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린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
저것 좀 봐, 꼭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다린다 저 빗방울이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아올 때까지
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리다 보면
내 삶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
그대 안의 더 작은 그대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내 어깨에 기대는 따뜻한
습기
내 가슴을 적시는 그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자꾸자꾸 작아지는 은행나무 잎을 따라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의 끝 매달린 한 장의 남은
잎이 된다
거기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넌 누굴 기다리니 넌 누굴 기다리니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건 빗방울들의 소리인 줄도 몰라하면서
빗방울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
지는
내가, 내 삶의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인줄 몰라한다 (원재훈) 

 

 

 

 

 

 

 

뱀발. 출근길 동료를 기다리며 시 한편을 봅니다. 그리고 한꼭지의 여운을 따라가봅니다. 그리고 한겨레 21의 마지막 꼭지 지붕뚫고 하이킥의 목없는 자 세경[노 탱규-신세경은 귀신이다]의 코멘트를 더듬습니다. 자본주의란 나르시스는 욕망하고 보는 시선이 다른 이를 볼 수 없습니다. 자타불이라는 불교의 깨달음이 아니라 서양철학의 그늘은 오직 일자밖에 없습니다. 나만 있는 철학은, 환원의 논리에 중독된 철학은 타자를 볼 수 없습니다. 전체-무한; 전체를 구성하려는 앎의 논리는 이미 있는 타자를 백안시 합니다. 무한에 있는 타자는 전체를 보려는 시선으로 구성할 수도 볼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타자와 관계가 있는 것이 먼저랍니다. 윤리가 먼저이지 철학이 먼저가 아니랍니다. 나르시스의 철학은 시간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내가 소유한 시간일  뿐, 타자와 대면하거나 자라는 시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타자를 나를 앎이나 인식의 연장에 두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시간은 끊임없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나르시스-시간이 흐른다거나 소유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그만큼 진보와 관련이 없습니다. 그들을 타자를 인식할줄도, 시간을 만들 수도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늘 너가 없기때문입니다. 윤리가 삶 속에 없기때문입니다.  

저도 그러합니다. 엊그제 모임에 시간을 가지고, 델타t 함수로 보는 시간의 성장만 갖는 이들은 한통속이다라는 친구의 말이 되새겨집니다. 시간의 지속성, 시간의 자람, 관계를 자람을 볼 줄 모르는 이는 진보와 거리가 멀다라는 말이 자꾸 생각납니다.  저도 그러합니다. 나르시스트이니까요. 

레비나스의 죽음에 대한 소식, 곁다리로 안개처럼 흘러가는 앎들이 오늘 안개비가 내리는 날. 문득 새롭게 다가옵니다. 챙겨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출근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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