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경계를 들여다보는 자리가 낯설다.

1.아버지의 역할이 대문처럼 다가선다. 집장사를 해서 돈꽤나 있지만 노름을 손을 대서, 집을 찾아나선다. 무릅을 꿇어도 소용없다. 아들이 왔는지도 안중에 없다. 2.집장사를 하고 번 돈으로는 가족 생계에는 아랑곳없다. 어머니가 따로 챙겨야 등록금을 낼 돈이 겨우 모인다. 아버지가 아니라 웬수다. 얼굴은 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거구의 몸집은 딸아이만큼 왜소해졌다. 동생 결혼식날 알아보지 못한다는 아버지는 움직이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용케도 알아본단다. 동생과 사는 집에 돌아오니 눈물이 나오는 것이 어이가 없다.3. 아버지가 아니라 폭력배같다. 어머니를 때리고, 술로 일찍 세상을 등졌다. 아버지가 뭐란 말인가?

 좋은 이야기, 좋은 생각, 책속에 아픔만 나누다가 이렇게 늘 유사한 동선을 움직였음에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그들의 몸동작에 배여나는 것에 한치도 어깨동무를 하지 못한 아쉬움이 돌뿌리처럼 드러난다. 지난 몇년 사이, 나는 너에게 뭐였단 말인가? 지난 몇달 사이, 나는 도대체 너에게 뭐였단 말인가? 모임만 어루만지거나 저기만 건들려고 할 뿐, 나는 네 마음 한톨 어루만지지 않았다. 다가서는 너를 껴안는 법을 몰랐다.

 이렇게 당신의 삶의 울타리가 드러나고, 팽팽히 당겨진 울타리엔 열린 곳이 없다. 당신이란 삶의 담사이로 난 문은 어디있을까? 돌아서는 날, 그(녀)가 남긴 문자 "삶은 왜 이리 슬프고 아픈 걸까요" 가 밤을 가로지른다.

 난 뚱단지같은 머리의 배설문자를 남겼다. "삶이나 운명이 축구공같은 것이라면 다룰 수 없다는 보증이 없다고 할 수도 없지 않겠느냐고"  나의 죽은 문자는 아직도 삶을 책으로 난 길에 맞추고 있다. 삶으로 난 길에 책의 문자를 빗대보고 있지 않다.

 그(녀)의 삶으로 난 숲길엔 바람이 분다. 일찍 삶이 그렇게 허망하게 날벼락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더라면, 나는 좀더 일찍 그(녀)의 삶에 개입했을 것이다. 그 삶을 같이 살 수도 있었을 것이고, 책속의 활자를 그 날것에 접붙이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책이란 안개나 구름 속에 머무는 것이 허망하다고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어깨동무 하나 할 수 없는 것을 보면 허망하지 않다 할 수 없다. 

 

뱀발.  

1. 안해가 돈이 궁하다는 문자가 왔다. 난 안해의 삶의 경계를 묻지 않는다. 들여다볼 수 있기에, 일상에 겹누르는 무게를 알기에 삶을 묻지 않는다. 헌데 이것 역시 더 부질없는 일이다. 그(녀)를 통해 삶의 안부도 물어봐야되고, 삶의 한 경계가 어떤지, 아니면 등짐이 장대비처럼 쏟아져내리고 있는지 확인해야 되는 일이기도 하다. 

2. 모임을 반죽하는 사이, 달리는 일상사이로 응어리가 진다. 나는 모임만 아름답게 빗지 않겠냐고 한다. 너는 돈의 화마에 휩쓸리고, 일상의 화마에 휩쓸려 다리가 휘청거린다. 

3. 별동부대원들의 삶은 순수하거나, 순진하거나... ...애초에 자유가 그러하고 평등이 그러하다면 오히려 그 깃발을 내려 배려나 인정을 걸었더라면, 인문의 저 고지로 향하지 않고, 그(녀)의 삶으로 좀더 가까이 갔을까? 그의 일그러진 지난 날을 감싸안을 수 있을까? 좀더 우울한 모임의 시선을 달래볼 수 있을까? 좀더 삶의 연대에 책들을 불쏘시개로 쓸 수 있을까? 삶의 어깨동무라는 가정을... ...
  

4. 모임의 정면만 응시하려는 습속. 모임의 보이지 않는 그늘과 삶의 뿌리로 견고하게 지탱되고 있다면... ... 잘 되는 것도 그러하고, 못되는 것도 그러하다면... ... 일상의 삶들은 댕강댕강 잘려나가는데, 아직도 지금당장은 어디에도 없고, 낡은 책의 깃발만 나부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구름만 같은 책으로 귀화하라고, 인문으로 귀화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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