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정원을 배경으로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 콧수염과 시선. 대학에서 청중들에게 연설중인 장면. 그리고 그의 글을 읽는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나를 해하고자 한 개는 물에 빠져도 끝까지 몽둥이로 때려야 한다. 아니면 그 물에서 나온 개에게 언제 또 물릴지 모르므로 때려서 혼 줄을 내지 않는 이상, 그 개는 나도, 너도 물어자빠뜨릴 것이다. 개에게 보편적인 가치나 중립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 그의 개에 대한 이야기는 몇편이 더 이어진다. 발발이, 그리고 개의 근성들. 어쩌면 김훈이나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개만도 못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불편도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개만도 못하는 인간과 짓거리들을 보고 개를 보며 아이 내새끼 내새끼하며 끌어안는 아이러니의 불편함이 자리하지 않고선 하루도 넘어설 수 없다.


나는 오늘도 가학을 하며, 그것이 사랑이라 말하고, 싫어하고 협박에 고통당하면서도 교태를 부리고, 부려야 하는 일상과 만난다. 그리고 그 변태의 되돌이표를 겪는다. 나는 오늘도 창의,가치와 수평이란 사탕발린 아흔아홉가지의 똑같은 말로 세뇌당한다. 몸은 노예인데 주인의 입을 가진자들의 아이러니와 맞닥뜨린다. 세뇌를 당하면서도 좋은 말이라고, 그래도 옳은 말이라고 몸에 주입하는 학대하는 일상을 만난다. 견뎌내는 것인지 버티어내는 것인지 현실의 외줄은 일찍감치 재미를 감금시켜버린다. 미소를 차압당한다.


나는 오늘도 어처구니없는 일상과 만난다. 민주주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고 징계를 하는 현실을 만나고, 생사의 기로에선 해고자들의 투쟁을 만나고, 알짜일을 하고 해고되는 비정규직을 만나고, 자본에게 회사를 차려 표현의 자유를 상납해야한다는 개짓는 소리를 만난다. 그리고 마름이 되어 주인보다 더 열심히 물어뜯는 개들을 만난다. 불편하지 않게 한다는 마름의 논리와 마주선다. 애초에 논리도 가치도 없던 인간들이었기에, 가치를 들이댈 필요가 없던 우리를 나무라며 그 근성만 있는 개들의 무리를 만난다. 돈만 보면 침을 질질흘리는 무리들을 만난다. 아무런 부끄럼없이 돈이라면 환장을 해서 부끄럼에 불감이 걸린 군상들이 버젓이 고개들고 다니는 세상과 만난다. 그리고 그 고기 한점에, 그 비릿한 냄새를 그윽하게 들숨으로 맡는 인간들의 숲을 거닌다.

 

 

 

 

 

 

 

 

 

 

 

 

 

 

아직 '페어'하지 않으므로 '페어'플레이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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