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트의 박사논문 가운데 몇개의 장을 번역한 것이다. 돌려줘야하는지라 발췌하여 읽다. 몇가지 메모 -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반론. 정반합의 논리는 그 틀 안에 있는 것을 긍정하게 하는데, 실제 핵폭탄이라든가 부정의 부정으로 무화시키고 다른 지평에서 사고를 이어가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n번째의 자연, 유물론화되고 역사화된 존재는 당대의 상상력의 한계에 의해서 그 경계가 정해진다. 그리고 푸코를 이런 의미에서 다시 해석하는데, 주체를 오히려 능산적 자연의 위치로 데려왔다고 해석한다. [제국]이전의 행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2.
속도에 대한 단상 - 새들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자유롭게 날기 위해 뼈ㅅ속을 비우고, 머리를 가볍게 하고, 날개를 만든 것을 보니 아무래도 너무 빠른 것은 자기를 잃는 것이 아닌가 한다는 폴 비릴리오의 말을 빌린다. 원근법, 직사각형, 직선, 곡선 등 주제가 다양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책표지 디자인이 파격적이다. 추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기차가 만들어지고 기차 차창으로 펼쳐지는 속도에 물든 색의 겹침이 일상화되면서부터라 한다. 추상, 섞임. 원근, 오감의 변화에 대해 부담을 줄이면서 편하게 역사의 변곡점들을 이해할 수 있을 듯 싶다. 이전 제목이 눈의...라고 하는데 끌린다.
3. 가볍게 보고 싶은데, 몇몇 눈에 띄는 디자이너 이름만 남겨둔다. 장폴고티에,랠프로건,겐조다카다,클레어 맥카델. 패션 100년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
4.
저자보다 주제가 마음에 들어 보는데, 최근 저자의 암에 대한 투병소식이 앞글에 나와있다. 여러가지 하고싶은 것, 은연중에 남은 건축계의 갈등과 여운, 책에 대한 욕구를 번갈아 보게 된다. 예술의 전당, 도시의 설계와 기획에 대해 솔직히 마음이 가질 않는다. 살아가고 있는지, 살아지고 있는지 죽음을 넘나드는 심경의 파고가 온다. 사경을 헤매었지만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저자의 건강이 염려되고 쾌차를 바라지만, 책을 내야한다는 강박이나 대가가 된다는 것은 그 욕심을 줄이거나 완벽하지 못한 성찰에서 오히려 나오는 것은 아닐까? 여백의 목소리가 보이지 않고 책에도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이미 유사한 책들이 너무나 많이 나온 이유도 있고, 나는 이런사람이다라는 자랑이 너무도 많이 섞여있어 불편하기도 하다. 최고로 최선의 노력이 아니라 오히려 미진했던 것, 꼭 해보고 싶은 것...이라면 다시 책을 찾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야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