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인간다움과 정치적 인간다움(공적영역/사적영역) .......................................................

 

1. 아렌트의 이론은 공적영역,사적영역,사회적 영역이라는 세 개념을 기본축으로 형성되어 있다.

1.2. 아렌트가 주장하는 ‘공적’이라는 개념 속에서는 ‘공개성’이라는 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아렌트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서 ‘공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

1.3. 칸트[판단력비판]에서 공통감: 확정된 판단 사이의 대결이 아니라 나의 가능적 판단과 다른 사람들의 가능적 판단을 서로 입장을 바꾸어 견주어 봄으로써 자신의 판단의 제한성과 유보성에서 주어지는 긍정적 계기를 붙들게 해준다.

1.4. 취미 판단과 관련하여 공통감이 요구하는 보편성은 강요적 보편성이 아니라 설득적 보편성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고집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사귐으로 향해 있다. 이와 같은 공통감에 바탕을 둘 때 비로소 공적 공간은 그 고유한 존재가치를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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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들 사이에서 출현하는 공간인 공적 공간의 안정성은 권력을 통해서 확보된다고 본다. 권력은 사람들이 함께 행위할 때 발생하는 사회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지 않는 곳에서는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행위를 중단하고 권력에 참여하지 않게 된다면 이 세계의 다원성은 파괴되고 유토피아적 전체주의가 팽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전능성이 팽배하지 못하도록 다원성을 지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의 행위에 참여해야 한다.

2.2 “권력은 공적공간과 출현 공간을 보존하며 이것은 그 자체가 인공체의 혈관이다.”“사람들을 수용해 줄 이런 인공체가 없다면 인간사는 유목민들이 떠돌고 방랑하는 것처럼 덧없고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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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근대이전에는 사적 삶이 공적인 삶에서 박탈된 상태를 의미했다면, 근대 이후에는 사적 삶 자체가 최고의 가치이자 권리로서 주장되고 있다. 그래서 아렌트는 사적인 것의 가치를 경멸하는 그리스보다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상호 의존성을 주장하는 로마인들세서 근대이후의 문제를 극복해보고자 한다.

3.2 근대이후는 사실상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대립을 넘어서 제3의 영역, 이른바 사회적 영역이 출현하였다. 이렇게 됨으로써 사회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대립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사적영역이었던 가계의 확장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가계의 확장인 사회적 영역이 이제는 공적 영역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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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렌트는 단순한 빈곤이나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곧 자유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는 빈곤으로부터 해방과 정치적 자유의 구성은 다르다고 본다.

4.2 빈곤의 퇴치가 혁명의 일차적 목적이 되어버릴 때 여기에는 이미 또 하나의 지배, 이른바 경제적 전체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아렌트는 정치적 혁명의 일차적인 목적이 자유로운 행위가 가능한 정치적 공간의 확립이어야지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이차적 목적이 앞서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다.

4.3 정치가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이차적 목적에 이바지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 자체가 그런 목적을 우선으로 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인간의 공적 본질의 실현이어야 한다.

 

반성적 판단력과 정치 ........................................................................................................


1. 반성적 판단력은 <인식의 능력>으로서의 이론적 판단과 <욕구의 능력>으로서 실천적 판단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1.2 그의 판단력에는 서로를 규정하는 확정적 기능보다는 서로를 인정하는 가능적 기능이 주를 이루고 있다.

1.3 판단하는 관찰자는 같이 옆에 앉아있는 동료들 속에서 이론적 삶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공정하고 이익과 명성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벗어나있는 관찰자의 판단은 늘 타인과 함께한다. 관찰자는 멀리서 바라보지만 옮음을 추구하려는 열망으로 가득찬 자이다.

1.4 우리는 생각만 하며 살 수 없다. 밥도 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각만 하고 산다면 홀로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식사를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같이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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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판단이 없고 이해가 상실된 사회를 바보스러운 사회로 보고 있다.

2.2 이해는 우리의 세기가 우리에게 부과한 짐을 의식적으로 검토하고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이 어떠한 것이든 그 현실에 주의깊게 대처하고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2.3 상상력만이 우리로 하여금 사물들을 각기 그 고유한 전망에서 볼 수 있게 해주며,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해주며, 그래서 우리가 왜곡되게 보거나 편견됨이 없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2.4 현실적으로 이해인 이런 종류의 상상력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세계 속에서 우리의 관계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내면적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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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술과 정치 - 정치는 보편적 타당성을 강제하는 논리적 추론에 바탕을 두어서는 안되고, 상호 주체성을 인정하는 공통감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3.2 문화와 정치 - 취미는 진정으로 미적인 것들을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문화를 창조하는 정치적 능력이다. 진정한 인간주의에게는 과학자의 증명도, 철학자의 진리도, 예술가의 아름다움도 절대적일 수 없다.  인간주의자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작 전문성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강제를 넘어서있는 판단이나 취미의 능력을 발휘한다.

3.3 아렌트는 실리주의나 전문가주의를 반대하고 인간주의를 제창한다. 과거뿐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사람들, 사물들, 사상들 사이에서 자신의 사귐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이 이 세계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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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아렌트는 현대 사회가 공적 세계나 공동 세계가 무시되고 개인의 사적 세계가 지배하는 무세계성에 빠져있다고 보고 있다.

4.2 현대는 자연과 대치하면서 인간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세계가 상실되고 점점 더 인간이 자연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작업적 활동이 노동적 활동으로 역전되었음을 의미한다. 내세에 대한 믿음이 현세적 삶을 외면했듯이 오늘날의 세속적 삶은 또 하나의 세계소외를 유발하고 있다. 인간이 예술적 작업조차도 노동의 상품적 계기로 전락되고 노동과 무관한 모든 활동은 하나의 취미차원에 머물고 만다.

4.3 이렇게 현대의 공적영역은 노동인들에 의해 점령 당함으로써, 진정한 공적영역으로서 성격을 상실해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세계에서 사는 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생물학적 삶에 예속되고 만다. 사유하지 않고 행위하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근본악이 싹트게 마련이다.

4.4 “정치적 지배를 열망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지배를 성취하고자 했던 역사상 최초의 계급”인 부르조아지에서 경제적 전체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최후단계가 아니라 부르조아지가 비로서 정치적 역할을 맡게된 최초의 단계이다.

4.5 모든 정치적 제도들은 사적 이익을 위한 겉치레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것은 곧 정치의 경제에의 예속화이며, 인간의 위기이다. 이렇게 되면 고립적 존재의 차원을 넘어 고독스러운 인간이 되고마는데 고독한 현대인은 세계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박탈당하고 타인으로부터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근절성을 지니게 되며, 또한 세계에 전혀 속하지 못하는 무용성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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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늘의 사회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돈으로 값이 매기어짐으로써 내가 존재할 평온한 공간과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시간의 초속도화와 공간의 초밀도화),

5.2 그러다보니 정보의 공간, 정보의 시간에 참여하지 않으면 존재의 위협을 받게 된다. 사이버 공간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무시무시한 억압과 구속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이제 세계는 하나의 동일한 언어, 동일한 사유, 동일한 문화를 강요받고 있다.(문화전체주의 가능케하고 경제 전체주의를 겪고 있다.)

5.3 인류 세계가 이와 같은 또 하나의 <경제신화>를 만든다면 과거의 <종교신화>가 가진 비극을 되풀이 할 뿐이다.

5.4 강자는 <사이>의 영역을 언제나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약자에게는 그 <사이>가 자기를 존재케 해주는 소중한 울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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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갈피 글을 모아 보았다. 그녀는 현대사회를 작업적 활동이 아니라 노동적 활동으로 전도되어 있고 경제 전체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본다. 그런 현실에서 현대인은 고립이 아니라 고독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생각만 하고 살 수도 없으며, 밥도 먹어야 하고, 생각만하고 밥만먹고 살 수는 있지만, 식사를 하려면 함께 식성을 고려하고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식사엔 강제성이나 전문가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식사를 즐기듯이 남에 대한 배려, 식성고려, 취향고려가 전제 조건이라고 한다. 단위가 크든 적든, 셋만 모이면 정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처럼, 고독하게 살지 않으려면 그녀의 말처럼 척박하기만 한 현실에 행위가 필요한 정치적 공간 만들기와 개인적 인간다움에서 정치적 인간다움을 갖출 수 있도록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지 모르겠다.

 

제국주의는 자본가가 처음으로 정치적 역할을 떠맡은 시대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다중으로 표현되는 긍정성과 반대로 균열을 내기위한 노력과, 정치적 공간 -통로 만들기, 문화전체주의 가능성만큼이나 우려스러운 점도 많이 뒤섞여 있는 듯하다.

(정치, 진리, 권력, 노동, 작업, 행위, 사유, 의지...등등 기존 개념과 혼용되어 있어 논문의 개념과 많이 섯갈린다. 이를 어쩌나~ 굳이 피곤하게 알 필요까지 없겠지만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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