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동대지진 - 3만명 가운데 6천명이 학살되었는데 이는 일본 정부의 유언비어에 의한 것임이 일본총리의 글에서 밝혀졌다.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언론통제로 보도되지 못했고, 결국 입소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그럼에도 일본으로 조선인들은 이주하게 되는데 그 비참함은 더했다. 더구나 조선인은 건강하다는 통념은 힘든 채탄작업을 감당하게 만든다. 일본인 상업학교에선 역으로 조선인 폭동을 가정한 군사교육이 실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황을 아우슈비츠기념관이나 중국당국의 노력과 달리 아무런 진상규명을 하려하지 않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2.

의열단 투쟁 - 조선총독부, 종로 경찰서에 폭탄 투척도 많이 하지만 불발탄도 많다. 역으로 탄압의 명분을 주게된다. 이때 단재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에서 그동안 지나친  준비론, 외교론, 민족운동도 아닌 폭력민중혁명이자 아나키즘의 원래 이념처럼 자유주의자이가 공동체주의자였다. 이글의 단재의 사상전환을 가져왔음을 확연히 볼 수 있다. 김산의 말처럼 이런 의열단단원은 특별한 신도처럼 생활, 수영 테니스로 최상의 컨디션을 늘 유지하고..쾌활함을 유지, 기막히게 멋진친구들, 그리고 사진찍는 것을 좋아했다 한다.

3.

이런 의열단도 일왕부자 폭살 계획, 일왕궁성 폭파시도가 이어졌으나 관동대지진 와중 조선인 학살 등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박열부부는 사형언도를 받았고 옥중결혼을 올리고 무기로 감형되었으나 그의 부인은 의문의 자살을 한다. 이후 북으로 간 박열은 74년 74세의 나이로 북에서 타계한다.  이후 의열단은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로 분열한다. 대중운동이 상당한 수준이 되었고 이념이 공산주의 이념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놈들의 테러리즘에 대한 직접살해가 이어졌고, 사기가 떨어진 대부분은 공산주의와 합류하게 된다.
 

4.

출세 - 재가자 스님이 되기 위해 집을 떠난다는 의미의 '출세'라는 단어가 정반대의 의미인 세속적인 성공으로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 20년대 이 무렵이다. 어느날 갑자기 등장해 이목과 관심을 집중시키며 성공을 거두는 '출세작'이라는 일본어는 지식인들의 욕구와 부합, 국가적 배경위에 입신양명이 기회가 없는 식민지 백성은 '양명'보다 '출세'를 추구하게 되었는데 이는 대중문화의 성장과 부합하기도 한다. 순사가 잡아간다라는 말 또한 이때 생기게 되는데 관의 우표를 태워 바르는 치료법이나, 경찰은 염라대왕보다, 사천왕보다 무서운 존재가 되며, 유행성 감기 예방책이 되는 등 몸에 체화되기 시작한다. 이처럼 관은 공포와 숭배의 대상으로 자라나게 된다. 

5. 

처세의 상식이 된 사회주의 - 20년대 3.1운동은 한국 사회주의의 어머니, 사회주의 단체들의 창립, 조선여성동우회, 사회주의 신문이 된 조선일보는 24년 9월부터 사회주의 논조를 시작하여 33년까지 기조를 유지한다. 동아일보 역시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소개, 옹호 비판 논설, 기사로 균형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최근에서야 지역별로 사회주의 활동사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이 뒤 조선 공산당 창당, 사회주의자들의 반기독교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말미 마무리. 밤이 늦었습니다.




補 1.

[질]. 우리, 남과 나를 가르는 선, 내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 우리의 울타리는 늘 실선으로 분열의 가속화한다. 왜 열린 곳, 품은 곳이 없을까? 읽으면서 그 과정 내내 지역을 나누며 갈래갈래 찟겨진다.
[의]. 1차 세계대전 이후 흐름들은 세계사의 흐름 속에 이어진다. 청산리-봉오동전투 속에 우리를 되찾겠다라는 의식보다 신생독립국들이 형성되면서 민족해방운동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임시정부가 조직된 것도 통합이 되는 경향이 전제되어야 한다. 의열단에 대한 질문도 그런 연계성 속에 보아야 한다.
[응]. 한편 러시아혁명이 성공하면서 볼세비키의 흐름도 함께 보아야 한다. 그리고 1920년대 사회주의 흐름이 인입된다. 그리고 코민테른의 틀 속에 움직이게 된다. 신간회도 그러한데, 코민테른의 지침이 현장속으로 들어가라는 것 부분을 인지해야 한다. 일본은 치안유지법이 만들어지며 사회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국면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답]. 관동대학살은 일본내의 소문이 구술을 들으면 우물에 독약을 탄다부터 조선인이 죽이러 온다라는 유언비어는 극에 달했다고 한다.  

 補 2.

[질]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것이 없다.
[의] 20년대는 간접통치와 분열정책, 친일파 양성이 기조였다. 유지들을 만들어내고 관리하게 된다. 세금을 내게 되거나 토지소유자를 분류를 하게 된다. 최하 50정보에서 끊어(천마지기) 관리하게 된다. 충남의 부자 김갑순은 1500정보였다고 한다. 위로 공연하는 정도가 아니라 여러 편의를 의도적으로 제공한다. 지역에 문제가 생길 경로 부탁할 통로역이 되는 간접통치방식이다. 이광수의 자치론도 이런 방향에서 나오게 된다.(타협적 민족주의자)
[응] 나서지 말라, 학교의 급훈 근면성실도 이때의 잔재이고, 이때 나온 소리다. 사람들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며, 동아일보,조선일보는 성공사례 게재 등으로 이어진다.


 

-빨갱이란 말의 기원과 지금에 대한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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