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니 거대한전환의 마지막장을 온전히 읽지 못했는데(해석본과 본문), 반납을 망설이고 찬찬히 음미하면서 본다. 그런데 역시 읽는 사람마다 방점이 다를 수 있구나 한다. 다음에 읽게 된다면 스스로도 다를 것이니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책망의 요인이 될 수 없다.


" 우리시대에서 이제 인간은 사회 실재의 현실 앞에서 스스로 체념하게 되었으며, 이는 인간이 예전에 믿었던 모습의 자유가 종말을 고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렇게 가장 밑바닥의 체념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시 새로운 생명이 솟구치게 된다. 사회 실재의 현실을 불평 없이 묵묵하게 받아들인 이상, 인간은 이제 자신의 힘으로 제거할 수 있는 종류의 불의와 비(非)자유라면 모조리 제거해내고 말겠다는 그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된다." 이것이 책을 마무리짓기 일곱번째 전 줄에 적혀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랬고 행복한 것만 생각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굳이 불행을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고 그래도 생각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삶이란 행복하게만 살 수가 없다. 대부분 삶의 면역력은 아픔, 슬픔, 체념에서 나온다. 그래도 살겠다는 - 삶의 공간은 아쉽게도 죽음이나, 체념에서 소중한 것을 얻게 되는 연유로 - 그 실제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지금 아프고 힘들더라도 그것이 나-너의 공간에서 배우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자 우리의 자산이란 것. 먼저 삶의 소중함을 겪는 일이라고 여겨야 된다.


루쉰은 현실을 온몸으로 겪으며 철로된 죽음의 방 이야기를 한다. 알려주는 것이 그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그래도 단 한사람이라도 그 상황을 알게될 때 아주 희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말해야한다고 했다. 인생의 바닥을 본다는 것이 어쩌면 자유의 지평을 넓히는 지렛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니, 슬픔과 아픔, 절망을 너무나 외면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행복과 소유만 배우게 되고 그렇지 않은 반대편을 배울 길이 철저히 차단되어 오히려 극단의 선택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볼 때 폴라니의 체념은 항상 인간에게 힘과 새로운 희망의 샘이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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