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운 여름], [차가운 심장].  단어와 문장이 낯설다. 진배샘의 언어처럼 선뜻 다가서지 않는다. 낯선 담을 넘어설 무렵 시인의 의중과 문장이 오물오물 씹힌다. 쌀알처럼 씹힌다. 과즙처럼 단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서걱거린다. 사물과 사람과 나무의 경계가 희미해 서로 물다 꼬리가 되물린다. 눈을 점점 감아 경계가 희미해질 무렵에서야 시의 맥락이 조금씩 가슴에 닿는 것이다. 몇번을 곱씹어야 [빌어먹을]이란 시어가 과즙처럼 온몸에 번지는 것일까?  

 

[한 잎의 노을을 뜯어내다  + ]

 

 



#2.

과학을 정치에 호도하는 일들은 신념이나 이념, 윤리와 종교에 끌어들이는 만큼 후과가 있다. 왜곡된 인식으로 선용된다기 보다는 이용된다. 이는 우파와 좌파를 넘어서는 일이다. 팩트만 골라내서 자신의 논리로 전용하는 일들의 횡행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사변에 해당된다. 현실은 좌파보다 우파 보수주의가 집요하고 파장을 많이 미친다. 이런 미국의 현실에 비해 정신없이 돌진만 하는 우리에겐 어떠할까? 
 

  

 

 

 

[ 과학의 정치화 + ]

 

#3.

훑어보면 별반 남는 것이 없는 책인데, 고운 체로 자꾸 뇐다. 혹시 더 남는 것은 없을까? 어렵게는 뇌과학과 행동경제학, 복잡계과학에서 배운 것을 마케팅에 써먹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은 선사시대 뇌를 가지고 있어 합리적이지 않고,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선다는 이야기다. 기존에 기껏 써먹는 마케팅은 360도 전면 노출 공격인데 별 실익이 없으므로 6단계만 거치면 세상사람이 이어지므로 효율과 접근의 측면에서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뒤집어보면 개인으로 환원하여 광고, 마케팅을 한 결과 그 이유를 제대로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결과와 최신 학문의 통찰을 활용하여 방법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는 어떻게를, 설득이 아니라 느끼게 해야 한다.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 아니라 나-너-나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짓기를 고민해야 한다.  생각->느낌-> 실행이 아니라 느낌->실행->생각의 순으로 고르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깝다고 한다.

훌쩍 지나가는 말들을 걸러본다. 자꾸 멈칫거리게 만드는 것은 모임의 성원이다. 회원에게 메세지를 전달할 뿐, 그 개인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번지지 못한다. 이웃의 이웃이나 관계짓기에 대한 고민이 늘 빠져있다. 모임이 갖는 생각을 전달하고만 싶어할 뿐, 느낌의 공유에서 시작하지 못한다. 나-너-나가 연결된 서사적 우리도 없다. 은행계좌처럼 그저 입출금하는 개인만 있을 뿐이다. 공감이 너-나-너-를 연결시켜 파고를 만드는 것이라면, 또 다른 체험의 공간들은 가벼운 텃치만으로도 또 다른 나-너-나의 모둠으로 연결될 수 있다.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늘 하는 고민만 나의 모둠에서 하고 진해져 섬만 될 뿐, 저기 또 다른 고민들로 번지거나 섞이지 못해 늘 얕은 맛만 뱉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깐작거리다 보니 툴로 마련해둔 그림에 붙은 글을 옮겨적는 것이다. 관계짓기와 방법상의 역전이 필요하다. 브레인스토밍의 이성이 말라 바닥을 드러서야 움찔하는 감성이 내미는 생각을 잡아내야 한다. 그리고 움직이게 만드는 넛지(행동을 변화시키게 만드는 숙고+무릎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 어떠한 감정을 모둠[나-너-나-]에 유발시킬 것인가? +]

뱀발. 책을 읽고 묵힌다. 어젯밤은 새벽을 반틈 배어물고 잠을 청했더니 조금 피곤하다. 늦게 도착한 책들을 펼쳐보니 시집은 활자며 디자인이 복고풍이다. 새벽, 날은 여전히 겨울 짜투리를 물고 있어 잠을 다시 청하기엔 홑이불이 얇아 다시 덧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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