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경쟁 - 사업가는 사소한 일에도 위엄을 갖추기 위해서 이 표현을 즐겨 쓴다. 하지만 사업가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라. 같은 부류의 사람들 중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파산한 친구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물질적인 안락의 문제만 따진다면, 아무리 사업가가 파산했다고 하더라도 파산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보다 훨씬 풍족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란 말은 실제로는 성공을 위한 경쟁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경쟁을 하면서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을 뛰어넘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생존경쟁과 성공경쟁, 상황에 대해 바른 호칭을 붙이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낳지 않는다. 그런데 잘못붙인 호칭으로 인해, 그 사고가 눈덩어리처럼 불어나서 유통이 된다면 더 큰 해악이다. 그는 생존경쟁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는 이런 경우라고 말이다. [한 채식주의자의 고백]이라고 해보자. 배가 난파당하고, 깨어보니 주인공과 단 한명의 선원만이 살아남았고, 총은 두자리뿐이다. 그리고 수많은 선원들. 살기 위해 공평하게 인육을 나눠먹고, 말로에는 주인공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구조되자 그 주인공은 평생을 채식주의자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모두에 담았다. 사람들은 생존경쟁과 성공경쟁을 등치시킨다. 그리고 성공경쟁을 묘하게도 생존경쟁으로 몰고간다. 그런데 그 성공이라는 허울에 맺힌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조목조목 따져 나간다.

현대 사회에서 경쟁이 강조되는 것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후 로마에서 일어난 것이 확실한 교양 수준의 전반적인 저하와 관련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 지적인 즐거움을 누릴 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50년 혹은 백 년 전에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었던 훌륭한 문학에 대한 지식은 이제는 소수 교수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보다 평온한 즐거움을 주는 일들은 모두 던져버렸다.


아름다운 야생화가 만발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의 이름이라도 제대로 아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그런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꽃 이름따위를 알아봐야 돈벌이에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을텐데.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또한 어떤 개인이 단독으로 막아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이 문제는 삶이란 승자만이 존경받는 승부요, 경쟁이라는 일반화된 생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감성과 지성을 포기하고 의지만을 지나치게 키우는 결과를 불러온다.

 

이런 관점을 입에 올리면서 우리는 말 앞에 마차를 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신앙을 강조했던 도덕주의자들이 현대에 와서는 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청교도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경주는 의지만을 과도하게 발전시키고 감성과 지성을 쇠약하게 만들었으며, 경쟁의 철학을 자신의 본성에 가장 적합한 철학으로 택했다.

 

경쟁을 자신의 철학으로 선택한 결과는 어떨까? 그는 다음과 같이 공룡으로 묘사한다. 멸종한 공룡의 삶을 닮았다고, 신사도 선비도, 존경의 스펙트럼이 없는 미국이란 사회는 모든 것을 눌러 겹치게 해서 어른이고 노인이고 할 것없이, 경제적 능력이 모든 것을 가늠하는 잣대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50년전의 그의 목소리가 더욱 우리의 지금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더 더욱 잔인할 정도로 몽매하기만 한 우리를 닮았다. 더 들어보자.

선사시대의 공룡들처럼 지성보다는 근력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지성과 감성을 배제하고 의지와 경쟁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현대판 공룡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이 현대판 공룡의 놀라운 성공때문에 현대인들은 너도나도 이 공룡의 행동을 따라하고 있다. 이 공룡은 전 세계 백인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데, 아마 앞으로 백년 간은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유행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이 공룡들이 서로 살육하며 결국 멸종할 것이므로 최후의 승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며, 결국 지혜로운 구경꾼들이 공룡들의 왕국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받을 것이다.

 이 코멘트이전에 아이도 낳지 않을 것이므로 생물학적인 멸종까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음 말로 마무리를 한다. 경쟁을 삶의 철학으로 만든 인류의 비참을 이야기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쟁은 지나치게 냉혹하고 집요하며, 필요 이상으로 근육을 혹사시키고 의지 또한 지나칠 정도로 집중하게 만든다. 이런 경쟁이 삶의 근본 철학이 될 수 있는 시기는 기껏해야 한두 세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경쟁은 신경의 피로를 초래하고, 여러 가지 도피현상을 일으키며, 쾌락 추구를 사업만큼이나 긴장되고 어려운 일로 만들어버려(휴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해 재고가 바닥나는 지경에 도달할 것이다.

 

3. 경쟁의 철학에 오염된 세상 가운데 

뱀발. 감성과 지성을 포기하고 의지만을 지나치게 키운 세대, 사람들. 그렇게 시선을 비추이면 진보와 그렇지 않음의 경계선은 뚜렷해진다. 당신은 지나친 사명감때문에 너무 놓친 것이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네와 난 공범일세. 단지 뒤늦게나마 눈치를 채고 있는 공범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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