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형과 이야기를 나누다. 불편한 서재엘 내왕을 하는가보다. 불편한 소리만 일삼는 공간이 점점 칙칙해지는 것은 아닌지? 이러다가 발랄이나 명랑은 오간데 없구 가슴 팍팍 긁는 소리만 일삼아 고착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반성과 자성의 행적을 찾기도 묘연하고, 그 자성이나 반성이 있기나 한 것인지, 안개처럼 여기저기 떠 있고, 다가서면 없어지는 것인지. 그렇게 멀리서나만 볼 수 있는 것인지. 반성이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길동무할 수 있는 이들은 없는 것인지. 한번 길을 찾아보자구 속마음을 건네기나 한 것인지.

자책을 해보면, 지난 길을 더듬다보면 흙을 묻히기 싫어서 고고만을 고집한 것은 아닌지. 일터를 핑계삼아 방패막이의 지름길로 뺑소니친 것은 아닌지. 제도권혐오증이 있어 제도밖의 울타리치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제도권과 제도밖이 휴전선이 있어 늘 남몰라라 한 것은 아닌지

운동권이 아니라 정치란 혐오와 누명을 벗기고 정치권이라 커밍아웃을 한다면, 정치를 하기위해, 지역정치를 하기위한 족적이나 흔적은 무엇인지. 행세하려고만 한 것은 아닌지. 정치권이라면 정치의 이력은 무엇인지. 제도권에 가고싶어하는 행위자들은 커밍아웃된 것인지. 제도밖이 있다면 제도밖에 남아하고 싶은 것은 공유가 되거나 소통이 되는 것인지.

지도한장 없고, 나침반하나 없는 현실은 여전히 뜬구름같은 자성과 반성의 푸념을 뱉어내어, 그것이 처절히 푹푹 썩어 문들어져 거름이 될 수 있다면. 거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거기서 지도의 한 귀퉁이가 나오고, 나침반의 싹이 나올 수 있다면. 반성과 자성의 길을 더듬어 올라가보는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

아마추어 운동권의 티를 벗으려면 과오와 잘함의 시간의 방향들을 긁어모아야 할터인데. 그래서 과오과 잘함의 추수려져 어설프더라도 이야기가 생긴다면, 그 응축된 정보와 비문으로 시민단체, 시민운동, 시민를 가로지르는 행위의 길찾기라도 쓰인다면 이렇게 맥없이, 맥락의 지평에서 나의 머리는 가슴은 몸은 손발은 어디에 처해있는지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래도 지난 과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텐데. 잘함은 나의 몫이고 과오는 너네들 몫이라는 합리화의 첨병과 암초가 곳곳이라...제 논에 물데기에 급급할 걱정이 이는데.

그래도 아픔의 파스를 제몸에 붙이는 이가 있다면, 몸으로 밀고가는 이도 인정하고, 집에서 군불때는 이도 알아주고 중동난 아픔들을 서로 내밀고 보듬어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유토피아적인 발상일까? 그래 우린 서툴렀다고, 세련되지 못해 고고하게 받들어놓은 가치중립의 발목에 걸리기도 했고, 제도권에 가면 마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치기어린 청춘이었다고 하자.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렇게 후회막급을 되씹는 것이 아니라, 그 치기어린 행동을 곱씹어야 한다. 어떻게 치기가 발동했고, 그 치기로 인한 후과가 어떤 것이었는지. 장밋빛 같던 권력의 그늘과 맛, 행정의 치기도 어떤 것이었는지. 

뱀발.  

1. 김수영을 나누다가 조금 다른 이들을 섞다. 그렇게 보면 스토리든 이야기든, 구술이 가진 놀라운 힘과 정보력에 대한 생각이 밀려온다. 헤집고 갈갈이 찢는 분석적인 앎이 아니라 통찰과 되새김이 가능한 우리의 이야기 한편이 없다는 현실이 서글퍼진다.  

2. *개구리님의 앉은자리 강연을 명강연이었는데, 함께하는 이들이 더 없어 아쉬웠다. 참* 식구들과 간만의 자리, 자주 만나지 못하는 현실은 몸의 언어, 육화된 언어만이 전달력이 있는 것일까? 여러 물음을 던져주는 저녁시간이다. 여전히 밤은 깊었지만 말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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