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1. 지난 금요일 일제하의 박물관학에 대한 강연을 듣다. 도서관-박물관학의 개념으로 문화관광부 소속에서 도서관학의 영역은 넓혀지고 있으나, 박물관학은 전공으로 하는 대학의 과도 없을뿐 인식은 거의 없거나 지지부진한 형편이라 한다. 강의를 들으면서 일제 하의 일상사나 문화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점. 역사학 전공자들이 이 분야에 체계적으로 연구하지도 않으며 국문학과 전공자들이 일제시대의 문화, 잡지를 연구하지만 맥락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지 않아 인식과 해석에 있어 많은 점이 아쉽다고 한다.
정부의 인식이 그러한 수준이고 오히려 고고학사 등 전문적인 연구는 일본에서 더 활발하다고 한다. 일상사나 문화사의 접근은 중요한데 깊이나 넓이, 제도적 지원, 연구풍토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돈되거나 유행에 따르는 접근, 돈되지 않는 연구에 대한 풍토, 지원, 다른 학문분야에 대한 개방성이 부족한 우리 대학의 현실을 보면 최교수님의 지적처럼 국가권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은연중에 잠식당하고 행동하게 되는 기반으로서 시장권력의 문제는 더 심각한 것이라는 제목의 논문과 함께 읽다.
--민주화이후 비판적연구가 확산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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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는 근본적으로 제약된다 - 주제의 성격이 비판적이더라도 그 연구내용이 평범한 정책대안 보고서처럼 되는 것은, 객관적으로 연구에 대해 연구하는 내용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고, 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연구자, 연구그룹의 정신적, 지적, 심리적 자세와 분위기가 그러한 상황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러한 환경에서는 왜 연구수준, 학문 수준이 평준화 되는가, 범용화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이고,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 하는 구분의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한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중요한 연구조사가 많이 나오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220
연구자들이 학진 프로젝트의 성격과 주제에 맞추어 스스로를 조직하고 그에 참여하는 방식이 갖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아래 나타나는 연구자들의 조직화는 특징적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연구비를 따기 위한 일종의 한시적 짝짓기가 그것이다. 수많은 프로젝트로 인한 연구자들의 인적 중첩성 때문에 집단화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따라서 그러한 연구팀은 학문정향, 사회문제를 보는 가치관과 문제의식, 주제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들의 그룹화는 임시적이거나 아니면 집단화의 일정한 안정성을 부여하는 개인적인 친소관계를 따라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 사회의 구성적 특징은, 학문적 관심사와 정향보다는 개인적 인연으로 연결된 1차 집단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반면 과거 한국인 지식인 사회나 현재 미국의 지식인 사회의 구성은, 공동의 가치정향과 문제의식으로 결집하기 때문에 2차 집단적 성격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223
오늘날 대학, 언론, 문화, 이익집단, 교회 등 시민사회의 충추적인 영역들의 대부분에서 하위조직/기구들은 일방적으로 재벌 대기업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진보적 지식인이든 시민운동이든 그들이 국가권력과 결합될 때, 건강함이 퇴색하고 자율성이 훼손되고 긍정적 결과보다 부정적 결과를 더 가져오기 쉽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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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권력을 내재한 대학과 교수는 연구다운 연구를 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2 이분법의 경직성이나 문화를 타계하기 위해선 자유주의가 국가권력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확장시키는데 필요하다는 지적과 동시에 시장권력으로부터 보호를 위해서도 적극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진보이념들을 좀더 보편적인 이념에 개방시켜 현실정합적이도록 변형시킬 수 있는 활력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맥락에 따른 앎의 합종연행이란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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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가 이들 집단주의적 형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요청될 수 있는 조건은 크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역할은 민주화 이후 여러 다원적인 사회적 힘과 가치들을 압도하면서 팽창일로에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현상에 대응할 만한 어떠한 가치나 이념도, 시민사회의 발전도, 세력의 다원화도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하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국가권력이 견제되고 분산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게 표출된 적은 별로 없다. 234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만으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복합적.다층적.다원적 측면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다루고 해소할 지적 이념적 자원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과도하다. 강한 국가, 국가권력의 집행부로의 집중과 통치자를 견제하는 데는 유효하지만, 동시에 국가가 민의를 대변하고, 그들의 요구를 실현하는 도덕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는 충분치 않다...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권력의 권위주의적 억압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하지만, 시장권력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37
오늘의 시점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의 이념적 경직성과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를 포함한 여러 보편적인 이념적 자원들을 광범하게 개방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지적 개방성과 유연성은, 변혁적 이론/이념을 중심으로 형성 발전한 한국의 진보이념을 보편적인 이념에 개방시켜, 현실정합적이 되도록 변화시키고 스스로 갱생할 수 있는 활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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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학의 시스템에선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제도곁이나 밖에서 견인이 가능할까?-------
# 3.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실제적으로 잘 운영시키기 위해서는 목적윤리보다 책임윤리를 강화하여 현실에 바탕을 두어 실제로 변환시키는 정책이나 연구의 틈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중요하다. 작금의 협치라는 틀내에 국가권력에 잠식되거나, 바탕을 깔고 있는 시장권력을 무의식중에 핥고 있으므로, 맥락도 시도도 다양화하여야 한다는 지적으로 읽힌다.
---답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아마르티아 센의 연구풍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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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상식이나 이념적 구분의 범주와 경계들을 넘어서, 연구의 의제와 문제의식을 따라 맥락을 구성하고 그 맥락에서 기존의 이론/이념들을 자유롭게 구성하는 능력이다. 그는 아담 스미스에 이론적 기초로 하면서도 마르크스를 끌어들이고, 칸트의 개인권리를 중심으로 한 목적윤리적 도덕론과 벤담의 공리주의를 비교하며 종합하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이론을 그람시의 문화이론에 접맥시킨다....또 다른 측면은, 서양의 지적 전통뿐만 아니라 인도의 고대역사로부터 불교경전 수타-니파타, 힌두경전 마하바라타, 그 진수가 되는 구성부분인 바가바드기타와 같은 인도의 지적, 종교적 전통으로부터 자유롭게 배운다는 것이다. [ Amartya Sen, The Idea of Justice(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239
민주주의와 그 체제에서의 갈등의 성격은 특정시점에서 경쟁에서 승리한 사회세력과 의사가 한시적인 시기 동안 통치를 위임받는 것에 불과하다는 한시성을 핵심요소로 삼은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나는 민주 대 반민주, 냉전수구세력 대 평화통일세력, 지역주의세력 대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개혁세력등과 같은 이분법적 구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한 갈등축의 설정은 현실을 사실대로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바람직한 것은 더욱 아니다. 문제는 목적윤리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이 수반하는 책임을 경시하는 경향을 강화하게 된다는 점이다. 241
오늘날 보수정부로 귀결되었던 개혁적 민주정부들의 실험들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선거에서 승리하여 어떻게 통치권을 다시 되찾아오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정부를 잘 운영하고 좋은 정책을 만들어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실제로 향상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책임윤리는 이 측면을 지적한 말이다.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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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제목대로 지식인의 변형에 대해서 읽어야 하나? 모든 문제가 제도안팎,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좀더 보통사람들의 이익의 관점에서 예리해질 수 있는 바램이 섞여있어 보인다.-------
[한국의 진보적 지식사회와 지식인의 변형], 제12회 비판사회학대회 기조강연, 2009. 10월 31일

뱀발. 1. 묵자의 利의 관점, 그간 대학의 지적풍토에 대한 지적과 협치의 문제점. 현실적인 연구의 방향과 풍토를 바꾸기 위한 노력에 대한 충고가 많이 남는다.
2. 황해문화 겨울호 중간부분에 게재된 내용이다. 일요일 내려오는 길, 기차 안. 흔적은 어제 정리를 해두다.
3. 영문책이 눈길이 가는데, 눈길만 줘야겠지. 빨리 번역되길 바라면서. 쩝.
4. 문화에 대해 일제시대의 근대화론과 같이 읽힐 수 있을까란 다소 도발적인 문제가 강연도중에 나왔다. 식민의 숨결은 문화의 영역에선 적나라하게 드러나 이론의 여지가 많이 줄어든다 싶다. 그래도 보관해주지 않았느냐의 파렴치에 대한 쟁점. 그런면에서 지금도 그 잔재나 보존의 길도 멀고 험하다. 그림자의 잔영은 이제 다른 차원으로 뒤덮일 가능성이 있다. 젊은 일본연구자의 연구. 그리고 거기에 가치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서로 풍부해지려면 서로 연구의 뿌리도 깊고 넓어야 하지 않을까? 부여가 다시 가고 싶어지는 강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