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09-101010

#1.  


그림이 고파서 도서관을 둘러봐도 없다. 다른 곳에 둘러봤는데 한구석에 시공사 시리즈가 알맞은 도판크기와 작가의 말, 비평이 있어 안성맞춤이다 싶다. 첫날은 이미 시간이 많지 않아  유재구의 [불립문자] 시리즈 9315, 9316, 여러 작품과 책을 본 적이 있는 문봉선의 초기 작들[자전거 1984, 현장 1987, 도시 1988, 동리 1988, 봄 1988, 자연 1990, 1991, 무유 1992 시리즈]을 챙겨본다.(繪事後素), 그리고 임영균의 사진[서울흑석동, 강릉경포대, 서울 성수동]인 인상에 남는다.

다음날 박승규[확산이미지 1990, 1995] - 윤형재 [또하나의 세계 아름다운 것들] - 오수환 [곡신시리즈] - 박영하의 [내일의 너]는 추상이 너무 강해 작가의 변을 듣고서도 아름다운 소리로 표현하고자 한다는 윤형재만 남는다. 나머지는 그대로 우주이거나 극추상이어서 당혹스럽기도 하다.

유리지의 금속공예 [달,가을....의 서정을 담은]와 수묵의 이철량의 [봄을 먹은 산, 바람소리]라는 작품이 남고, 그래도 감성으로 공감할 수 있는 유연희의 작품시리즈이다. [남도풍경, 감정의 공동울림] 그리고 대전 시립미술관 앞에 있는 입산의 조각작품이 강렬하다. 류인의 부친 류경채와 동생이 조각을 하고 있다한다. 破卵파란 시리즈와 시지프스를 닮은 입산시리즈는  볼수록 잔사에 많이 남는다

육근병의 과거=현재=미래, 시간의 연금술사란 바탕의 행위예술 시도가 낯설지만 인상에 남는다.  그런데 오해인지 모르겠지만 한결같이 홍대, 서울대 작가로 도배를 했는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뱀발. 책이 없다. 아트비방 시리즈 [시공사], 그림은 위로부터 유연희, 이철량 작품 두점씩.

 

 

 

 

 

#2.

일본 아방가르드? 작가 오카모토 타로의 [오늘의 예술], 한번 본 [눈의 황홀], 해학으로 보는 불교의 뒷이야기를 함께 보다. 부도, 석등, 삼신각, 후불탱화, 공포의 동물들, 그리고 석탑, 범종, 일주문에 들어서기 전 사천왕부터 그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부도-석등-석탑-범종 등 하대부-탐신부-상대부로 나뉜 이유와 그곳에 있는 부각들이 한번에 통으로 들어온다. 대웅전의 후불탱화의 해학이나 의미도 별반 관심이 없었는데, 한번씩 더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재미를 놓친 지금까지의 후회도 밀려오고 말이다.  큰녀석과 함께 치과가는 길, [눈의 황홀]을 가지고 가 짬짜미 보다. 디자인의 역사쯤 되는 셈인데 상징이 갖는 의미나 역사로 보기에도 흥미롭다. 오감에 덧붙여 내장공감각부터 여러가지를 덧붙인다. 시각중심이 잃는 것에 대해서도 미디어학자를 빌려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의 예술]의 부제는 누가 시대를 창조하는가이다. 그 큰 부제에 맞서 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려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붙어있고 이를 답한다. 두려움과 잘 그려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활을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할 수 있느냐를 말한다. 아이들이 천진스럽게 자신을 표현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순간을 돌이켜보면 누구나 다 자신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 한다. 그런데 자꾸 잘 그린 것, 의식하는 것, 주눅들게 만드는 껍데기가 외려 표현을 불능하게 한다고 한다. 서툴더라도 더디더라도 그렇게 밖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느낌을 갖추다보면 자신의 것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한다.  아래 접은 글에 조금은 생각해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림보다는 시대를 만드려고 한다면 ... ...

>젊은이는 어느 시대나 깜찍한 법이다.>


그리고 예능이 아니라 예술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한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새롭다라는 것은 느끼는 순간 이미 늦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 이상한 취급을 받던 것이 어느 순간 그렇게 시공간을 열어나간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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