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좀더 다른 시각이 넘나들도록 강연이 피드백되고 강연자와 듣는 이의 긴장이 이뤄질 수 있을까? 성원이나 회원이 의견개진이 높고, 모임을 만드려는 노력은 어떻게 눈맞춤이 가능한가? 강의나 세미나를 좀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의도적 문제제기에 좀더 열릴 수는 없는 것일까? 근대사모임도 그러하며, 정치철학강연도 문제심화가 되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좀더 다른 시각, 다른 관점이 녹아나 말 그대로 시민이 참여하는 아카데미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독특한 관점이나 성향이 녹아들 수 없는 것일까? 운영이 그렇게 이뤄질 수는 없는 것일까?

모임이 좀더 결정력과 순발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느슨한 연결이나 고민의 끈들이 모임을 끌어가는 동력이라면, 무엇을 해야할까?가 아니라 어떻게할까로 전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미나,강연만이 아니라 뒤풀이의 다양한 관점과 이야기, 그 끈의 강도를 높여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2.

링안과 경계, 그리고 링밖 - 정치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위치와 방점을 어디에 찍는 것이 중요하다. 링안의 일을 하면서 자신은 링밖에 있다고 훈수를 두는 일만 한다거나 끊임없이 경계를 들락거려야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마음과 몸을 링안을 향한다거나, 자란다거나 성장의 관점에서 취약하다. 만일 여러가치 가운데 하나를 실현시킨다는 것에 사로 잡히지 않고, 삶을 길을 나눌 수 있다면, 그대로 있는 것도, *나라당이 되는 것도 인정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풍요의 자산이 될 수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그때그때 자신의 처지, 지금 당장을 품에 품어 어정쩡한 위치에 서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발디딜 곳도 분간하지 못하는 정치적 성인이 되어있지 못하다면, 스스로 좋아하고 즐기는 곳이 어딘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애매모호한 양태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3.

정책에 대한 신문을 끊은지가 오래되었다. 자신의 견해가 아니라 암송에 가까운 발언들의 습관과 일상화가 거북하기도 했던 연유다. 문득 강연을 들으며 지독히도 멀어져 구체성이 결여되었다는 느낌이 안긴다. 그런 나가 낯설다. 언급된 사토 마나부 책을 넣었다. 

 

 

 

 

 

4. 

물가로 다가선다.


 

 

 

 

뱀발. 모임 뒤풀이 , 한모임은 이제 한두번의 강의만 남았다. 동*미 모임은 주제가 사랑이었다해서 말미 이야기를 조금 겹친다. 장샘이 던진 공을 제대로 받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공을 제대로 던진 것인지 모르겠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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