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16
바람처럼 며칠이 지나간다. 벗이 이야기한다. 지우개로 지우고 그상태에서 시작하자. 지난 것들이 이것저것 생각이나 고민을 얽어매지 않도록 처음부터 시작하는 셈으로 치자고 한다. 꿈을 나누고 이야기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쏟아내자고 한다. 열정이 불같다. 고민 한덩어리가 뿜어내는 열기에 데일 듯하다. 격한 감정은 몸을 밀고가더니 파랑고민만으로 채색하려한다. 놓치지 않고 딴지를 건 상대의 고민이 그 틈을 비집고 올라온다. 파랑에 노랑의 덧칠이 서로 자리를 차지한다.
내가 아니라 주체를 이야기하고 주체들에 대한 마음을 내놓는다. 고민이 현실을 예비하는 것이라면, 다른 색깔의 생각이나 고민을 저, 다른 타자로 대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여섯가닥의 색깔이 한몸이 되어야 겨우 현실을 예비하는 것이라면, 이견은 반갑고 반갑다. 뿌리가 있는 이견과 일리가 다른 색깔이 주눅들지 않아서야 아주 조금 현실에 벌어질 낙관과 비관사이의 과녁근처에 비로소 점찍을 수 있다.
삶이 붙어있지 않은 이론과 지식의 난장은 아무것도 예비할 수 없다. 관점에 삶한점 뿌리를 붙여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되어야 한다. 비평이나 관전이 갖고 있는 무채색의 논조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안을 비평과 관전의 포인트로만 쓰거나 소비만하는 습관에 벗어날 수 없을까? 저기로 위안삼지 않고, 어떻게든 현실을 만들어가는데 쓸 수는 없을까?
대안은 사문화되어 있고, 대안은 강령처럼 제몸을 옭아매기만 한다. 대안이 나무뿌리처럼 여러갈래길이 있다는 것도 생각지 않는다. 아무도 삶에 붙이지 않으며, 아무도 삶을 여러색깔로 고민하려하지 않으며, 아무도 삶을 열어가려 손내밀지 않는다.
이야기는 무르익고 밤은 깊어져 자리를 옮긴다. 격한 이야기의 끝마무리라서 그런 것인지 술이 취하지 않는다. 벗에게 건넨다. 우리는 여전히 지금을 시작점으로 삼지 않는 것일까? 왜 자꾸 전에는 무엇을 했는지가 궁금한 것일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허접을 왜 지금에 끌어들이는 것인가?
벗의 웃음이 엷어졌고 다정스레 마음을 잡는다. 왜 이리 말이 많아졌을까? 친구의 마음을 확인하자마자 어쩌면 내이야기만 다그친 것은 아닐까? 이미 마음의 길을 나있는데 중언부언하였을까? 새벽3시를 꼴딱 넘어선 시간이다. 어떤 일을 해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같이 품고, 곁에 있어줄 이가 그리웠던 것을 아닐까? 함께 하는 법을 몰라 고민도 깊어지지 않고 일도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