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계약이 국가를 창조한다면 사회적 언약은 사회를 창조한다. 사회적 계약은 권력에 관한, 즉 권력은 정치 영역 안에서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반면 사회적 언약은 서로의 차이를 넘어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사회적 계약은 통치에 관한 것이고 사회적 언약은 공존에 관한 것이다. 사회적 계약이 법과 그 집행에 관련된 것이라면 사회적 언약은 우리가 공유하는 공동의 가치와 관련된 것이다. 사회적 계약은 잠재적인 강제력의 사용과 관련되지만 사회적 언약은 도덕적 합의, 공동의 가치 그리고 공공선을 위해 함께 일하도록 이끈다. 235
계약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양쪽 모두가 이득을 얻는 것이다. 반면 언약에서는 양쪽 모두가 서로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234
사회가 우리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다면, 정부는 사악성에 의해 생겨난다. 전자 우리의 감정을 통합하여 행복을 장려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담당한다면, 후자는 인간의 악덕을 억제시킴으로써 이를 추구하는 부정적인 기능을 담당한다...어떠한 상태에 있어서든지 사회는 하나의 축복이다. 반면 정부는 가장 훌륭한 상태일 때조차도 하나의 필요악에 지나지 않는다.--페인 [상식] 성서의 주된 관심사는 사회에 있었다. 정의, 연민, 인간 존엄, 복지,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의 관계, 부의 동등한 분배, 과부, 고아, 이방인들과 같은 힘없는 자들의 사회적 수용 등의 문제와 관련된 위대한 사상들은 사회적 측면에서 시도되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성서를 해석하고 사회계약과 사회적 언약의 차이를 이해하고 표명한 인물이 토마스 페인이다. 227-8
철학은 체계로
서의 진리를 가르치며, 성경은 이야기로서의 진리를 가르친다. 철학적 진리가 무시간적인 것이라면 성서적 진리는 시간 안에서 규정된다...이야기하기는 언약의 혁신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248-9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과학과 달리 이야기는 구체적인 것을 강조한다. 이야기는 공간 및 시간의 구체적 배경을 담고 있다. 이들은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과학과 철학에서 그래서는 필연성을 나타내는 신호이지만, 이야기에선 그렇지 않다.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확신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하기가 인간됨의 일부인 이유이다. 이야기는 인간이 느끼는 시간 경험을 재요약한다. 이야기는 기억을 창조하며, 기억은 정체성을 창조한다.250-6
뱀발.
1.
언약을 도덕적 행위로 본다는 한계,
여러 부족들을 어떻게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시킬 것인가란 문제와 다름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인식때문이다. 현재의 영국은 구약성경 시대의 이스라엘이 겪었던 문제의 답이 언약이라는 것이다. 언약은 계층제나 전통의 힘을 빌리지 않고 새롭게 통합된 시민적, 정치적 정체성을 창출한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적인 바탕이다.
2. 저녁 쪽잠을 자고나니 책이 마음에 걸려 다시본다. 책을 주요부분을 보며 몇번 접을까 했는데 계속 여운이 남는다. 언약이란 추상성도 그랬고, 다문화주의에 대한 나머지에 대한 주문도 그러하여 크게 줄거리에 벗어나지 않아 수긍을 가지만 구체적이지 못해 정독의 필요성까지 있을까 하였다. 성서도 그렇구 더구나 구약에 대한 관심. 몇몇 끌리는 부분이 있어 아마 완독을 하게되지 않을까 한다.
3. 사회에 대한 관심들, 개인이 아니라 이어진 것에 대한 책읽기가 이어진다. 그 한계. 그리고 다른 관점 역시 숙성되었다기보다는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가 하기도 하는데, 책들의 행간이 이어져 경황이 없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