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요리사 김윤희[남명옥배우]는 자살한 남편의 복수를 위해 사채업자 양동철[조중석배우]의 집으로 향한다. 무대는 단 한곳- 양동철의 집.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양동철의 집은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가정집이다.밖에서는 악랄한 사채업자일지 몰라도 그도 어느 평범한 집의 가장처럼 가족들에겐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었다.-----끝내는 둘 다 안쓰러운사람들.
연극, [지상최고의 만찬]을 보다. 사채업자 동철은 윤희에게 비아냥거리면 말한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해야한다고 말이다. 악랄함은 공적인 것을 완수하기 위해서 거리낌없이 사용할 기술과 같은 것이고, 아이에게 무한애정을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한다. 자살한 남편은 찌질함의 저끝은 아니냐고 항변한다. 그러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딸아이에게 가해질 위험이 폐부에 닿고서야 처절함에 살려달라고 울부짖는다.
며칠전 통계청의 발표를 듣고 넘겼다. 그러다가 다음날 아침 뉴스에서 다시 듣게된다. 45세까지 남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데 고졸이하의 학력이 절반이 넘는다.절반이. 여성의 경우 대졸자가 그러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관계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이유때문만은 아니다. 불화나 이혼 등 여러사유가 있겠지만, 돈이 그 관계를 난도질하는 것이 팔할을 넘을 것이다.
살아지는 순간, 자의든 반타의든 가정을 이루며 아이를 낳고 시작하는 삶은 끊임없이 평균적인 시선과 시각을 요구한다. 따듯함을 사적인 틀로 끌어들이며 책임을 지운다. 사회적 삶은 평균적인 삶을 옭죄면 배추잎을 소금에 절이듯 점점 진하게 배어든다. ....그래서 살아지는 삶의 엘리베이터에 발을 디디는 순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수면아래의 삶 - 그 맥락은 쉽게 판별이 되지 않는다. 삶의 이력이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는 끈들이 얽히섥히 난삽하다. 하지만 세상은 되뇌인다. 단란한 가정이 있고, 따듯한 개인이 자유롭게 무엇을 할 수 있고, 우울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유쾌가 있다고 한다. 살아지는 삶에 있어 그 수면을 떠오르기가 쉽지 않다. 개인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운신으로 해결할 수조차 없는 다른 것이 있다.
비극이다.
살기위해 동료를 팔아야 하는 비극. 결혼해도 폭력에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비극. 아무리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해도 병원비조차 되지 않는 현실에 있어 가정이란, 결혼이란, 자유란 무엇일까? 그리고 점점 더 그 삶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이가 늘고 있는 현실에서 나만, 나만 자유로울 수 있거나 원하는대로 갈 수 있는 확율이 높다는 생각은 안전할까?
따듯함이 점점 줄어드는 속도를 의심해봐야 한다. 나의 따듯함, 차거움이 따듯함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보면, 주위가 급속히 차거워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시선은 따듯함에만 주면 안된다. 차거움의 이유에 대해 직시해봐야 한다. 피하지 말아야 한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단란함에 기대고 싶은 욕망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연결된 나, 서사적인 나. 살아가는 삶, 자본의 결기을 비웃고 감고 나갈 수 있는 연결된 삶의 시도. 그래야만 아마 조금 삶의 늪에 빠진 이에게 손길을 건네거나 손잡을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마련되는 것은 아닐까?
무더위의 한 복판, 서편의 반달은 점점 기울어진다. 이야기는 점점 익는다. 결혼하는 이의 삶의 시작이 좀더 풍요롭거나 삶의 늪에 도저히 빠질 수 없는 가벼운 이들과 가벼운 삶의 연결로 이어지고 그 삶이 좀더 부럽고 샘이 나면 어떨까 싶다. 밥-삶-일-관계-만듦의 연결망이 현실을 장난치며 넘을 수는 없을까?
뱀발.
1. [해마]이후 비슷한 주제의 연극을 다시 접한다. 벙개 겸해서 뒤풀이 겸 조촐한 맥주만찬을 하다.
2.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나누길 좋아하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데 사채업자 양동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똥바가지에 똥을 맞은 기분이다. 애초에 그런 것은 없다. 비극의 현실을 너무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기농산물을 먹고 싶어도, 다이어트를 위해 한끼만 먹는 이가 아니라 한끼밖에 식사를 할 수 없는 이들. 투명인간의 현실에 그저 스치고 서로 지나가는 사이는 아닐까? 현실에서 관계라는 것도... ...
3. 배우들의 몰입연기에 아찔하다 싶다. 혹 다치지나 않을까?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