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마지막장 발제 시작 전에 도착하다. 20년대 후반 일제시대 문화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9장 삼대에 나오는 진고개, 연애, 포르노그라피, 청춘, 편지 등등 일제시대 일상에 관한 소묘가 덧보태진다. 그 가운데 한 질문과 논의가 눈에 띈다. 우리가 일제시대라는 타이틀을 붙이지만 정작 그 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인은 어떠했을까? 반일감정이 노골적이었을까? 압제와 수탈과 조금 거리감이 있지 않을까?
자본의 이식과 더불어 번창하는 것, 지금에서야 일제시대를 반추해서 어떻게 살아냈을까?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시대를 벗어나고자하는 의식을 갖는 사람은 드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그 시대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사진, 희미한 기억들을 접붙이다보면 별반 흥청망청하는 지금과 달라보이지 않는다. 성병이 절반이 걸릴 지경이고 유행병에 여기저기 멋내기 바쁘고, 커피, 차한잔에 기웃거리는 일상이란 오히려 지금의 변화와 풍요에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 더욱 근사할 것이다.
뒷풀이자리에도 이어지는 얘기지만 '지금'에 대한 감각을 갖는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친일이라는 것이 문화정책을 넘어서고 노골화되고, 이후의 역사적인 자리매김으로 더 강력해진 것이지, 그 시대를 살아내는 지식인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이것도 위험한 발상이지만 열가지 백가지 시선의 하나라고 여겨줘도 괜찮겠다 싶다. 획일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삼사십년뒤, 넉넉히 해두고 일제시대 문화정책 국면을 반면삼아 칠십년뒤에 이것저것 역사와 기억을 꿰다보니 친일이 아니라 친자본이라고, 그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제 먹고 살 것만 관심이 있어 얼마나 냉대를 하며 기껏 지식인들이라는 것이, 일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라는 것엔 안중에도 없고 친일이 아니라 친자본을 했던 시대라는 것이 반추된다면, 시대의식이란 것도 없다고 한다면 어떡하겠는가? 숱한 지식인들은 어떻게 하면 친일보다 더한 친자본을 해서 안위를 보전하려고만 하였다는 평가가 주류라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그 시대 할아버지 할머니는 단란스럽고 골프란 잡기에 빠져서 하루에서 어떻게 하면 돈불릴 생각만 해서 사회에 대한 감수성이 백지에 다다른 암흑기였다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이렇게 도식화하여 말을 한다는 것이 백해한 것이 짝이 없지만, 질문의 행간에 나누고 싶기도 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십년전의 결빙된 기억을 반추해내는 분도 있어 어줍잖게 말씀을 되받기도 했다. 그리고 몸의 유대에 훨씬 익숙하고 예민한 분들의 삶을 행간으로 유추를 해본다. 그분들의 삶을 자세히 보지 않았고, 세미나 자리에서 논의나 몸짓들로만 한 것이 얼마나 소통에 있어 빈한한지 세삼 느낌이 든다. 많은 분들의 아픔이나 동선에 대한 이해나 앎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 그저 텍스트와 질문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보잘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짓을 늘 해왔는지에 대한 돌이킴도 있던 날이다. 유난히 달은 밝고 달은 맥주잔 안에도, 그(녀)대의 눈에도 당신의 마음에도 맺혀있는 것을 늘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친다는 것이 말이다.
뱀발. 오늘 하루도 참* 일로 바쁘다. 촬영차 오신분들, 부모님, 교복차림의 고딩. 참* 도색을 위한 이사로 위**이 고생을 하시구 말이다.
뱀꼬리. 정신이 없다. 어제 경제모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 얘기로 일찍 나서서 올라오기도 했지만, 살림살이에 대해 맹한 개인으로서도 구체적이고 치열한 고민이나 접근이 절실하다고 여긴다. 지난달말 김수행교수님의 자본론 강연에 대한 지역열의, 그 반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울림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으면, 때를 놓치면 살림살이에 대한 논의의 진척도 지지부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동시에 솟아오르는 것 같아서이다.치밀하고 치열하고 삶의 대안, 활동의 대한으로서 경제학, 경제에 대한 앎과 공유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추진하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