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지난 가을 강연뒤풀이 겸해서 얘기 나눌 기회를 놓쳐 아쉬웠는데, 핑계삼아 책을 골라봅니다. [비통한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란 책이에요. 대선의 여운이 길게 내려앉는 자리네요. 파란 구슬 두 개와 빨간 구슬 세 개. 뻔뻔함이란 두 꼭지와 겸손함이란 세 꼭지가 저자가 나누고 싶어하는 얘깁니다. 참여소식지를 훑어봤습니다. 허세작렬 서시인이 투고를 갈무리할 겸,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꽃피워주기도 하는 것이 허세라고 했죠. 허세작렬이 허세장렬로 산화한 듯한 아쉬움도 들지만 뻔뻔스러움이란 파란 구슬 하나를 연말연시에 더 챙겨봅니다.

 

 

파란구슬 하나: 우리는 개인적인 견해와 주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뻔뻔함 갑)

파란구슬 둘: 우리는 공동체를 창조하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아이 한명을 키우려면 마을하나가 필요하듯, 마을하나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뻔뻔함 을)

 

빨간구슬 하나: 우리는 이 안에서 모두 함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겸손함 갑)

빨간구슬 둘: 우리는 다름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겸손함 을)

빨간구슬 셋: 우리는 생명을 북돋는 방식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겸손함 병)

 

뜬금없죠. 뻔뻔함과 겸손함이란 슬로건을 이렇게 내동댕이 치면서 무엇을 하자는 건지 말에요. 책들 사이 행간을 함께 살펴봐요. 당위와 현실 사이의 비극적 간극을 품고 사는 우리들을 비통한자들 the brokenhearted이라고 표현해요. 영어식 표현이 더 나은가요. 마음이 끊어지듯한 것이 지금이겠죠.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 그 아픈 마음들을 그대로 드러내놓을 것을 주문합니다. 선악의 구도가 명확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들. ‘애매함긴장’. 양자택일을 강요하거나 유혹하는 딜레마를 선택하지 말고 충분히 붙들어두자고 하네요. 이견을 드러내놓고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악마화하지 않는 마음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온갖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음이 무너지고 부서질 때 체념하지 않고 스스로 붙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자는 이상과 현실사이 관계를 그저 고르기만 하고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길 원합니다. 긴장 속에서 빨리빨리 재촉하지 않으면서 3의 것이 떠오를 때까지 창조적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연습들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빨간구슬들이 엮는 변주를 들여다보면서 김수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저기에 구호처럼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 너---로 연결되어 스며든다. 우리들 사이를 가시 면류관처럼 잇거나 때론 춤출 수 있도록 말입니다.

 

**샘과 친구들 사이를 시간이 지나도 이어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마음도 그 가운데 하나이겠죠. 들어주고 다독이면서 모임과 일상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 뭔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아닐까해요. 이견-이견-이견, 다름-다름-다름. 마음 속에 그것을 두지 말고, 마음 위에 다른 이의 마음을 올려놓고 기다리는 삶들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합니다. 가져가지 말고 마음 위에 두어 생뚱맞은 것이 어느 새 마음이 열려 마음 속으로 쏙 들어가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 책의 부제는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에요. 지금 여기 마음이 애틋한 이들이 좀더 간절해지기를 열망해봅니다.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도 만나 이견과 긴장들을 나누는 사이를 갈망해봅니다. 좀더 마을을 만들고 꾸밀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대면-대면-대면. 바쁨-바쁨-바쁨.을 넘고 빠름-빠름-빠름을 가르면서 만남-이견-만듦. 만듦-만듦-만듦을 갈구해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갈라져나가는 문제들을 서로 안고 다름을 받아들여 지금여기의 문제를 풍부하게 인식하는 일. 그 연관된 관계들을 문화적인 자산이나 상징적인 자본으로 만들어내는 일도 생각해볼 것을 권유합니다. 갈라져나가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그 상위의 힘들을 끌어당깁니다. 그 문제들을 아마 사랑, 아름다움, 선함, 진리들을 차용해 해법으로 보여줄지도 모릅니다. 현실 속의 숱한 비극들을 좀더 서로, 우리 안으로 끌어당기면서 정책이 아니라 삶 속에 묘책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끙끙대거나 징징대고 서로 목소리높이도록 말입니다.

 

인문학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따라서 인문학은 불가피하게 정치적입니다. 비전을 복잡하게 만들고, 소중하게 간직해온 생각들을 뿌리째 뽑아버리면서 독실한 믿음을 깎아내리기 때문입니다. 활동가의 열광은 자신의 일을 무효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하는 일의 결실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실천과 과로. 활동가를 비롯한, 지금을 살아가는 이의 분주함과 압박감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그 내적인 폭력은 어디서 잉태한 것일까요. 여러 약한 고리로 연결된 너-나는 이 마을에서 어떤 존재일까요? 어떤 존재들이 되어야 할까요?

 

 

~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불편한 책을 예의도 없이 불쑥!! 건넵니다. 고맙습니다. **.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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