질 것이다.  

브라질에서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의 한국 참가단이 어제 저녁 출발했다.

세계사회포럼의 조직의 원리와 준비 과정을 보다보면 두번째의 길내는 모습이 자꾸 떠오르게 된다.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와 자본과 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고 제안하고 경험을 나누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장이다.
세계사회 포럼에는 8개의 단체가 준비의 실무를 맡고,  129개의 단체가 국제 위원회를 구성해서 포럼의 방향을 의논한다. 

포럼 수개월 전서부터 주제를 제안하고 분류하고,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는 단체끼리 프로그램을 고안한다.
금년에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11가지 주제에 대해 3000여 개의 워크숍이 6일간 열린다. 전체 운영위에서 주관하는 행사는 첫 날의 개회식, 마지막 날의 폐회식 뿐이다. 나머지 회의들은? 관심 있는 단체들이 이메일과 전화로 서로 연락해서 구상한다. 

각 워크숍은 그 크기에서 50명부터 4000명에 이르고, 
주제은 인권, 대안사회, 자연보호, 노동운동 같은 기본적인(?) 사회운동의 영역에서부터,
이런 사회운동을 어떻게 미국 국내에 옮겨심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 
순수 기독교 봉사단체들의 모임, 
네팔의 독립에 관한 논의를 위한 티벳 승려 단체,
심지어  ' *** 에 관해 내 이야기를 들어볼 사람은 오시오" 하는 프로그램도 등록되어 있다.
물론, 대부분의 회의는 중요한 이슈에 대해 문제를 밝혀내고, 경험을 나누고, 공동 행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자리이다.

이렇게 '방만하게' 준비되는 포럼이기 때문에, 기획자적인 입장에서 볼 때 행사의 준비가 위태위태해 보일 수 있다. 
이번에 출발한 우리 단체만 하더라도, '이런 주제에 대해 관심 있고 활동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단체 있으면 연락 바람'이라는 이메일을 받은 것이 불과 1주 전. 그것도 그 워크숍을 준비하는 단체에서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한 세 다리쯤 걸쳐서 단체 메일로 받은 것이다. 우리 단체의 관심사와 일치하고, 우리 경험을 나눌만 해서 발제를 하겠다고  다시 세 다리 걸쳐서 주관 단체와 연락을 한 것이 출발 3일 전, 이메일 및 전화로 직접 구체적인 참가 협의를 한 것은 우리 나라 참가단이 떠나기 하루 전인 지난 토요일이었다.
그 워크숍 참가자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자리에 모여 준비하는 것은 워크숍 바로 전날이 될 예정이다.

때로는 행사 전날이나 당일 행사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고, 준비하는 단체의 역량이나 주제에 알맹이가 없는 프로그램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을 통해 문제의 제기와 해결을 위한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회의 변화에 관심 있는 단체라면 사회포럼에 한번쯤 참가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연대의 네트워크를 구성해 가는 귀중한 장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회포럼도 주로 문제제기 혹은 성토, 사례발표 중심이었다.
참가자들끼리도 '계속 이렇게 말만 하고 있으면 언제 행동할 것이냐?' 는 자조적인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만남이 몇 번 지속되면서 회의의 중심이 점차 대안 제시와 공동대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면, 너무 낙관적인 관측일까? 

참가하고 싶은 단체 혹은 개인에게....

우선, 지구 반바퀴를 가서 수줍게 듣고만 오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가했으면 좋겠다.
점잖은(?) 우리 국민성으로 보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간단한 질문이나 의견도 밝힐 건 밝히는 것이 좋다.
우리 시민운동의 성과도 어느정도 있으니까 주눅 들 필요 없다.

영어 공부를 하자.
사실, 얼마 전, 한 서재인이 퍼온 이진경씨의 글처럼, 한 '학문' 한다는 이진경씨까지도 국제 학회에서 외국어 때문에 서러웠다고 한다. 이진경씨의 지적대로, 당시 이른바 운동에 관심을 둔 사람들 간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좀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그 결과, 우리 나라에서 외국과 활발히 교류하고 하는 쪽은 경제계, 법조계, 학계 중심이고, 시민 사회 단체에서는 주로 국내 문제에 촛점을 맞추어 왔기 때문에 외국어와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영어가 유창한 인재들은 주로 경제계의 '선진 이론'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우리의 앞날인 것으로 떠들어 댈 때에도, 우리의 시민단체들은 외국과 반 세계화 논리를 제대로 접하지도 못했고, 우리 시민운동의 성과 혹은 한국의 상황을 외국에 알려 연대하는 것도 변변히 하지 못했다.
영어가 받쳐 주지 않으면 사회 포럼에 참가해서도 수천개의 워크숍 중에서 오직 영한 동시 통역이 가능한 몇 개의 워크숍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아무리 다른 워크숍을 듣고 싶어도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자.
명함을 만들어 가지고 가자.  단체를 대표해서 가는 것이라면 자기 단체에 관한 간단한 소개 전단지도 만들자.
관심사가 같은 외국의 단체 참가자나 발제가 인상 깊었던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 받자. 관심 이슈가 같은 단체나 활동가라면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된다.
궁금한 자료나 질문을 부탁하면 대부분 아주 반갑게 자료 제공을 해주고, 지속적으로 정보 및 활동 공유를 할 수 있게 된다.

돌아와서 잊지 말자.
꼭 보고서 혹은 메모 형태로 기록을 남기자.
새로 알게 된 단체나 개인의 연락처, 이메일, 주 활동 분야, 특이사항을 정리해 놓자.
이 참가 경험을 국내의 다른 활동가들과 나누고, 향후 활동 방향에 반영하자.
가져온 자료들 중 중요한 것들은 가능하면 한국어로 번역하자.

이렇게 하면 '아래로부터의 변화'로 한걸음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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