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을 훑어본다. - 이*태위원의 세계금융위기와 잠정적 대안들, 하*수 - 지역에서 희망찾기: 개론의 성격인 듯하다. 좀더 세밀하여 감탄을 자아낼 수 있는 안들이면 좋을텐데. 다소 일반적인 이야기다. '삶의 질'에 대한 코멘트, 하지만 지역주민이 참여할 수 없는 이유, 참여가능한 경로에 대한 고민, 기발한 방법이나 아이디어는 없을까? 싶다. 이*태위원은 런던 G20회의 미국의 시스템변화에 대해서 논한다. 금융의 대응력이 런던회의로 다소 안정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하는데, 이후 지속성 여부에 대해 세부적으로 논한다. 논거가 좀더 활발하고 다양하거나 다른 전문가의 의견이 보태지면 좋을 것 같다.

[추방과 탈주], 고병권, 그린비 2009 - 그는 이야기한다. 환자가 덜 아픈 어제를 그리워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병이 어제 이미 시작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오늘 넘어야 하는 것은 어제 넘어야 했던 그것이다. 대중들이 지난 정부와 지난 여당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이유는 어제의 증세와 오늘의 증세를 왕복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대중이 부와 권력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시간과 공간 그 어느 것도 보장받지 못한 불안할 존재로 전락한 것, 자기 나라 안에서 자기 정부를 잃은 내부난민으로 떠돌기 시작한 것이 과연 오늘의 일인가. 분명히 어제와 오늘은 규모도 다르고 수준도 다르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가 낳은 야수이고, 오늘은 지난 십 년의 숙성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매개나 조정보다는 명령이나 통보형식을 띠고 있다고 했지만, 어찌 보면 매개나 조정, 합의 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사라졌다기보다 명령과 통보, 추방의 체계 안으로 흡수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여야는 정치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기 위해 조정하고 합의한다. 여전히 언론들은 여론을 매개하고 전달한다. 여전히 시민단체들은 운동을 조직하고 대의한다. 그러나 매개와 조정, 대의는 그 자리에서 내려진 결정에 의해 배제되는 사람을 산출하고 있다.

추방, 그것은 지난 십여 년간 학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 준다. 탈주,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전조이다. 길 위의 무수한 대중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증언이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예언이다.

2부 3. '앎'은 '삶'을 구원할 수 있는가 - 현장인문학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은 지식을 받아들임에 있어 자신의 삶을 참조하는 것 같다. 물론 이 사람들 대부분이 학력이 낮다는데서 일부 연유하는 특징일 것이다. 그러나 앎이 다른 앎을 참조하지 않고, 곧바로 삶을 참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앎이 삶을 참조하고 있기때문에, 그 배움이 곧바로 삶의 변화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앎의 신체성]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정상성'이라는 것, 우리는 우리 시대의 지각구조, 우리 시대의 공통감각을 문제삼아야 한다는 것, 오랫동안 철학자들은 우리가 '현장인문학'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즉 재소자나 노숙인, 여성, 어린이, 장애인 등을 결핍과 미숙의 존재로 이해해 왔다. ... 진리란 한 사회가 가진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오류이며, 그 사회에 고유한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인문학자들이 갇혀 있는 감옥이다. [비정상성 되기]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여성들의 삶에서 생각하기)], 조주현 옮김, 나남, 2009 -서구과학과 기술을 제국주의적 기획으로부터 가장 덜 혜택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 매순간 억압받는 사회집단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때 그 집단은 "우리의 삶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다릅니다"와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입장론은 집단경험들간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지식으로 간주해야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논쟁의 가능성을 열어놓습니다. 이것이 더욱더 악명 높아지는 서구 인식론과 과학철학의 "저발전"을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첫번째 조치입니다. "서구의 인식론적 위기"는 또한 서구 남성성의 위기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샌드라 하딩

하딩은 연구결과의 객관성을 증대시키기위해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하기를 권한다. 이것은 타자의 삶의 관점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것으로서 체계적으로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삶의 관점을 택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딩은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이 모두 각각의 사회적 위치로 인해 현실인식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왜곡되어 있지만, 피지배집단의 삶의 위치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 지배집단의 삶의 위치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보다 덜 왜곡된 지식을 산출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가치중립적 객관성을 비판하였다.
2002, [페미니즘과 과학], 이재경 박혜경 공역, 이화여대출판부

[니체와 악순환-영원회귀의 체험에 대하여] 피에르 클로소프스키,조성천옮김,그린비 -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두바퀴 탈 것 - 자전거의 역사문화오늘], 데이비드 V. 헐리히,김인제옮김
[네그리 사상의 진화],갈무리
[꿀벌없는세상, 결실없는 가을],에코리브르 

 

 

 

 뱀발. 발길이 뜸했는데 책방을 오랫만에 들르다. 신간서적란에 맘에 두던 책들이 있어 여러권 챙기고, 강연자료 복사물을 읽다. 병어찜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졸음이 잠시 다녀가신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자전거의 사진은 진작 나왔으면 짝퉁채널 만들때 안성맞춤이었는데 아쉽다. 꿀벌없는 세상은 지식채널에서 방영된 바가 있다. 오늘 잠깐독서엔 당연 졸음에 맞춤인 히딩의 난해한 이야기다. 부제가 여성의 삶에서 생각하기인데 당황스럽기도 하고 간학문을 넘나드는 모양이 이해도 되긴하지만, 덧붙인 책들을 읽지 않으면 되지 않을 듯하다. 사회 속에 embeded한 과학의 이해는 이해될 법도 하지만 혹 읽게된다면 그 진전이 딱딱한 글만큼이나 지지부진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조주현님의 번역이 이어져있다. 고추장님의 글은 최근 3-4년간 수유+너머의 동선이 담겨있다. 현장인문학-노숙자,교도소-의 행간이나 생각들을 따라 읽을 수 있어 좋다. 사회적 독서 프로젝트의 흔적도 담겨있다. 앎의 신체성, 몸의 말이, 몸과 머리, 가슴의 연대에 대한 생각이 겹쳐진다. [고뇌의 원근법 - 고흐편] 화가의 신체성과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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