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척교는 새단장을 하고 있다. 벚꽃은 흐드러지고, 목조문양을 본뜬 인도는 걷기에 편하다. 반나절 근대사 답사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홍명상가의 그 공간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이 원도심이 또 다시 사람을 발길이 오겠지? 10년쯤이면... 비오는 자막의 하비밀크는 클라이맥스의 위기상황에서 하마트면 필름이 멈출뻔한 위태로움때문에 감동이 디스카운트 당하긴 했지만, 여러 생각과 느낌을 뒤범벅거리게 만든 작품이다. [게이]라기보다는 괄호 안에 [소수자]..그러면서 [진보]...여러가지를 번갈아 넣으면서 보게된다.  

눈물을 뚝뚝흘리며 여운에 몸둘 바를 모르는 친구. 10년전 느낌과 10년 뒤 지금의 느낌이 너무 다르다는 친구. 어젠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토론하면서 새겼던 느낌들도 함께 겹쳐 몹시 버거웠을 것이다. 어쩌면 유행이란 것이, 시간을 재촉하면서 정작 볼 것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까지 무더기로 한꺼번에 버리는 것은 아닐까? 진보를 말하면서 삶을 투여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핑계로 불과 몇년전을 잊어버리는 습속은,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분들도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집 아저씨는 세번의 시의원 낙선을 했고, 풀뿌리... 지역을 삶으로 바꾸어내는 활동은 눈물겹다. 70년대 68혁명의 여운을 80년의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거리에서 다시보게 될 줄은 몰랐다. 진보의 숨은 끊길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듯이, 뿌리가 다르듯이 조금씩 살려내는 숨결들이 모여 불꽃처럼 불타기도 하는 것이겠다. 장례식 이후, 댄 화이트의 판결에 저항하는 거리 전역을 담은 촛불행진 장면은 묘하게도 지금과 겹쳐있다. 이후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듯, 시간의 굴곡은 어김없이 10년 20년 주기로 다가선다. 운명처럼. 

자본의 삶이 백년을 갈지 이백년을 갈는지, 삶의 숨통을 조이는 세상은 늘 변화를 요구한다. 아마 10년뒤면 목척교의 벚꽃은 더 흐드러져 피어 있을 것이다. 또 다시 이 영화를 보게될지 모르겠지만, 그땐 지금처럼 이런 푸념들로 채워지지 않으면 어떨까?  IDEE 커피숍도 이 곳도 소수자의 축제, 목없는자의 목소리. 그래도 진보라는 이름으로 부끄러워하지 않은 당당함의 거리가 될 수는 없을까?  

돌아오는 길, 도심의 봄꽃은 이미 흐드러지고 저 멀리 변두리로 꽃향기를 전한다. 이 작은 마을에도 그런 이들도 넘쳐났으면.....목척교 아래 냇물에 꽃잎 흐드러지고, 축배를 나눌 수 있는 세상과 마을이었으면 하는 상상을 우울 저 뒤에 놓아둔다. 밤은 그믐을 향하는데도 꽃으로 밝다.

 

  blog.naver.com/milkmovie(하비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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