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선사하는 최상의 선물은 당신들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하는 것,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려주는 것, 머리 싸매며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애써 고민하고 언어로 토해내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8

 

새로운 인문학을 위한 제언은 지금-여기의 현실을 작파하고 ‘다른’ 현실을, 우리의 감각과 지식, 상식의 기반을 뒤흔들어 우리를 ‘낯선’ 변경으로 던져 넣는 것이어야 한다. 17

 

애들이 무슨 권리가 있냐?(청소년 인권), “천부의 성별을 혼란시키는 게 잘하는 짓이냐?”(성소수자 인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데?”(여성과 폭력) “정상인과 병신을 어떻게 똑같이 대접하냐?”(장애인 인권) “국가를 위해 노동자들이 인내해야지”(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군대도 안 가는 게 인간이냐!”(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그저 보라는 것만 봐라!”(검열과 표현의 자유)“미국사람과 동남아 사람이 똑같으나?”(인종차별의 문제) “그냥 죄다 죽여버리면 편할 텐데!”(제노사이드) 87

 

이 기관들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대중들은 언제나 강사가 전달해주는 지식을 그저 받아들이는 자, 다시 말해서 수용자의 위치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 세팅 안에서는 인문학 텍스트를 자기 삶의 문제와 연관시켜 치열하게 숙고하는 사유 활동은 결코 대중의 몫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강좌의 수강생들인 대중은 스스로 텍스트으 의미를 곱씹고, 자신의 지적 역량이 다하는 데까지 사유하는 자가 아니라, 강사가 해설해주는 지식을 받아들이고 습득하는 자일 뿐이다. 101

 

폭력은 기존의 사유 활동에 경계와 한계를 부여하던 공준들의 성벽에 균열을 일으킨다. 이 폭력에 의해 당신과 나의 사유가 기대고 있던 공준들은 의심에 부쳐지고, 당신과 나의 사유 과정을 규정해왔던 체계들은 와해되기 시작한다. 112 



 

임의적인 공리들을 토대로 하여 형성된 사유의 독단적 공리계에 행사되는 외부적인 것에 의한 폭력은 새로운 사유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유는 이성적이라고 가정된 주체의 능동적 작업이 아니라 외부에서 도래하는 폭력에 의해 강제되는 수동적인 것이기도 하다. 114

 

대항사유는 사유의 국가적 이미지에 포획된 지적 습관에 폭력을 행사하고, 임의적 공리들에 의해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사유의 경로들을 끊으며, 영원불변한 진리의 자리에 머물기보다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문제들의 해를 찾아 사유의 방식을 변형하는 유동적인 것이다. 117

 

도래할 인민이란 국가와 자본이 꽃피운 문명에 길든 문명인이 아니라 차라리 야만인이라 불리어야 하는 자들이다. 국가와 자본의 가치를 삶의 규범으로 삼은 자들이 문명인 혹은 교양인이라 불린다면, 그 규범을 거부하는 이들은 불순한 존재들로서 야만인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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