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의 담론과 현실 나남신서 235
심영희 외 역음 / 나남출판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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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머니, 그 이름에 애틋함을 느끼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존재,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너무도 당연히 여겨왔다. 일정 연령에 이르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했다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 여성에게 있어서 결혼과 출산은 선택 아닌 의무였다. 그렇게, 나름대로 꿈을 가져왔을 그녀들은 한 남성의 아내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을 잊어야만 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마치 여성은 처음부터 어머니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 마냥,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치 못하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적지 않은 비난을 가해왔다. 하지만 당연시되어 오던 것들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어머니의 모성 역시 그러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모성은, 여성의 생물학적인 특성에 의해 저절로 야기되는 것으로 이야기되곤 했었다. 이는 어머니가 지닌, 단순히 아이를 향한 사랑만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다. 모성은 어머니를 둘러싼 모든 요소와 관련된 광범위한 개념으로 이 책은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하에 이 책은 참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모성을 바라보는 사회 시각에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하여, 고3 수험생을 둔 어머니의 정체성에 이르기까지의 주제들을 모성이라는 하나의 단어 안에 담았다.

어머니의 위치는 여성 운동계 내에서조차도 다루기 힘든 것이었다. 지난 1950년대 프리단이 쓴 <Feminine Mystique>은 미국 여성들의 자아실현이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를 위해 가사와 사회생활이라는 양대 산맥을 병행할 수 있는 부지런함을 지녀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여성들의 부담을 격증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70년대 독재 정권은 이전까지의 모든 자율적 성담론을 금지시켰으며, 여성의 출산 역시 여성의 선택 아닌 국가 차원의 것으로 변질시켜 버렸다. 얼마 전 출산 장려를 이야기하며 남성들의 정관 수술을 의료 보험의 영역으로부터 제외시켜 버린 것은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다분히 중립적인 것 마냥 포장되어 있는 법 안에도 여성, 특히 어머니는 인정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폐지 여부를 두고 진통을 겪고 있는 호주제는 말할 것도 없다. (이혼을 한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재혼할 경우 아이의 성이 아버지와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에 대해, 전 남편과 같은 성을 가진 남성을 만나라고 말했던 어떤 이의 말이 생각난다.-_-) 동성동본의 개념 역시, 어머니의 혈족은 2대 이상 고려되지 않는, 부계 중심적인 개념이지만 가족법 내에서 이러한 문제 제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박완서의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엄마의 말뚝2> 등은 남성 중심적인 가정 내에서 남성(아들)의 상실(죽음)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한 여성(어머니)의 이야기를 또 다른 여성(딸)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가족제도가 지닌 가부장제에 대해 여실히 보여준다. 수많은 TV 광고, 드라마들은 전통적인 어머니상의 여성을 보여줌으로써 모성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하나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이렇듯 여성은 어머니로서 존재할 때 비로소 존경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시각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지만, 막상 어머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많은 여성들은 출산 이후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낳은 정, 즉 본능적인 무언가 보다는 기른 정, 즉 관계의 진전 속에서 갖게 되는 애착 관계의 중요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여성이 많다는 사실은 모성이 결코 출산 그 자체로부터 야기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해준다 하겠다.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 아닌, 가족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어머니로서가 아닌, 직장 생활을 통해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요즘 여성들을 두고 이기적이라고 만은 말할 수 없다. 얼마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수능 부정 행위에서부터 시작하여, 항상 이야기되고 있는 어머니들의 치맛바람, 촌지 문제 등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여성이 아이의 성공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빚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을 하더라도 절대 직장은 관두지 말라고 어머니께선 항상 나에게 말씀하신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을 여성의 1차적인 책임으로 여기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기적이라는 주변의 시선이 그러하며, 아이를 맡길 곳 없어 방황해야 하는 현실이 그러하며, 무엇보다도 어머니라면 으레 이래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에 젖은 우리 자신이 그러하다.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어머니상을 보고 자란 우리, 절대로 어머니처럼 살진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그렇게 조금씩 그 모습을 닮았을 우리에게 모성은 어쩌면 이미 당연한 무언가로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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