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 자고 나면 날마다 빈 화폭과 마주서는 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복된다. 빈 화폭은 귀순하지 않은 자유의 황무지이다.  그 화폭은 인간의 세속에 펼쳐져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빈 화폭은 아직 경험되지 않은 낯선 공간이고 태어나지 않은 의미의 잠재태이다.(중략). 빈 화폭은 그 안에 , 살아있는 인간의 흔적을 담아서 이 세상과는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중략).고수가 북채를 들어서 북을 때릴 때, 그 첫 번째 북소리가 울리는순간 이 광막한 시간은 인간이 주무를 수 있고, 인간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새로운 시간으로 짜여진다. 미래의 시간 위에서만 악기를 연주 할 수 있듯이, 미래의 공간 위에서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림과 음악의 앞에는 하얗게 빈 시간과 공간이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

 

손철주 - '그리다'는 움직씨이고 '그립다'는 그림씨이다. 묘사하면 그림이 되고 갈망하면 그리움이 된다. 그림과 그리움은 밑말이 같아서 한뿌리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없어서 애타고 모자라서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림은 부재와 결핍을 채우려는 몸부림이다.

 

이주은 - 낮에 스치듯 바라본 그림이 간혹 의지와 상관없이 심연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바닥에 가라앉은 하나가 동요를 일으키며 무슨 이야기를 걸어온다....(중략) 정작 우리가 음미하고 싶은 것은 배가 부르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을 풍부하게 해주는, 그래서 다 먹고 난 뒤에도 혀로 입맛을 다시게 되는 그런 맛이다.

 

 

 

  심상용 - '약하고 상처받기 쉬움'으로부터

 

 믿음은 약하고 상처 받기 쉬운 영혼에게 특히 중요하다. 난관은, 강자에게는 자신들의 힘을 사용할 기회지만, 약자들에게는 믿음만이 자신이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산임을 확인하는 계기다. 약자에게는 고통과 상처가 더 좋은 믿음의 조건이며, 그래서 더 비옥한 예술의 토양이기도 하다. 수많은 좋은 예술은 상처 받은 영혼이, 믿음이라는 나약해 보이는 힘에 의존해 벌여온 도전의 결과다.

 

오늘날의 예술은 지루하고 권태로운 것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존재 깊은 곳에 내재하는 영혼의 갈증을 인식하는 사람은 약함, 깨지기 쉬움, 상처 받기 쉬움이야말로 '진리의 비은폐'를 경험하는 고유한 장소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안다. 약함 자체야말로 존재론적이고 내재적인 손상에 대한 정직한 고백이다. 약함과 만남은 곧 자신과 만나는 것이므로 매우 아름다운 경험이다.

 

 

뱀발.

 

1. 김훈의 글은 짜투리가 없다. 맵시나 떼어내거나 건드릴 곳이 없다. 아침 한겨레 정희진의 김훈 글쓰기에 대한 언급도 겹친다.  빌려온 두권의 그리운 책 한가운데 생각 결이 마음을 흔든다. 심상용님 생각은 느낌이 오는데도 낯설어 몇번씩 책장을 되짚는다. 헌데 그래도 맘에 달라붙지 않은 것을 보니, 나란 녀석은 본디 힘을 지향하고 강함의 입장에서 풀려고 하는 속성이 배여나서 그런 거 아닌가.  그림과 그리움은 몹시 익숙한 나의 몸말이다. 이렇게 어루만져주는 이가 있어 공명한다. 책 마실을 나서기에 좋은 주제들과 인물이다. 조각가 권진규는 이렇게 다시 마주선다. 그리움도 유혹이란 주제의 그림들도... ...

 

2. 우리의 활동들이란 입맛을 다시게 되는 그런 것은 될 수 없을까? 삶의 미학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심미적 성향을 그리는 활동들, 그리움의 궤적을 그리는 그런 것은 될 수 없는 것일까? 너무도 김영민이 말하는 근육과 살에 집착하는 일상들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시간을 한웅큼 떼어 여유라는 딱지를 떼어 따로 보관해내야 겨우...아름다움이 비집고 나오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배여나오는 것을 보니 영락없는 구성주의자 강함을 추구하는 버릇이다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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