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진보]란 책을 꺼내듭니다. 내키지 않는 책을 권한 건 아닌지 조심스럽군요. 상재샘, 이책은 문지문화원 사이와 이음출판사가 공동기획했던 인문특강 ‘지금-여기의 진보: 2012년 진보를 다시 묻는다’를 강연이후 새로 모은 따끈한 겁니다. 소설책 같이 쭉쭉 읽히지도 않고, 또 지금 선거 국면이기에 예기치 않은 각오도 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렇게 권해봅니다.

 

 

 

사람이아니무니다.

 

성공해야 되는 걸까요?

꿈은 꼭 있어야 되는 건가요?

어떻게 사나요? 물으면 다들 '그냥그냥 살아요'라고 답합니다. 그냥그냥 살죠. 대부분은 성공하지 않아도 살죠. 그런데 사람도 아닌 취급을 받잖아요. 상위 10%로가 아닌 이유로, 꿈이 없다는 이유로,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인해 목이 없는자, 보이지 않는자, 열외자는 사라미아니무니다. 세상은 성공과 자기계발에 발목잡혀 있어 정작 성공도 열려 있지 않고 서로 성장도 할 수 없지 않나요.

 

 

책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수면위로 떠오르더군요. 아마 앞으로 십년동안 노동이 자본에 버금가도록 회자되지 않는다면 이땅은 희망이 없을지도 몰라요. 하종강샘은 굴곡되어 생략되어버린 우리 근대사를 언급하면서 말하더군요. 유럽, 하물며 미국도 노동권을 주장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유독 이땅에서는 금기어가 되어버렸다고 말에요. 실업계 학생들에게도 노동권 교육을 시킬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사실. 선생님도, 경찰노조도 군인노조도 노동자가 당연한 삶임에도 부끄럽고 얘기조차 못하는 나라라고 하더군요. 홍세화대표는 노동을 오르내리지 않는 이상, 진보는 갈 길을 잃었다고 봐야 한다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배제된 자의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말합니다. 진보는 죽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자본주의는 길을 잃었나요?

 

우리는 어디에 서 있나요? 소비자인가요? 취향의 깊이에 더해서 하나하나 꼼꼼함이 스며드는 소비자로서 권리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택광샘은 쾌락만 추구하도록 세팅되어 있어 노무현도, 이명박도, 안철수도, 문재인도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소비재로 보는 것은 아닌가 반문합니다. 알맞은 상품에 대해 소비자의 까칠함이나 기호만 반문할 뿐이지 정작 소비자를 넘어서는 자신에 대한 뿌리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성장, 성공, 자본주의의 정상회복을 그 후보들에 기대어 투영하는 것은 아닌가? 정작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는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는 정작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면에서 팬으로 자족하고 소비민주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한계를 가져 삶의 입장에서 물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욕망과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때, 민심의 급속한 이반은 설령 돌이키지 못할 사태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파고에 휩쓸리는 경제적인 위기가 연동될 때이거나, 구체적인 행정 등 현실화시키는 능력이 떨어질 때 그 상품들은 값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닐까요? 어이가 없는 현실 속에서 정상적인 자본주의만 원한다는 점도 긍정적인 점은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순간 대부분 표준시민은 위로만으로 위무되며 정상화에만 목이 말라 삶의 민주주의를 건드리지 않는 신보수주의 정향을 갖게 된다고 지적한다는 점에서 일리있다고 여깁니다.

 

 

강남좌파가 아니라 신신좌파라는 시론을 시인 심보선샘은 펼칩니다. 특정지역, 특정입장에서 진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투쟁에 머무는 정치가 아니라 삶과 행복을 향한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유럽의 신좌파, 생활에 근거한 강남좌파를 넘어서 희망버스같이 불안의 시대를 넘어서는 삶의 기반을 다시 만드는 지점을 잘 살펴야 한다고 합니다.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 '조직없는 조직화'의 방식으로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장석준샘은 ‘녹색사회주의’를 내세웁니다. 화석연료의 시대의 말미 자본주의는 더 이상 발전을 할 수 없는 근거를 유럽과 여러나라의 경험들을 이론적, 정치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에너지 민주주의를 비롯한 본질적인 변화에 착근하여 국가적인 해결에 머무는 국가주의가 아닌 '사회'에 방점을 두고 사회주의의 의미를 재정립하여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귀를 기울일만 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진보가 삶을 묻지 않을 때, 시간을 자장으로 넣지 못할 때, 얼마나 무기력하며, 끊임없이 저기에서 소멸해 갈 수밖에 없다라는 점을 여러 측면에서 조명하거나 시도하고 있습니다. 제한된 이성, 이론과 이념의 때를 과도하게 뭍히면서 그것이 마치 새로운 것처럼 주장하게 되고 마는 현실을 우려합니다. 좀더 근원적인 질문을 생태 문화적으로 해봐야 하며 삶의 뿌리에 접목시킬 것을 요구하는 듯 보입니다.

 

 

상재샘, 지역은 어느새 저기에 물든 것은 아닌가요? 대전에는 저기로 향하는 중앙과 흐름을 쫓는 것은 아닌가요? 삶과 진보의 안부를 묻거나, 일상의 공유나 지역의 마음땅에 서로 키우거나 자라게 하는 이곳만의 색다른 진보의 삶경험은 없나요? 모두 제도안만 기웃거려 정작 정치의 공간에 착근하려는 싹들은 잘리운 건 아닌가요? 제도밖과 곁은 진보들이 넘나들 교두보는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제도밖만 고집해 비정치적인 삶을 은연중에 우리는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여기의 진보는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나요? 아무것도 없음, 공유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밖에 공유할 것이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하나요? 진보도 삶도, 일상도 한번 되묻고 싶어져 불쑥 책을 내밉니다.

 

뱀발.  따로따로 적힌 글들을 읽다보니 다른 듯하면서도 하나로 모아진다. 예술의 정치를 다시 이론적으로 탐하는 것도 그렇고, 학생들의 상황을 수용자 1,2,3으로 다루는 것도 그렇다. 인정투쟁이나 제도개선에 머무르지 않고 '삶'을 탐하기에 반갑다. 자본주의의 결을 벌리기에는 만만치 않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유럽의 3백년의 피가 이렇게 압축되어서 여기에 솜사탕처럼 내리지 않을거다. 자본주의 이후의 삶에 대한 배수진을 친다는 각오로 임하거나 설계하지 않으면 무르춤, 어이없이 무릅을 꿇고 말 것이다. 박상훈샘의 최근 레디앙 인터뷰에 보태 그 가슴의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탐색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 한걸음 모두 피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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