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는 잠정적인 결론: [공포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예언할 수 있다. 재갈이 물려지고 길들여지지 않는 한, 우리의 부정적 세계화는, 안보의 장치를 발가벗기고 대신 부자유의 형태로 안보를 제시하는 세계화는, 재앙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이 예언이 나오고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는 한, 인류는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들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다가오는 공포, 우리의 힘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공포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 그 시작은 그것을 바로 보는 것이다. 그 뿌리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 잘라버릴 수 있는 유일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세기는 궁극적인 재앙의 시대가 될 것이다. 아니면 지식인과 민중 -이제는 인류 전체라는 의미의-사이에 새로운 협약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될 것이다. 희망을 갖자. 이 두 개의 미래에 대해, 아직도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으리라고."
2. 옮긴이는 옮긴이의 말을 가다듬으며 저자의 마지막 멘트에 다음 눈물을 더하며 끝을 맺는다.
덜컥거리는 컴퓨터 자판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예전의 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멋모르던 젊은이였던 나, 그래도 뭔가 세상을 더 낫게 바꾸고 싶었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른바 "지식인"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개인의 영달과 취미에만 사로잡혀, 남들의 불행은 덤덤하게 여기는 나날을 살고 있지 않은가. 나의 눈물은 이러한 나 자신의 "악의 평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동시에 이렇게 생각했다. 숨쉴 수도 없이 밀려드는 공포, 그 거대한 물의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물, '눈물'이 아닐까?

3. 바우만은 지금 이시대를 [공포의 저수지]로 비유한다. 액체근대는 그래도 부드러운 말이리라. [병속의 편지]를 바다에 띄우며 보내는 간절함에 아픔의 통증은 점점 커져온다. 옮긴이의 눈물에, 나의 눈물 한점을 보태며, 그 한방울이 보태져 그 저수지를 넘어갈 수 있다면 바깥을 넘어설 수 있다면...그렇게 마지막 장을 넘긴다. 한해도 벌써 세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