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가에 다녀오다가 한친구와 연락을 하고 오랜만의 만남이 이어진다. 사업상 수금이 제일 문제이겠다 싶었는데, 그래도 꾸준한 모양이어서 마음이 놓인다. 사람들을 만나고 고민을 나누고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같은 모임을 만드는 것이 어떠냐는 권면도 하구 사람들 사이 친밀 등고선이 조밀해지는 모양새가 부럽기도 하다. 늦은 시각 일어날 기미도 없이 만남은 시간의 턱을 넘는다. 기분좋은 생각이나 삶의 흔적이 배여서인지 나쁘지만은 않다. kij/kkd 091113 그 사이 연락들이 겹쳐 참*는 유선상으로만 염려를 담아보내야 했다.
#2 고등학생 자원활동은 처음인데, 생각 외로 부모님의 압력?이나 도움이 있었는지 특색이 있고 내용들이 있어 보인다. 보고서를 꾸미고 발표자료를 만들고, 탐방이나 인터뷰까지 있어 부모님들의 압력이라고 해석할 수가 없다. 일일이 묻고 확인하면서, 그들의 노고를 찾아보니 한두녀석 몰빵도 아니구 여러친구들의 고생의 흔적이 보여 우려보다는 안심이 된다. 좀더 마무리를 잘 지었으면 하는 바램을 섞는다. 어제 늦은 시간의 귀가라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부랴부랴 사무실로 향하고, 그 와중에 먼저 이야기를 나누는 위원장의 고생이 점점 박혀있다. ....얘길 나누며 그래도 학생들 개개인 경험의 축적으로 이야기하기가 편하다. 모임에서 같이 나누고자 하는 것은 과학만이 아니라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이나 연결된 뿌리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를 하다. 091114
뱀발 1. 어쩌면 과학이란 양갈래 길이 있는데, 좋고 원하는 것만 편취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눈오는 길, 뒤에 올 사람을 생각해서 남기는 발자욱까지 챙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보려고 하지 않는 다른 길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이 더 좋은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란 명예나 권력이나 돈에 어둡다. 춤추는 언론도 짧은 순간 거래되는 명예-권력-돈만 쫓아,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으로 치부하는데, 시간에 대해 조금만 열어둔다면, 그런 생각들을 감히 하지는 못할 것이다.
#3. 그런 연유로 가져온 책들에 눈길이 갈 여유가 없다. 몸도 쿵닥쿵닥, 가족손님, 피곤에 구른 몸들. 독립영화제 팜플렛에 시선이 가지만 여력이 피질 않는다. 쪽잠으로 피곤이 조금 가신 듯, 기차안에서 마저보며 여운을 닫는다. 091115
..[사이]가 아니라 [사____이]가 [사회운동]만큼이나 멀다. 68혁명이 왼편 및 화살표로 나있고 대각선으로 거슬러 유전자의 나선이 표지에 끌린다. 과학과 인문은 과연 이질적인 두문화일까? 머리는 같다라고 하지만 몸은 서로 밀쳐내기에 급급하지 않는가? 어쩌면 그것도 기계적인 통섭이란 억지 춘향이일지 모른다. 첫눈한송이 - 이 책을 읽으면서 몇가지 생각들이 겹쳐지고 지금도 그 생각의 실타래가 이것저것 버성겨서 힘들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에게 고스란히 닥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점들과 부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던 점, 말로만 듣던 실험실이나 교수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느냐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던 구석들이 예증되어 있다. 그런점에선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유사하면서도 우리보다 많은 걸음을 앞서있음에도, 아무도 문화에 그것에 붙어있는 것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오자마자 똑같은 이 나라의 사면을 가려야 하는 연구자로 돌아올 뿐, 알아도 모른척, 그저 죽었다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어처구니만 되로 받게 된다.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의 실험실 문화가 이렇게 다른지 행간을 읽어내고 싶기도 하다. 또다른 하나는 삶을 병행해내는 모습들. 하나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바다에 올인이 아니라 끊임없이 탐색하거나 다른 삶들을 만들어내는 모습들도 인상적이고, 여전히 예견되는, 예견될 수밖에 없는 문제들과 품을 여력이 되지 않는 현실들이 겹쳐진다. 그렇지만 굳이 해내려고 하면 되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것들. 여러 벡터에 신경을 쓰다보니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라든가? 그냥 간과했던 일들이 과정에 방점이 맞춰지면 그리 되지 않을 일도 아니라는 자만?도 깃들이게 된다. 그리고 한가지 더 보태고 싶은 느낌들은 궁금증이나 관계로 풀어가는 그의 모습에 경이로움이 느껴지는데, 시실 이지, 이탁오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인물이 여기저기 숨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따로 숙고를 하거나 이야기들을 빠트리지 않고 되짚고 싶은데, 이렇게 불쑥 흔적을 남기다보니 오히려 여력이 소진해 그러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렇더라도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참*회원 분들도 그렇지만(솔직히 내공이 뒤져 얘기해주고 싶은 맥락을 전달해주지 못했는데, 부디 한번 읽어보시라 권면하고 싶다.), 더 더군다나 권해주고 싶은 이들은 과학이라면 알레르기를 앓는 트라우마를 가진 인문애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말장난같은 분류기준. 인문-자연-공학이라는 비참에 목도하고 있지만 느끼지 못하는 불감의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다. 최소한 삶의 결을 따라가다보면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느끼지 않을까하는 최소한의 오독이 나의 것이다. 부디 그럴 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아질 수 있는 분기점은 마련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주제넘은 책읽기의 결과이다.
그러고보니 결과위주의 강요가 되어버렸네 ㅁ. 아니면 말구 정신으로 세뇌한다. 부디 책상머리에 놓아 두셨으면..... 정말 몇년을 혼자 공부한한 것보다 나을 것이다. 안내하는 삶의 길들이 여러생각들을 스며넣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지 않았던 의구심들이 당신의 마음에 깃들인다면 당신의 마음의 풍선에 바람을 온힘으로 불어넣고 싶다. 만약 참*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서슴지 않고 이책을 먼저 건네드릴지 모른다. 이 책을 품으신다면 이미 당신의 마음과 내마음은 한참 먼길을 같이 가고 있을지모른다. 설명하기 버거운 시간 당신과 나는 훨씬 재미난 실험들이나 재미나 꺼리들을 함께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뱀발 2. 그의 삶이나 지금을 들여다보며 그런 생각이 든다. 68의 여운이 끊기거나 어느 한순간 소멸된 것이 아니라구. 여전히 [--려는] 움직임들이 상황을 만들어가고 이어진다는 것. 문화의 자장아래 다르게 성숙될 수밖에 없다는 점. 시간의 공백이란 것이 거대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움직임과 그 확인에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 자본은 늘 움직임의 촉수를 들이밀고 있기때문에 과학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과 연결점이 중요하듯, 이런 움직임을 틀거나 다르게 흐르게하기 위해서는 비과학에 대한 노력만큼 비자본에 대한 앎과 예방이 중요하다는 점은 반면교사이다. 윤리의 문제는 그 지점에서 생기는 것일 것이다.
-책갈피(COOK!!)--
그들의 저작은 논리정연하고 우아했다. 그들은 매력적인 논리로 설득했다. 자코브, 모노, 울망, 그들 만큼이나 뛰어난 앙드레 르보프, 그리고 그들의 학생들과 함께 매일 점심식사를 하면서, 나는 그들의 과학철학에 지속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종교, 즉 실험과 이론의 지도 원리인 단순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이는 열렬한 개종자였다. 모노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모델이나 이론이 옳지 않을 수도 있지만, 추한 모델이나 이론은 반드시 틀린 것이다." 54
나폴리의 체류 기간은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정치적인 형성기였다. 나는 나 자신이 나폴리 사람들이 지닌 생활양식의 여러 측면에 끌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어두운 일면이 있는 그들의 문화적 관행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이전에 이처럼 강한 개인적 상호 관계에 익숙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격노, 협상, 또는 사랑이나 섹스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개입이었다. 나는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네가 정치적 변화를 믿는다면, 한 문화에 포함된 이렇듯 많은 긍정적 요소들을 어떻게 유지시킬 것인가? 수세기-또는 수천년-에 걸친 오래된 문화적 관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러자 내가 막 매료되기 시작했던 좌파 정치에 내재한 견고한 교조적 경향성 중 일부가 덜 매력적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117
나폴리에서 지낸 짧은 기간이 단순한 해결책에 대한 내 의문을 강화시켰고, 나의 정치에 (그리고 내 과학에) 인간적 요소에 대한 강한 요구를 불러일으켰다.
[민중을 위한 과학]은 68혁명의 분위기 속에 많은 과학 관련 분야와 직업들로부터 활동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초기에 영입된 회원들은 주로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조직이 급성장하면서, 기술 기반의 산업에 일하던 과학자들, 과학적 훈련을 거의 받지 않았으나 과학기술의 발전이 초래할 결과에 경각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중고등하교와 단기 대학의 과학 교사들도 가입하였다. 회원들은 미국과학진흥협회의 1969년 12월 회합에서 "과학의 유감스러운 상태 The Sorry State of Science" 라고 이름붙인 세션을 조직하였다. 나는 이 세션을 지역 공영TV를 통해 보았는데 거기서 분출되었던 도전의 힘에 놀랐다. 처음으로 메이저급 과학 학술회의가 과학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의미있는 토론을 다룬 것이다. 수많은 청중들이 과학의 오용을 성토하는 젊은 과학자들을 보게 되었다. 132-3 --> 격월 잡지발간 [과학교사그룹]조직 --> 교사워크숍 , [전국과학교사협회, 전국생물교사협회]에 발표하기 위한 수업자료 준비..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민중을 위한 과학]은 갈등적인 경향들의 혼합체였다. 회원들에는 무정부주의자들도 있었고 맑스주의자들도 있었으며, 아무런 고정된 이념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사회적인 관심을 지닌 과학 노동자들도 있었고, 대항문화에 의해 강력하게 영향을 받은 비과학자들도 있었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과학적 진보의 호혜적인 잠재력과 파괴적인 잠재력 양면을 모두 인식하고 있었지만, 회원 중 일부는 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에 의해 추동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이한 경향들 사이의 긴장은 생산적 활동의 시기를 중단시킨 논쟁들로 분출되었다....나는 그러한 지침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1년 넘게 지속된 간부회의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만일 [10월리그]가 그 뜻을 이루게 되면 [민중을 위한 과학]은 유사종교적인 교리를 위한 단지 또 하나의 고립되고 재미 없는 대변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과학으 유감스러운 상태"세션 후에 미국과학진흥협회의 연례회의때마다 정규적으로 워크숍을 열고, 시위를 벌이고, 청원서를 돌렸다. 그 결과 미국 과학진흥협회는 과학과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세션들을 자신의 프로그램에 흡수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후 산하에 많은 행동그룹들이 새로 탄생하였다. 139
나는 서서히 입장을 바꾸었다. 과학발전을 멈추게 하는 것이 우리가 우려하는 오용을 반드시 방지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부정적 결과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유전학에서의 새로운 발전들에 반대하기보다는 과학 발전의 오용을 부채질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자세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대중과 동료 과학자들에게 다가가 사회적으로 특정한 가치를 내장한 주장들이 객관적 과학으로 위장해 있음을 폭로하는 작업을 수행하고자 했다. 163
우리는 이 프로젝트의 우여곡적 중 일부를 논문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는 과학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통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사건의 경과를 실제 일어난 대로 기술하는 것이 그 자체로 유익할 거라고 느꼈다. 우리는 처음에 논문 초고를 일급 과학 저널 두 곳에 차례로 보냈다. 우리의 논문 첫 문장은 "사연인즉슨 이렇다...."로 시작했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두 저널의 심사원들은 이런 논문 작성 스타일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냈다......이 논문 초고를 하나의 이야기로 제시하기로 한 우리의 결정은 과학의 역사적-철학적-사회적 영향에 대해 내가 지닌 관심과 나 자신의 과학 연구를 통합시키려 애쓴 한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나는 과학의 과정이 교과서에서의 설명이나 대중매체에서 전달하는 이미지에 의해 어떻게 이상화되는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250-1
흥미로운 과학적 발견들이 그런 단선적 과정의 산물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과학의 작동에 대한 잘못된 설명은 인간적 요소, 잘못된 판단, 놀라운 발견, 직관의 번득임, 심지어는 우리를 과학으로 향하게 하는 열정마저도 빼먹어 버린다. 이는 또한 과학 연구를 계속 해나가기 위해 우리 모두가 처음에 갖고 시작해야 하는 편향과 가정들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낭만화된, 그러나 이음새 없이 상이 수반하는 한 가지 결과는 과학을 응당 있어야 하는 곳보다 더 높은 지위에 놓게 되는 것이다. 251-1
1997년 하버드 의대의 박사과정 프로그램 이사회는 우리가 가르치는 "생물학에서의 사회적 쟁점들"을 대학원생들의 비판적 독서에 중요한 강의로 지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강생의 수는 극적으로 증가하였고 대학원생과 학부생 모두가 참여하는 강의가 되었다. 2001년에는 이 수업을 드고 과학과 사회의 쟁점들을 좀더 탐구하려는 열정을 갖게 된 일부 학생들이 이 주제에 관한 일련의 정기 학술 회의를 발족시키는 데 자문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해오기도 했다. 285
(몸을 바꾸는 일. 몸의 시선으로 나를 녹이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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