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고래는 죽었다 튼튼한
이빨 사이로 한 줌썩 어둠이 흘러나온다
숨 쉴 때마다 뿜어내던 검은 연기가
제 속을 채운 것이다
십 년 전,
이곳은 수풀의 바다였다
바람이 끌고 가던 물결을 거슬러
퉁 검은 고래가 엎드리자
사랍들은 일제히 고래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가
한꺼번에 몰려나왔고
그때마다 하루적 시간이 흘렀다
한 마리 고래가 바다 위에 마을을 일으키고
밥집을 만들고 캐러멜을 파는
포리 상회를 지었다
수풀의 물결은
지느러미에 걸려 넘어지기 시작했고
달력의 숫자만큼 그 속을 드나들던 사람들
볼윤 기침 속에 패여갔다
몇 년 뒤 ,

고래의 아가미가 텔레비전 속으로 지나갔다
소문이 폐수처럼 바다를 적셨고
거짓말처럼 고래는 눈을 감았다
진열대에서 캐러멜은 녹아 내혔고
밥집의 연기는 사라졌으며
야윈 사람들은 몸집보다 큰 짐을 이고
해 지는 마을을 느리게 벗어났다
허연 배의 고래만이 무인도처럽 퉁퉁 떠서
수풀 위를 흘러 다녔다 누구도
주소를 남기지 않았다 가끔 빚쟁이들이
먼지를 탐문했으나
헝겁처럼 무너질 줄 아는 먼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물결을 막고 들어선 고래의 역사는
제 뱃속의 어둠과 연결된 공정을 지녔다
다만 먼지에 뿌리를 꽂는 이끼가
고래의 내장을 걸어간 사랍들을
파렇게 기억할 때, 어둠은
오랫동안 자살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벼린 틈으로

칼날처럼 꽂혀있는,

햇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