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감수성
1.2 사무적이란 것은 어떤 것일까? 한 조직에 몸을 담으면서 정해진 일을 처리하다보면 이런 감수성은 자랄까? 휴식과 짬이 구조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활동을 하면서 느끼는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업무처리, 대관업무도 중요하겠지만 정작 키우고 자라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학적 감수성이 그저 배부른 영역일까? 사물을 예민하게 느끼고 사람의 이력과 관계, 그리고 사람을 보는 눈들은 일처리하는 능력에서는 도저히 만들어지기엔 시간이 너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활동하는 사람들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하고, 일반 근무조건보다 월등해야 하는 이유의 한가지가 이것은 아닐까? 부러워서 지게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미학적 감수성이 중요한 것 같다. 소설도, 시도, 그림도, 음악도, 사진도....연극도 자유의 확장이 아니라 근본적인 안목으로서 말이다.
무 시
2.2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다 우연히 벗을 만나 커피 한잔 마시다. 친구가 건넨 문자의 책 가운데 가라타니 고진 이야기를 나눈다. 자본의 한 고리를 끊는다는 것, 가치든 무엇이든 사람이나 세상이나 사물을 분석해내어 그 가운데 하나로 환원하고 거기에 맞춰 세상을 다시보게 하는 일은 통채로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자본의 도식에 하나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은 아닌가? 진보, 책을 읽고 학습한다는 친구들은 마음의 문이 굳건히 닫혀있어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부족하다. 막혀있는 듯 싶다. 나는 맑스주의에 대해 공부를 더 했으므로 많이 알고 있으므로 그래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노선이 다르므로, 정파가 다르므로 무시를 재생산해내었을까? 검사-의사-변호사, 전문직 기자들의 엘리트를 치장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관계의 구조 속에 무시는 민주주의의 양면처럼 함께하는 활동들을 무장해제시켰던 것은 아닐까?혼자 세상을 감당할 수 없다면 늘 옆엔 기댈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잘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공평하다.
친 구
3.2 진화의 무지개란 책에서 인류가 진화를 다양성의 지류로 이성애 만이 아니라 동성애를 비롯한 다양한 친밀성의 변동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전주답사길에 생각들을 떠본다. 친구에 대해 우정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을 확장시키다보면 필히 만날 지점이 사랑, 가족, 연애, 친밀성 들일 것이다. 여성,남성도 또다시 생각길이 만날 것이다. 평범한 일상과 구조화된 현실에 그 너머를 사고한다는 것이 편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생각틀이나 활동틀이나 확장에 대해서 꿈조차 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동 시 대 인
4.2 답사에서 그제 맥주한잔 하면서 본 이창동감독의 시란 영화의 김*탁 시인의 시에 대한 설명장면을 이야기했더니, 분위기가 싸늘하다. 강의청탁에서부터 들리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좋은 이야기하고, 그저 편안한 이야기하는 것이 잘못되었느냐라구 할 수 있다. 하지만 강의료부터 체화된 이면을 보면 연예인이나 시대에 그저 편승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솟는 것이다. 안*현 시인은 어떤가? 동시대인이라는 표현이 적적할가? 시대를 관통하거나 거스르려 하지 않는 따듯하기만 할뿐 내면의 날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