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각컨대, 희망이란 본시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없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에는 길이 없다. 걷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1921.1 "

노신의 글 [고향]의 마지막 문단이다. 하지만 그 이전 장면들을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마지막 문단을 기억할 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희망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가슴이 덜컥하였다. 윤토가 향로와 촛대를 갖고 싶다고 했을 때,(아니면 재테크와 자기자식교육만 몰빵한 그(녀)를 보았을 때)...언제쯤에나 그런 것을 잊을 셈일까 하여 속으로 웃었는데, 지금 내가 생각하는 희망이라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낸 우상이 아닐까? 단지 그의 소망은 비근한 것이고, 나의 소망은 먼 것일 뿐이었다.

망연해진 내 눈에 멀리 해변의 초록색 모래사장이 떠올랐다. 머리 위의 짙푸른 하늘에는 둥그런 금빛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라고 쓴다.

그 문단은 그렇게 말미로 이어진다. 허나 그가 이야기하고 싶던 것은 그 이전 문단일지 모른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허나, 나는 그들이 서로 같은 기분을 갖고 싶어한다는 느낌 하나로 나처럼 괴로움에 몰리는 생활 속으로 다 같이 빠져드는 것도 원치 않았다. 또한 윤토처럼 괴로움에 지쳐 시달리는 생활 속으로 다 같이 빠져드는 것도 원치는 않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괴로움 때문에 거칠어져 가는 생활 속으로 다 같이 빠져드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생활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이 일찌기 경험한 일이 없는 새로운 생활을......"

그는 우리가 일찌기 경험한 새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새로운 생활을 나누고 싶지만, 그 절망같은 현실과 비근한 소망이 자신의 희망보다 더 현실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편취하길 좋아한다. 그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이어진 것인지는 짐짓 모르체하거나 회자되지 않거나 하면서 말이다. 



2.

그는 [여백을 메우기 위한 글]에서 젊은이를 대단하거나 한편 폄하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며 수구주의자의 힐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

" 오늘날 면학에서 '이성의 친구를 찾아 사랑을 속삭이는 것'까지 그 모두가 일부 유지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엄격하게 남을 책망하는 것이 그 역시 '발열 5분간'의 발생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자기가 어떤 슬로건-영국이나 일본의 상품 불매운동 등-을 선택하여 실행할 때 단식하면서 7일간 계속하거나 또는 눈물을 흘리면서 한달 동안 계속하기보다는, 면학하면서 5년간 계속하거나 또는 연극을 보면서 10년간 계속하거나 또는 이성의 친구를 찾으면서 50년간 계속하거나 또는 사랑의 말을 속삭이면서 100년간 계속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고 했다.

"아무리 느리더라도 쉬지 않고 질주하면 설사 낙후하거나 실패하더라도 반드시 목적지에 이르기 마련이다. 1925년 7월 8일"

나는 어찌 이 마지말 말이 1.의 [걷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보다 더 좋다. 설사 낙후하거나 실패하더라도 반드시 목적지에 이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 한주-한달-오년-십년-오십년-백년의 앞 글이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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