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에 나는
[결혼과 도덕]을 출간했다. 백일해를 앓고 회복되는 시기에 구술로 받아쓰게 하여 완성한 책이었다. 훗날 1940년에 뉴욕에서 나를 공격하는 주요 물적 근거가 된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나는 그 책에서, 결혼 생활에서 완벽한 정절을 지킨다는 것은 대체로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는 피차 염문이 있더라도 서로 좋은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펼쳤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자식을 가지면 결혼 생활을 연장하는 데 유리하다고 주장한 바는 결코 없었다. 오히려 그럴 때는 이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결혼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결혼에 대한 일반론들은 한결같이 감당하기 힘든 반대론에 부딪히는 것 같다. 다른 제도들이 초래하는 불행과 비교할 때, 어쩌면 이혼이 쉬울수록 불행도 줄어들지 모른다.
1930년, 나는
[행복의 정복]이란 책을 발간했다. 이것은 사회 및 경제 제도를 변혁시켜 어떤 것을 이룬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한 개인이 기질 때문에 야기되는 불행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식 선에서 충고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1944년 영국으로 돌아오다. 영국에는 토론의 자유가 가득했고, 나는 미국에서 누리지 못한 그 자유를 다시 한 번 만끽할 수 있었다....나는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를 더 한층 중시하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강의 주제도 '권위와 개인'으로 잡았다. 그것은 1949년에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산업주의의 확대를 동반하는 경향이 있는 개인적 자유가 약화되는 현상을 주로 다루었다. 221
어떤 이상들은 파괴적인 성격이 있어서, 전쟁이나 혁명 같은 방법이 아니면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 그런 것들 중에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경제적 정의다. 정치적 정의는 산업화된 세계에서 이미 전성기를 누렸으며 후진 산업국들에서는 지금도 추구되고 있으나, 경제적 정의는 여전히 고통스럽게 추구되고 있는 목표다.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려면 세계적 차원의 경제 혁명이 요구된다. 과연 피를 흘리지 않고도 그 이상이 달성될 수 있을지, 혹은 세계가 그것 없이도 끈기 있게 존속할 것인지, 나도 알지 못한다. 225
1949년 '런던 왕립 의학회'에서 맡았던 로이드 로버츠 Lloyd Roberts강좌를 묶어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The Impact of Science on Society]이란 책으로 선보였다.
1950년 말, 노벨상 - [결혼과 도덕]덕분에 문학상 부문에 선정되었다는 것이 나로서는 다소 놀라웠다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본 인간 사회 Human Society in Ethics and Politics]
[교육-특히 유년기 초기의 교육에 관하여 On Education, especially in early childhood]라는 책을 1926년 출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책의 심리학이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내가 너무 어린아이들에게 가혹한 교육 방법을 제시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가치들에 대해선 수정한 필요를 전혀 못 느낀다. 14
윤리 와 정치
가치의 이유들로 해서 나는, 윤리적 '지식'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산타야나의 주장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윤리적 개념들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윤리학을 빼놓고 인간사를 바라보는 것은 부적합하고 편파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윤리학은 정념에서 나오며, 정념에서 당위적 행위에까지 이를 수 있는 타당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원칙을 내 생각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며,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한 데이비드 흄의 좌우명을 받아들였다. 240
내가 윤리적 고려 사항들을 냉담하게 무시한다고 생각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인간도 하등 동물들처럼 자연을 통해 정념을 공급받기때문에 그러한 정념들을 함께 끼워 맞추자면 힘이 들기 마련인데, 긴밀하게 짜여진 공동체에 몸담고 있을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이럴 때 필요한 기술이 바로 정치의 기술이다. 이 기술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야만인이 될 것이며, 문명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책을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본 인간 사회]라고 이름 붙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242
소설을 쓴 이유
나의 첫 소설책은 [도시 근교의 사탄 Satan in the Suburbs]이었다....내가 소설 쓰기를 변호하는 까닭은 우화야말로 요점을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것을 종종 발견하기 때문이다. 1944년에 미국에서 돌아온 나는 영국의 철학계가 아주 이상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하찮은 것들에만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철학계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 어법'을 가지고 재잘대고 있었다. 나는 그 철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리하여 나는 이 같은 '공통어법'을 숭배 풍조를 조롱하는 다양한 우화들이 담긴 짧은 작품을 하나 써서, 철학자들이 실제로 무슨 의도로 '공통 어법'이란 용어를 쓰는지를 지적했다.....이것이 발표되자 수장쯤되는 사람한테서 편지가 왔다...그러나 그후로 논의가 잠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46-7
악몽, 꿈, 기타 등등 나의 나머지 이야기들은 나중에 [사실과 허구 Fact and Fiction]라는 책의 허구 부분에 편집되었다. 248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본 인간 사회]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이었으나 책을 출간한 후에도 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세계가 맹목적으로 위험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시킬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BBC의 '인류의 위기 Man's Peril' 방송이 되었다. 306
[상식과 핵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부분적으로 확대하여 핵 문제와 군축에 관한 책을 하나 더 쓰기로 한 것이다. 새 책의 제목은 [인류에게 미래는 있는가? Has Man a Future?]로 정해졌고 나는 바로 집필에 들어갔다. 378

뱀발. 권력에 대한 도서의 맥락을 옮겨놓아야 하는데 놓쳤다. 방송된 것들은 찾아보고 싶고, 소개되지 않은 책들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핵에 대한 성명 자료나 책들도 지금의 핵위기와 관련해서 좋은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