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기쁨이나 보상 같은 것들에 대해 시장이론가들이 떠올리는 기본적 이미지는 공적이고 사적인 향연에서 나누는 음식이 아니라 홀로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사랑을 나누거나 콘서트에 가는 것, 심지어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그런 경험들만 생각해 보더라도 우린 이런 경험들에서 비롯된 쾌락이론이 시장이론가들의 그것과 상이한 것인지를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557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실재를 물질로 구성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힘", 잠재성, 잠재력 등으로 부른 것들, 즉 대부분의 실제 생활 혹은 "미결정적" 상황들 속에서 궁극적으로 예측할 수도 없고 또 재현되지도 않는 그런 요소들은 간과했기 때문에 물리적 실재를 설명할 타당한 이론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일상적 지식으로는 미처 꿰뚫어 볼 수 없는 문제들의 이면으로 우리를 안내하곤 하는 사회이론이 어째서 이렇게 상식적인 해결이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작 우리의 시야를 더 흐리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이 사회 혹은 문화라는 개념 뒤에 숨어 있는 파르메니데스적 관점에 놓여 있으며 바로 이것이 우리를 사회적 형식과 개인적 행위 동기 사이의 풀 수 없는 패러독스를 이끌고 있다. 549
시장원칙에 기초한 이데올로기의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은 그것이 사회로부터 욕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일체를 제거시키고 행복을 단지 사물과의 관계로만 사고하게 만드는 순간 행사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자가당착적 이데올로기가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이런 상식으로 질문할 수 있는가? 논리를 허용해서 아무런 준비없이 그저 이끌려가는 것은 아닌가?) 551
욕망이론이라기보다 좌절된 욕망의 이론은 아닌가? 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것 역시 이런 욕망들 혹은 에너지의 부수적인 효과뿐이다. 욕망에 대한 별도의 이론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선언이라 할 만하다 553
구조라고 부르는 것이 일련의 고정된 형식이나 원칙이 아니며 사회구조 내의 행위와 그 변화가 조직되는 방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모종의 규칙에 해당되는 것들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해질 때 진정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을 은폐하는 데 성공하는 규칙들, 바로 그런 규칙들이야말로 그 유용성과 완성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554
|
|
| |
|
 |
뱀발. 줄을 그어놓거나 접어놓은 부분들을 다시 적어둘 짬이 나지 않는다. 거꾸로 마지막 흔적부터 되돌아오다 중동나버렸다. 주장이 파격적이다 못해 시원시원한 구석도 있고, 평소 궁금증에 대해 원하던 바이기도 해서인지 잘 읽히기도 했는데, 조금더 흔적을 남기고 새겨볼 요량인데, 과연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급한대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