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우리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의미를 띠었던 것이다.-레비스트로스-"

 

 

법과 종교의 이전으로 맹세

 

법과 종교는 바로 언어 경험에서 이러한 파열을 막기 위한 시도에서 태어난다. 법과 종교는 둘 다 발화를 사물(사태)에 묶어두려고, 저주와 파문을 통해 말하는 주체를 그들이 하는 발화의 진실화하는 힘에, 그들의 '맹세'에, 그리고 그들의 신앙 선언에 묶어두려고 애쓴다. 122

 

맹세는 선언도 아니고 약속도 아닌 다른 것, 푸코 식으로 말하자면 '진실 말하기'로서,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는 주체와의 관계만을 그것의 수행적 효력의 유일한 규준으로 가지는 말이다. 선언과 진실 말하기는 말하자면 '로고스'의 공기원적인 두 얼굴인 것이다. 121

 

 

맹세: 또다른 살붙이, 욕설에서 살다

 

하나님의 이름은 항상 참인 이름, 오로지 참일 뿐인 이름, 즉 의심하는 것이 불가능한 언어 경험을 이른다. 인간에게는 이 경험이 맹세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이름은 맹세이며, 모든 이름에서는 '믿음'이 관건인 것이다. 115

 

독신(제기랄! 오마이갓!같은 욕설)은 맹세의 일종이다. 다만 신의 이름이 선언이나 약속이라는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그 자체로, 부당하게, 의미론적인 내용과 무관하게 소리 내어 말해지는 맹세인 것이다. 88

 

말과 사실(또는 행동) 사이의 관계이며 이것이 맹세를 규정한다는 점이다. "내가 만약 이 맹세를 어김없이 완수한다면 내게 좋은 일이 있을지어다. 하지만 만약 내가 이 맹세를 어기고 위증한다면 그와 반대의 일이 내게 있을지어다." 말과 사물(사태) 사이의 결합을 의미하고 보증하는 신의 이름이 이 관계가 깨질 경우에는 저주로 바뀌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본질적인 것은 축복과 저주의 공기원성,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맹세에서 같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80

 

 

맹세의 정치사

 

맹세의 정치사에서 종교와 정치 사이의 분리 과정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던 '원초적 무구별 상태'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들에 있어 종교적이고 세속적 영역들을 규정하는 기지의 특성들, 정확히 말해 역사가들의 끈질긴 노력의 산물인 그러한 특성들을 이른바 이 '원초적 무구별 상태'에 단순하고 무비판적으로 투사하지 않는 지혜를 갖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화학적 화합물이 그것을 이루고 있는 성분의 합으로 환원될 수 없는 특수한 고유성을 갖듯이, 역사적 분리에 앞서 있는 것이 반드시 그러한 부분들을 규정하는 특성의 합, 그러한 특성들의 불분명하고 구별되지 않는 합인 것은 아니다. 40

 

이 고고학이 도달하기 바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와 '역사의 최말단'의 성격과 토대이다.....그것은 마치 인도유럽어가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접근 가능한 언어들 사이의 동족 관계 체계를 표현하는 것과 같고, 정신분석학에서 아동기가 성인기의 정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힘을 표현하는 것과 같으며, 우주 발생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빅뱅'이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배경 복사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천체 물리학자들이 해당 시점을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빅뱅과 달리 'arche'는 어떤 소여, 실체, 사건이 아니라 인류발생과 현재 사이에, 역사의 바깥과 역사 사이에 펼쳐져 있는 역사적 흐름의 장이다. 30


 

맹세의 새로운 위치

 

지금까지 학자들은 맹세라는 제도를 끊임없이, 노골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주술-종교적 영역에 근거해, 다시 말해 거짓맹세를 처벌함으로써 맹세의 효력을 보증하기 위해 개입하는 신적인 힘 또는 '종교적인 힘들'과 관련시켜 설명해왔다....나의 가설은 정반대이다. 즉 주술-종교적 영역은 맹세에 논리적으로 선재하는 것이 아니며, 차라리 종교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맹세라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136

 

인간성이 어떤 탈구 앞에 처해있다는, 적어도 살아있는 존재자를 언어와 묶어주었던 결합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편에는 갈수록 더 순전히 생물학적인 실재로, 벌거벗은 삶으로 축소되는 '살아있는 존재자'가 있다. 다른 한편에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각종 장치들을 통해 더욱 더 공허해져버리는 말의 경험 속에서 인위적으로 전자에 분리되는 '말하는 존재자'가 있다. 그러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것도 불가능하고 또 그러한 말 속에서는 정치적 경험 따위는 갈수록 더 미덥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다. 말과 사물(사태)과 인간의 행위를 하나로 묶어주는 윤리적인 연관이 깨지면 사실상 한편으로는 공허한 말이, 다른 한편으로는 입법장치들이 대대적이고 유례없이 만연해 더 이상 통제 불능으로 보이는 그러한 삶 전반을 법으로 집요하게 틀어쥐려고 한다. 145

 

인간, 그리고 철학의 필요

 

...인간은 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라고 말해야만 하고, '말을 붙잡고' 떠안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생명체이다. 언어에 대한 서양의 사유가 언어의 형식적 장치들 속에서 언표화 기능, 다시 말해 화자로 하여금 구체적인 담화 행위 속에서 언어를 떠맡게 하는 수단인 지시사 또는 전환사들의 총체를 따로 식별해내기까지는 무려 2천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철학은 인간을 언어에 연결시켜주는 성사적 결합을 의문에 부치며, 바로 그런 까닭에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고 또 말의 허망함에도 빠지지도 않는다. 유럽 각국의 언어가 헛되이 맹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듯 보이며 벌거벗은 삶에 대한 빈말에 대한 지배라는 형태를 띨 수밖에 없는 이 때, 언어를 지닌 살아있는 인간이 이르게 된 극단적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으로 저항과 변화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또 다시 철학인 것이다.  146-148

 

 

 

뱀발.  말과 사물(사태), 행위에 윤리적 연관이 깨어지면서 악이 시작되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발가벗은 삶은 법과 종교와 언어와 그 우수마발에 끼이고 치여 숨조차 쉴 수 없다. 2천년의 역사라는 것이 이렇게 비참을 만들어낸 것일까? 저자는 그 시원의 근원을 달리보자고 말한다. 지금으로 거기를 보는 역사, 주술-종교, 사법-공법의 시선이 아니라 그 막다른 벽의 시작은 아마 분자와 분자의 결합이 전혀다른 성질을 갖는 화학적 결합이듯이 다른 관점에 보아야 한다고 한다. 말과 사물과 행동의 일체가 되는 그것. 인류발생의 이전은 빅뱅처럼, 아동기를 발굴해놓은 정신분석학처럼, 유럽언어의 모태인 인도유럽어의 시작점처럼 전혀 다른 덩어리라는 것이다.

 

욕설은 감정과 행동과 몸의 상태를 정확히 표현해낸다. 저주라는 것이 맹세와 한몸뚱아리라는 것이다. 맹세의 고고학. 그 기원을 찾아가며 지금 시대를 저자는 읽는다. 인간은 말을 붙잡고 떠안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생명체라 한다. 그 뒤집힘으로 맹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문어-구어-욕-말과 사물, 행동의 윤리적 연관: 집합적 주체....독일까 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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