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슬로리딩 -Slow Reading(서가에서 서서 볼 수 있는 책)

  슬로푸드, 걷자걷자, 제멋대로가 아니라 제대로. - 3부는 예문들이 일본 교과서 구문이라 굳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실행편이라 약간 군더더기다. 몇꼭지 남는 부분은 속독은 가능하지도 않고 오독의 확율이 높으니 될 수 있으면 그런 이야기에 혹하지 말라. 가능하지도 않으니 행여 그런 거짓에 속지 말란 얘기다.  꼭꼭 씹으면서 읽되 속도에 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다시읽기와 어떤 것이 있을까? 읽기 전에 책에 대한 느낌과 감동의 농도를 높이려면 무엇이 있을까? 그래,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줄 것을 가정하고 보는 것이다. 청자를 가정하고 읽는 법을 하나 챙긴다. 그리고 슝슝 명사에만 취하지 말고 조사, 조동사, 그리고 저자의 의도를 음미하는 법도 배울만 할 것 같다. 천천히 읽어보자. 영혼이 너무 빨리 앞서 몸이 주눅들지 않도록 천천히 곱씹는 읽기, 정신이 그래도 몸을 기다려 봄을 즐겨 읽을 수 있도록 브레이크 파~악! 밟아보자.
 


#2. 육감 말고 七感(제7의 감각) (빌려서 발췌하여 볼 책)

직관을 세가지로 구분한다. 평범한 직관, 전문가 직관, 전략적 직관이 그것이다. 평범한 직관이 '육감'과 같이 좋든 나쁘든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라면, 전문가의 직관은 익숙함에서 나타난다. 익숙할수록 그 일에 대한 판단은 날카롭다. 하지만 제7의 감각이라 불리는 전략적 직관은 익숙함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한 본능적으로 느끼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그 고민의 더께에도 풀리지 않던 것이 어느 순간 섬광처럼 떠오르는 깨달음이다. 낯선 상황에서 따로 따로 이질적으로 놀던 것이 어느 순간 통합되어 불쑥 다른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이것은 천재의 소행이 아니다. 코페르니쿠스도 뉴턴도, 쿤의 다른 길은 이미 잔잔히 이전에 있던 것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의미없거나 반대되는 낱장들, 맞춰지지 않던 퍼즐들이 숙고에 숙고를 거쳐 영감처럼 통합되어 다른 면모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좌뇌는 논리적이고 우뇌는 감각적이라는 시각은 이미 예전 일이다. 이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의 받은 스페리의 70년대 버전이고, 현재는 좌우만 아니라 아래위 등 MRI 등 분석장비의 효과에 힘입어 입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세기를 맞아 에릭 칸델이 이런 결과를 반영하여 또 다른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 한다.

전략적 직관은 어느 개인에 소속되었다기보다, 어느 천재로부터 얻는 수확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다른 층과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게하는 노력에 기반한다. 벌써 세상은 달라져있고 달라진 결과물이나 효과로부터 추린다면 또 다른 세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모두가 자신의 생각과 시야에 그것을 가두려는 습속은 버린다는 전제가 있어야겠다.
 


#3. 장지연 vs 배용준 (팬들은 소장하고 싶은 책)

배용준 글.사진 이라기보다는 집단기획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맞겠다. 손에 가는 꼭지들은 평소 관심이 있던 다완이나 차로부터 거꾸로 사진과 글을 거슬러 올라간다. 도기와 자기, 차, 선방, 한지 들이 쉬우면서도 종합적인 면모를 보이면서도 글감들이 무척 잘 정리되어 있다. 연예인을 모두 멀리서 안개처럼 보는 일,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들을 또 안개처럼 보는 일은 그다지 도움이 될 것이 없다 싶다. 좋아함이 연결되어 좋아함의 결이 예민해져서 서로 좋다면 말이다. 헌데 온갖 먹이사슬로 차압해서 몸을 비루하게 돌려막는 구조와 허기도 못 매우는 현실의 깊이를 동시에 볼 줄 아는 힘의 견줌이 또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4. 과학 vs 시의 언어 (책상에 두고 짬짬이 펴봐야 할 책)

시와 과학의 언어는 모두 정갈하다. 개념이 정연하지 않으면 여기저기 회자되다보면 정작 골계미를 잃어버린다. 과학의 언어가 좀더 대중적이어야 한다면, 시는 또 다른 하나의 우주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과학과 언어, 과학은 은유가 없을까? 과학은 서사구조가 없을까? 과학의 모형은 그대로 믿어야 하는가? 과학은 역사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은유도, 담론구조도, 모형도, 시대에 따른 변화에도 민감하고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용어의 남발이나 정치적으로 포획당하지 않도록 딴지를 걸어야 한다. 산문도 비평에 민감한 이들은 왜? 과학 용어가 빚어내는 오류의 구렁텅이에는 관심이 없는 것일까? 
 


#5. 오른손잡이 R&D와 양손잡이 R&D (중견연구원 또는 과장이상 기획부서원이 참고할 책)

고객을 만족시키고, 흥분시키기 위해 따라만 다니지말고 이젠 고객을 만드는 일을 같이해야 한다. 고객에게 고객을 숙이다보니 늘 알앤디는 만족을 위무하는 위무단 밖에 되지 않아, 바깥 소식을 잘 모른다. 그저 머리 속으로만 알뿐이다. 두개의 부서를 만들자. 단기실적위주로 움직이는 틀(고객만족)과 중장기실적위주(고객창조)의 구조가 그것이다. 따로따로 나누지 말고 마케팅도 영업도 함께 움직이는 조직을 말이다. 오른손은 기존조직을 별도로 왼손은 혁신조직을 꾸리되 평가도 단기가 아니라 중기로 움직인다. 

뱀발. 이것저것 빌려 짬짬이 보다. 잠깐 시립미술관에 들러 대전작가 2인, 청년작가 5인전을 보다. 식상과 새로움이 겹쳐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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