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 - 묵은 책을 집어들다. 알맞는 달림이었다고 여겼는데 졸음이 몇번 가시게 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에 홍세화님의 글이 인상에 남는다. 프랑스의 공부 하는 진보와 우리의 현실을 빗대어 공부하지 않는 진보라는 표현이다. 분석보다는 통찰이 필요한 시점에 있어, 말콤 글래드웰의 논픽션에 대한 연구력과 관심, 그 이전에 바탕을 둔 사랑은 무서워 보인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지적하는 것이나, 위축과 당황의 차이와 사례, 정상논리하의 챌린저호의 폭발사고는 복잡한 상황에서 사고개연성을 덧붙여준다. 나*호의 발사실패와도 겹치게 된다. 통찰에 대한 논픽션은 정황에 맞춰 쓰는 칼럼의 수준을 벗어나 보인다. 끊임없이 파고 헤치고 연관짓는 연구와 깊이가 느껴진다.
2. 깊이 - 우리의 교육과 삶의 태반은 깊이가 없다. 스스로 그러하며, 하물며 진보는 책도 연구도 하지 않는다. 이런 소설같은 논픽션과 통찰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연구를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몇주 전에 만난 사회학과 교수님은 후학을 만들어 놓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신다. 전국적인 사안이 아니라 지역에 대한 연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 대해 더욱 답답함을 느낀다고 하신다. 대부분의 교육이 반짝 머리만 담그고 마는 시스템이다. 가슴을 적시고 손과 발로 뛰어 깊이를 절감할 수 있는 노력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늘 사안이 없다. 머리만 잠깐 행구고 환기시키는 찰라만 있을 뿐, 깊이가 없다. 더 이상 연구하지 않는다. 빌려쓰기만 할 뿐이어서 남의 것일뿐 내것이 드물다. 나라도 지역도, 너도, 나도... ... 깊이 좋아하는 사랑이 너무 매마른 것은 아닐까?
3. 이웃 - 개인적인 재능이 미치는 영향이 과대평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책의 사례에서 보듯 미식축구 선수 발굴이든, 인재를 뽑는 방식이나 투자에도 조건과 시스템이 고려되지 않는 선택은 빛이 바랜다고 적는다. '한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은 이제 무식한 말이 되었다. 나 옆엔 너가 붙어 있다. 나-너의 인식이나 적용이 인식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듯 싶다. 그리고 복잡계나 네트워크의 이론을 연계시켜, 이웃의 이웃의 연동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이 최신 연구의 결과라 말하고 있다. 나만 발라내는 경영이나 인식이 보잘 것 없다는 점, 그 신화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는 것이 공통된 지금여기 인문의 요청상황인 듯 싶다. 시스템과 이웃의 이웃이 변하는 고리를 통찰해내고, 같이함께(가치함께) 움직이는 연습을 만들어 내는 것도 책들이 답을 청하는 실천인 듯 싶다.
뱀발. 물론 옆의 책이 썩 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로 주고 받는 과정과 통합적인 얼개를 볼 수 있다. 그 근거를 연구의 결과로 보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는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함께 모임(씨앗)에 적용성을 고민해볼 수 있는 재료로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