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가 선의만을 낳는가?

 

소비자는 왕인가? 소비자는 고르고 고르다가 왜 직접 수제에 관심을 갖는가? 그러다가 직접 기르고 키우고 몸을 쓰게 되는가? 우리가 고른다고 하는 정치인은 상품이 아닌가? 정품이거나 작은 흠집만 있어도 버리고  온갖 트집을 잡아 반품할 궁리하는 상품은 아닌가? 소비자의 안목이 못잡아내는 것은 무엇일까? 소비자 9단인 우리는 정치도 9단일까? 좀더 쌘 상품이 나오면 늘 갈아타는 소비자는 아닐까? 조금만 불편하면 그냥 육두문자를 날리는 것은 아닐까? 관전에만 익숙한 것이 우리는 아닐까? DO IT YOURSELF! 직접 만드는 일은 요원한가? 선거때만 정치인이 되는 구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소비자 트랙을 벗어나야만 하는가? 소비자 트랙을 벗어날 수 있을까? 정치는 생물일까? 정치는 가장 늦게 1년에 1cm만 더디 자라는 구제불능인가? 


모두가 대통령을 꿈꾸는 세상

 

대선후보들은 한결같이 꿈에도 대선후보가 되리라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왜 꿈에도 해보지 않은 것일까? 꿈에도 현실에도 해보지 않은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녕 무엇을 믿으라는 것일까? 백일이 지나자마자 아성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집단의 관성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가지고 있는 힘들을 모으고 순간적인 발휘를 해야할 권한을 주는 것임에도 겸손이 아니라, 정녕 그러하다면 그 집행력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권력을 잡고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숱한 난제를 풀기위해 권한을 어떻게 행사하고 완급을 조절하고 모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밥상머리에서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까다로운 소비자가 맞는 것일까? 수중에 넣기만 하면 자기 것이 되는 것으로 여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애물단지로 그렇게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수준은 아닌가? 그렇게 이명박에 환호했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모두가 시장을 꿈꾸는 학교

 

한자리 한다. 한자리해서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한자리해서 무엇을 하라고 한 것일까? 돈의 쓰임새가 달라진 것이 있기나 하는가? 그대로 쳐진 울타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닐까? 된 것이 아니라 되고 난 이후 그리는 세상은 무엇인지? 한점이라도 바꾸기는 한 것일까? 타성에 젖은 있는 그대로 궤적을 밟고 가는 일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자마자 재선이라는 덫에 걸려 정해진 경로만 가본 것이 현실이 아닐까? 아이들이 꿈꾸고 그리는 경로는 어디일까? 정해진 돈, 정해진 사람, 정해진 일감......에 아이들은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그린 그림을 따라갈까? 아이들에게 안정된 길만 걷게하고 제 자신의 운신만도 하기에 벅차게 하는 현실이 정녕 합당할까? 정치의 저변 문화는 있는가?  학교의 장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제한된 돈과 사람, 도움을 받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묻지 않는 세상? 그저 공약으로만 점철되고 되자 마자 잊어버리고 또 다시 있으나 마나 한 공약이 다시 떠오르는 반복은 아닐까?


정치는 예술인가?

 

권력만 탐하고, 남용을 재미삼아 가지려는 욕망의 언저리에서 정치는 구태일 것이다. 소비자로서 까탈스러움만 남고 디테일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현실, 가지고 있는 힘들을 모아 어떻게 써야하는지? ... ...


저자는 정책플랫포옴 구성의 필요성을 비롯해, 기존의 진보가 말하는 신자유주의, 최저임금, 한미fta에 대한 환원적인 사고가 디테일을 가려버려 현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실물에 대한 데이터를 하나도 보지 않는 진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관심조차 없고 신자유주의라는 시각에 근거해서 취하는 정책들이 살아있지 못하다고 한다. 남의 나라 현실을 여기에 이식시키는 일은 맥락이 있을텐데, 그 맥락도 없으며, 사안들 간의 활력들도 떨어진 경직된 정책이기 일쑤이다라고 한다.

 

뱀발. 이런 저런 일들로 온전히 책을 보기가 쉽지 않다. 내치는대로 보다가 접고, 접은 다음 펼치고 관련 기사도 보면서 시공간을 끌고 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뉴스레터는 메일로 보고 있었지만 이렇게 저자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아직 낯설어 판단은 유보중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살아숨쉬는 정책과 현실에 대한 분석과 인식은 진보? 아니 상식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눈여겨 보아야 할 듯싶다. 더불어 마르크스가 함유하고 있는 주변과 언저리들, 그 연결망들 역시 눈여겨보아야 한다. 디테일과 거대한 흐름에 관심이 없거나 물러서 있는 것이 지금인 것 같다. 대관소찰, 입고출신 음 맞나??

 

2013년 이후(상)

 왜 커피전문점은 이리도 많이 생기는걸까

 

 

2004년 총선,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과 촛불, 정당지지율의 급격한 요동 등으로 나타난 한국의 정치적 역동성 및 급격한 쏠림 현상은 소득이 변변찮고 시장의 충격에 그대로 노출된 실업자, 반실업자, 영세자영업자, 영세기업 근로자의 규모와 기득권 위주로 짜인 불합리한 격차, 이를 방치한 진보와 보수 주류세력들의 정치적 무능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커피전문점, 편의점, 지입제 화물자동차 사업, 노래방 등 돈 좀 벌리는 자영업이 생기면 하겠다는 사람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살인적인 경쟁이 일어나는 이유도 높은 소득 혹은 '괜찮은 일자리'를 원하는 유동화된 노동력과 고학력 인구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한국은 노동자의 나라라기보다는 실업자, 자영업자, 취약근로자의 나라이다....원래 노동의 이해와 요구의 핵심은 고용안정=정년보장, 비정규직 철폐, 임금인상, 노동3권의 보장 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경제활동 인구 속에 숨어 있는 실업자, 통계청 조사로 추정한 공식 실업자, 자영업자, 취약근로자의 이해와 요구의 핵심은 공정한 경쟁기회와 공평한 보상, 적정한 자본건과 벤처창업 활성화, 경기활성화 등이라고 보아야 한다. 95-96

 

임금 상위 10%가 하위 10%의 몇 배 인지를 따졌을 때, 스웨덴(2.33배), 덴마크(2.64배), 핀란드(2.42배), 노르웨이(2.21배) (한국은 4.51배로 헝가리, 미국에 이어 3위) 가 매우 낮게 나온다. 분명한 것은 부문, 직업, 직능, 기업 간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비슷하면 괜찮은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결코 치열해질 수가 없다. 입시위주 교육이나 사교육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 스펙쌓기, 고시 공시열풍도 발붙일 자리가 없다. 고용의 '유연안정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쉽다. 기업은 고용에 대한 부담이 덜한 만큼 고용률이 매우 높아진다. 105

 

한국에서 수많은 사회문제의 핵심 원인은 지나치게 크고 불합리한 자산, 소득, 권력의 격차다. 낙차가 큰 데서 격류와 폭포가 생기듯이 직업, 직장, 부문에 따른 격차가 너무나 크고 불합리하면, 격렬하고 소모적인 경쟁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 물리적인 법칙이다. 물론 오늘의 북유럽을 만든 사회적 유인체계, 즉 작지만 합리적인 사회적 격차, 고율의 세금, 튼튼한 보편복지, 높은 사회적 신뢰 등이 역사, 문화가 전혀 다른 미국, 한국, 중국, 일본에 그대로 이식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은 북유럽 시스템의 합리적 핵심을 전향적으로 수용해야 한다....우리는 우리의 체질과 산업구조와 지정학적 조건 등에 맞는 정치, 경제, 사회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107

 

지금 한국은 하는 일에 비해 엄청난 고임금을 받으며 정년을 보장받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생산직도 정상(상식)이 아니며, 직장 수면이 너무 짧은 사무직도 정상이 아니다.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사무직에게 가하는 구조조정의 충격은 좀 자제, 완화해야 한다면, 충분한 투쟁(방어)력이 있는 대기업 생산직은 노동시간(잔업,특근 등)과 예외없는 정년보장(정규직화) 원칙이라도 좀 양보하여, 파트타임에 계약직이라도 신규고용과 청년고용이 더 많이 창출되도록 해야 한다.  109

 

자본은 실력을 가진 자에게 많은 보상을 하는 가파른 유인체계를 추구한다. 그러나 노동은 그 격차를 인정은 하되 가능한 줄이려고 해 왔다. 약자에게 보다 유리한 유인체계와 노동의 질에 따른 보상체계, 즉 산업 차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추구해 왔다. 이 과정에서 스웨덴 노총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연대임금 전략을 채택했다. 1933년 건설쟁의에 개입, 성과급 비율을 억제시켜, 당시 스웨덴 산업노동자 평균임금의 170%이던 임금을  130%까지 압축하자 노조의 조직률은 급상승하였다. 한국 조직노동은 이런 개념이 없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공장의 담벼락을 넘지 못하고 있다.  112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헌법과 노동법 등에 명시된 권리를 정부가 보장하거나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이었다. 권력자와 소수특권집단이 거의 모든 것을 독점하다 보니, 민주 민권운동은 즉자적인 권리챙취 운동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시민사회운동은 순수성, 정치적 중립성, 도덕성을 중시하게 되고, 현실정치나 국가경영과 상당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원래 정치적 경쟁은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사회 세력 간의 국가비전 경쟁이다. 동시에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의 지속적 발전을 담보하는 바람직한 질서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경쟁이다. 123


 민주화운동과 선거제도의 한계로 인한 비전과 정책 실종


몇명이 나오든 1위 득표자 1명을 바로 대통력으로 확정하는 선거제도와 역시 1위 득표자 1명을 당선자로 선출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분열이 숙명인 진보진영으로 하여금 일대일 구도 형성을 위한 연대, 연합, 통합 담론(정치공학 담론)을 핵심 화두로 만들고, 국가비전을 뒷전으로 밀어 버렸다. 또한 소선구제는 국회의원 후보자로 하여금 지역구민과 악수하고 포옹하고 식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게 만드는 '땅개정치'를 강제함으로써 지적 수준을 더욱 떨어뜨렸다. ...결선투표제의 부재..청책능력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공천제도도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다......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숙성된 국가비전과 정교한 개혁프로그램 없이 단지 "나쁜 짓을 안 하고, 나쁜 짓을 반대"하는 것을 핵심가치로 삼다 보니, 비전이나 건설 프로그램이 취약했다. 시민운동도 "나쁜 짓을 감시하고, 폭로하고, 규탄"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노동운동은 가치생산생태게의 건강성이나 사회적 기여, 부담과 권리, 이익의 균형=공평에 대한 생각 없이 자신의 호주머니에 더 많은 잉여를 쓸어 담는 운동으로 일관하였다. 그 과정에서 중시된 가치가 반독재, 탈권위, 반부패, 불간섭, 도덕적 신뢰, 투명, 분권, 참여, 강한 노동권이다. 당연히 공정, 공평, 미래비전, 전문성, 유능함 등은 상대적으로 중시되지 않았다.  136-137

 

한국의 현실은 가치생산생태계나 먹이사슬 개념으로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노동과 자본의 대립투쟁 프레임은 총천연색 세상을 흑백으로 보는 것과 같아서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한다. 현실을 과도하게 추상화해 버린 이 프레임은 우리 사회의 결핍, 불안, 갈등, 비정규직, 청년실업 등의 문제를 자본논리의 과잉에서 찾고 해결책은 노동의 단결투쟁과 국가의 적극적 재분배(복지)에서 찾는다......한진중공업의 협력업체 노동자가 보이지 않고, 재벌대기업의 문제에 있어 초과 착취한 가치를 가장 많이 가져가는 존재인 종업원과 노조의 책임에는 완전한 면죄부를 준다... 145

 

우상이 바뀌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가 아니다.


대표적인 우상은 낙수효과와 파급효과다. 전자는 보수가, 후자는 진보가 숭배해온 가설이다. 진보와 보수의 우상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보수가 섬길 것을 강요하는 최고의 우상은 개방과 경쟁환경을 만들고 기업과 부자의 이익추구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여 그들의 지갑을 두둑하게 채워주는 보이지 않는 손과 낙수효과(선순환효과)에 의해 돈이 흘러내려 모두가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 것이라는 가설이다....반면 진보가 섬길 것을 강요하는 최고의 우상은 대기업, 공기업의 조직노동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찾아 약진하여 근로조건을 개선하면, 아래로 주변으로 확산 파급효과에 의해 모두가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 것이라는 가설이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들어맞았지만, 오히려 경제활동인구의 10%의 이익만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보수는 말로는 개방과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강조했지만, 경쟁과 개방은 오로지 사회적 약자들에게만 강요되었다. 진보는 말로는 공공성과 연대를 강조했지만, 공공성은 대체로 공무원과 공기업의 권한과 자리를 늘리는 명분으로 사용되었다.  200-201

 

2013년 이후(하)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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