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재장전] 

 

 



철학이 아주 최근까지 자본의 높이에서 사고하는 법을 거의 알지 못했다; 국가, 가족, 사적 소유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인간을 제시하지 못한다;모든 가족들이여, 나는 너희들을 증오한다; 존재의 다수성, 진리들, 진리가 생산되는 장소인, 정치, 사랑, 과학, 예술에서 백과사전같은 지식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써 그 구멍은 위대한 철학을 조건짓는 것이다; 수학에서의 위기와 역설, 시적 언어 안에서 전율, 창안적 정치의 혁명과 도발, 양성 사이의 관계의 동요들 사이의 공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1. 자본의 높이에서 사고한다. 자본의 높이에서 말이다. 연휴기간 동안 간간이 읽는 책들 사이로 공통되면서 모이는 지점이 있다. 우연의 일치는 아니겠지만, 한결같이 맑스의 공산당선언을 말한다. 자본이 갖는 의미성과 현실, 롤러코스트같은 역동성과 미진함들이 이제서야(백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그리고 그 자장이 어떻게 미세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한다. 포스트모던한 것이 아니라, 보지 못했던 진리들을 시간의 축이 그물들을 이어나가면서 그래도 제법 나은 인식의 상황을 만들어준다고 한다.

2. 가족들이여 나는 너희들을 증오한다. 사적 소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새로운 인간을 제시하지 못한다. 가족제도와 사적소유의 기원이 생각나지 않는가? 그런데 이렇게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 알고 있는 것에 구멍은 낸다. 날 것의 사건. 지금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있다. 정의냐, 자유냐, 평등이냐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해석해내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의 장점은 진리를 생산하는 세종류의 코드와 그리고 사랑에 있지 않을까 싶다.

3. 세계는 선과 악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서 생생한 그 상황. 몸으로 밀고가고 이어가는 진리들이 새로운 세계를 엿보이게 할 수 있다. 철학은 그렇게 진리들의 거간꾼이다라구...그 역할을 해야한다고 한다.

뱀발. 학자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어떻게 집나간 시와 정치와, 과학과 예술, 그리고 사랑을 철학으로 불러들이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루만과 울리히벡에게서 느꼈던 아쉬움들이 외려 정리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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