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교원대 신희경 교수님이 강의해주신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아이, 정신적 비타민으로 만든다> 녹취록을 올립니다.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께서도 힘차고도 섬세한 강의를 녹취록으로나마 느껴보아요.^^




-------------------------------------------------------------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아이, 정신적 비타민으로 만든다.







안녕하세요. 비가 와서 제가 어디서 강의할 때 비오는 날 세분 네분 오신 적도 있는데 의외로 많이 오셔서 감사드리고 대단하신 분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강의할 건 지난주와 달리 어디서 들을 수 없는 귀한 정보가 아니라 사실 여기 있는 분들이 알고 있고 한번쯤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제 소개를 하면 작년까지만 해도 노은 주민이었고요, 작년 초에 선사박물관 짓고 있었는데 작년까지 서울을 왔다갔다 하다가 올해 상담소로 가면서 이사 가게 되었습니다.
강의가 제목에 다 들어있어요. 대략 아실 것 같은데 첫 번째 주제는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 아이가 “엄마 나 너무 행복해” 하면 성공한 거죠. 두 번째 주제는 행복은 아이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 행복은 운이 아니고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이로 하여금 행복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걸 깨닫게 하는 것, 그렇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부모는 아이에게 정신적 비타민을 주는 것이라는 겁니다.

수업을 하기 전에 아직 자녀가 아기이신 분도 있을 테고 다 크신 분도 있을 텐데.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으세요? 앞의 계신 분 어떠세요?

답변: 마음이 따뜻하고 당찬아이.

뒤에 계신분 어떠세요?

답변 : 날마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아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특히 요새 아이들 보면 중요할 거 같아요. 여기저기 끌려 다니는데 내가 살아있구나를 느끼면 행복한 아이겠죠.

답변 :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아이.

이것도 굉장히 다른 관점이네요. 또 무슨 얘기가 있을까요.

답변 : 공부하면서 고민하는 아이.

그냥 공부하는 게 아니라 고민하는 아이인 거죠. 아마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다양하진 않았을텐데. 골자가 자기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얘기고 모든 대답의 전제조건은 공부를 잘 하면서가 많죠.
제가 상담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뭐냐면 처음에 왔을 때 아이의 문제가 어느 정도 개선이 되었다고 느낄 때, 여러 가지 문제를 갖고 왔다가 이제는 아이가 식구들이랑 밥을 먹는다던가 할 때 제가 늘 기다리던 반응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부모님들이 좀 나아진 것 같은데 이제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하는 거예요. 상담할 때 그 얘기 좀 해주세요. 라고요.
불과 몇 달 전만하더라도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그것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학교를 가야하고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고 지적호기심을 갖고 가장 왕성한 나이에 그걸 강조하는 게 이상하지 않죠. 문제는 아이들이 하기 싫어한다는 거예요.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아이는 거의 없어요.
공부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나중에 뭐 할지 하면 고민해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 하고 몸이 실제로 움직여지지 않는 다는 거죠. 전반적 특히 우리나라는 안나 프로이드가 이랬다 저랬다 얘기하는 양극단의 모습을 아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는 거에요. 어른이 이런 모습을 겪는다면 정신과를 가야 하지만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탐색하는 시기에요. 실제로 아이들은 탐색을 한다는 거예요. 굉장히 감성적이죠. 때로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이 혼란으로 벗어나고 싶은 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죠. 


통계가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자살률 일위 자리를 놓치지 않아요. 자살 시도는 미국에 비해 0.4% 적지만요. 미국에는 생각을 하면 반 정도는 시도하고, 우리나라 아이들 생각에 사분의 일 정도 시도해요. 어떤 사람은 이 통계를 보고 애들이 장난하는 거라고 하는데 사실 아이들이 그런 힘든 문제를 표현 못하고 속으로 삭히고 있는 겁니다.
서울시 초중고 아이들의 행동장애 공경성, 폭력, 일탈 같은 정신병 유병율이 25.7%가 됩니다. 초중고 학생 무작위로 검사한 겁니다. 4분의 일은 불안장애에요. 시험에 대한 불안과 폭력에 대한 불안을 합치면 거의 조사대상 50%는 정신적으로 병이 있다는 얘기죠.
다른 진단 도구를 사용해서 봤을 때 전체 22.16%가 사회적 철회 증후를 갖고 있어요. 두 번째로 높은 게 내재화에요.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닌데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 삭히는 거죠. 우리 아이들은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정신질환 지난 3년 2배가 늘었고 그 중 1위 우울증이고 1,2,3위를 차지한 게 정서장애입니다.
행동을 하는 애들은 괜찮은 겁니다. 이 아이들이 문제죠. 전혀 내색하지 않으니까요. 다른 것보다도 주관적 행복 지수가 20개 조사국가 중 20위로 꼴지 했습니다. 성적이 높은 학생도 잘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도 행복하지 못하다는 거죠.
상담하는 사람은 애들의 문제를 느끼고 과장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오랫동안 쌓여 놓은 심각성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

주요 상담은 상담내용은 다양한데 공부를 해야 하는데 잘 안 되거나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안 되는 경우의 내용도 있어요. 그 다음 관계에요. 그 다음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다, 그래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거죠.
부모도 똑같아요. 앞의 말만 바꾸면 되요. 애가 공부해야 하는데 안 하거나 친구가 없거나 하고 싶은 게 없고, 인정해주고 싶은데 인정해줄게 없는 거죠. 부모들은 애가 바뀌어야지 내가 뭘 해결하나 할지 모르고, 어떻게 문제 해결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시기도 하죠.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얘기해보면 아이들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부모가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입시제도가 바뀌어야 함, 좋은 과외 선생님을 만나야함 이런 얘기를 해요. 부모님들은 야단치지 말아야 하는데 애가 야단맞을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함, 잔소리를 안해야 하는데 안하면 엉망이고 교사가 바뀌어야 하고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 걸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세요? 공통적으로 자기 문제가 빠져있고 제가 하면 그제야 내가 하겠다는 식이죠. 외적 통제의 삶에 대한 왜곡된 신화를 갖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삶은 외적 통제에 의해서 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거의 신화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없습니다. 나의 행복과 불행이 외적통제를 통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불행을 극복하는 것도 외부에서 온다고 보죠.
내가 불행하고 행복한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냐가 결정합니다.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내 행복을 쥐어 주는 거죠. 결국 나의 사랑도 다른 사람의 손아귀로 넘어갑니다. 이것이 외적통제입니다.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외적 통제가 어느 때 가장 많이 하게 되냐면 생존 위협을 받을 때입니다. 하지만 결국 외적통제는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가 없어요. 왜 외적통제가 효과가 없냐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죠. 나도 내 마음대로 안되요. 그런 경우가 있다면 상대방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우리는 왜 통제를 하고 통제를 받아야 할까요. 외적통제가 효과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모르고 그 걸 벗어나 어떤 행복이 있는지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한 거죠. 사회 나가서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데 누군가 이거 해 하면 되게 좋아합니다.  

외적 통제 의존하는 자녀 방식이 두 가지에요. 아이들은 타협을 몰라요. 어른들도 타협이 어렵죠. 이것을 다른 말로 파충류의 감정양식인데 나보다 약하면 강하고 강하면 약해지는 두 개의 양식입니다. 외적 통제가 상대방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투쟁하고 회피하는 양식이 나타나요. 늘 갈등 힘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죠. 어렸을 때는 늘 힘의 관계로 느끼게 되고 상대방이 순응해야만 문제 해결이 된 것으로 생각해요.
회피하는 자녀들이 나타나는 방식은 순응하던지 이런 부모의 보상에 전전긍긍 달콤한 칭찬을 목말라합니다. 보상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어요. 야단을 치면 동기부여가 없어져 큰 실패만을 피하는 형식으로 가게 되죠
. 늘 벼락치기 하는 아이가 그런 아이죠. 시험공부 십분 십 오분 하고 공부 뭐뭐 다했다. 얘기하는 아이는 공부했다는 걸 부모한테 알리는 것인데 공부가 공부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틀렸을 때 부모의 반응에 집중하게 되요. 


12시까지 대청소하고 아 피곤해 하면서 칭찬거리를 찾는데 이런 아이는 아직은 살아있는 아이고 이것보다 더 심각한 아이가 문제해결을 포기한 아이에요. 학습된 무기력감은 어차피 해도 안 될 거야. 될 리가 없다는 식의 생각을 가져와요. 또는 우울함과 무감동을 낳죠.
회피하는 부모도 있는데 부모가 자율성을 핑계로 한 방치하는 경우입니다. 간섭하게 하고 싶은데 부모도 내말을 안 들으니까 나중에는 아예 방치하게 되죠. 그런 경우도 부모의 역할을 포기한 게 되는 거예요. 또는 이중적으로 구속하기도 하는데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더 얼마나 괴로워 바라. 지켜보는 것도 그런 경우죠.

투쟁하는 것도 회피하는 것도 어떤 것도 아이와 부모의 행복을 주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대학간다고 바락바락 대들면 관계 소홀해지고 정서적으로 거부하는 게 점점 느껴지게 되죠.
어느 경우에도 그래서 결국 선택이 중요해요.
그 선택 사이에 중요한 게 시행착오입니다. 저렇게 가면 안되는데 하면서 내버려 두는 게 쉽지 않아요. 분명 이리로 가면 평탄한 길인데 그럼 안 되는데 붙잡고 싶죠. 부모가 시행착오 경험을 했을 때가 더욱 심하죠.  


나도 담배 피워봤어, 나도 술 먹어봤어. 내 얘기를 하면서 이끌라고 하죠. 자기가 시행착오를 겪어 봤으니까 너는 안 돼 그러면 아이들은 아빠도 폈으니까 나도 피울래 하면서 반항하게 되죠. 부모가 강요하면 시행착오를 하지 않는게 아이에게는 목표가 되요. 저 곳에서 벗어나야 게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아무도 막지 않으면 어디로 갈이지 고민하게 되죠. 시행착오를 막는 게 부모는 아이를 생각해서라고 하지만 아이가 고민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안전하지만 행복한 것은 아니죠. 내가 행복하고 안 행복한 것은 내가 선택해서, 내가 선택한 것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있구나. 깨닫고 얻어지는 거예요.





바로 이 시간 여기서 할 얘기가 그 행복입니다. 시행착오가 아이들의 선택을 막고 있어요. 요새 외국 대학생들을 보면 고등학교 때까지 하고 다는 걸 보면 걱정되다가, 대학교 가면 다 티셔츠에 청바지입고 다녀요.
고등학교 남자애들을 보면 30대 아저씨가 다 되요. 그런데 그 아이가 대학을 가면 몇 시간씩 앉아서 곰발바닥 닭발바닥 하면서 놀아요. 미친 듯이 술 먹고요. 에이플러스 주셔서 감사하다고 학생 어머니도 있고요. 교보문고에 가면 여학생 쪽지 들고 돌아다니고 옆에서 아버지가 서서 책들고 다녀요. 대학 헬리콥터 부모라고 하죠. 이런 부모들이 시행착오의 경험을 뺏습니다. 왜 안하게 하냐면 그 경험 잘못했다가 완전 주저앉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는 거예요. 실제로 그래요. 어떤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긍정적으로 반응하는데 어떤 아이들은 부정적으로 반응하죠. 긍정적이게 하기 위해 부모의 역할이 필요해요. 상처를 받았을 때 돌아가는 회복력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하죠.   


그 회복력이 어디서 생기냐면 부모의 정신적 비타민을 주는 거예요. 병에 걸렸을 때 면역력 키워주는 게 비타민인데 정신적으로도 비타민이 필요하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게 내 팔자에 무슨 자식복이 있겠어 체념하라는 게 아니고 아이의 그 모습에서 아이의 장점을 찾는 거죠. 격려해주는 부모의 비타민을 먹는 경우 멀리 갔다 다시 오는 아이는 나중에 다시 가지 않죠.
부모의 뜻대로 하다보면 의사 정체감에 혼란이 와요. 아이의 내적인 힘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 그 내적인 힘 정신적 비타민이라는 겁니다.

우리 아이는 몸이 재고 행동이 빨라서 답답하지 않다. 엉킨 전선을 잘 푼다. 성격이 급해서 결단력이 빠르다. 우리 아이는 웃음 소리가 커서 옆의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우리 아이는 옷 배합을 잘 한다. 우리 아이는 남의 슬픔에 공감을 잘 한다. 지 할 일 안 하고 남일 참견하는 게 아니라 성격이 털털해서 이기적이지 않다. 내성적이라 조심성이 있다. 외향적 친구가 많다. 레고를 만들 때마다 새로운 것을 만든다. 말이 없어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다.
등등 어떤 것도 장점이 되요. 아이들이 훨씬 잘 잡아요. 엄마는 좀 이런 건 있어요. 이런 건 좋아요. 합니다. 부모님들은 훨씬 힘들어해요. 공부에 매여 있어서 그렇죠. 기껏해야 발견하라고 하면 한 두 개 정도 밖에 안 나옵니다. 이 아이가 갖고 있는, 있는 그대로 모습에서 내가 진짜 괜찮은 사람이구나 소중한 사람이구나. 느끼게 해줘야 해요. 이 느낌이 아이를 대우해 줍니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옆에서 얼마나 아프겠니 같이 슬퍼해주는 거 이외에는 없어요. 스스로 일으키는 아이가 되는 아이는 방황하지 않습니다. 나 어떻게 할까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비타민을 많이 못 받은 아이는 감정적 반응이 앞서요. 정신적 비타민이 있으면 슬프고 화나지만 그래서 나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요.

내적통제를 믿는 아이는 눈치를 보지 않아요. 부모의 가치관이 서로 다르고, 칭찬과 비난 이 있을 때 눈치가 심하면 아이들은 안전한 중도의 길을 간다. 큰 칭찬도 안 받지만 야단도 안 받는 안전한 길로 가는 거죠.
내적통제를 갖는 아이는 우선적으로 나의 느낌 나의 생각에 집중해요. 그런 자신의 감정과 생각 표현에 자유롭습니다. 감정과 생각을 구분할 수 있고 그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요. 엄마가 그렇게 얘기할 때 엄마가 너무 싫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이지 모르겠어. 고개 숙이고 가만히 있다가 부모 욕을 쓰는 애들은 외적 통제를 믿는 아이에요. 


한번은 제가 독일에 있을 때 아이가 학교에 갔는데 아이가 건방지고 반항적이래요. 이해가 안 되서 물어봤더니 야단을 치면 자기를 안 보고 고개를 숙인다는 겁니다. 상대방이 너에 대해 지적을 하는데 안 보는 것은 너는 떠들어 나는 안 듣겠다는 뜻이라는거죠. 우리 문화 자체가 특히 어른 앞에서는 숙이게 되어있어 어려워요.
아이가 분노나 슬픔이나 좌절의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성공하신 거에요. 엄마나 죽고 싶어. 여자친구랑 헤어졌어. 이런 아이는 말이죠. 선택에 신중합니다. 내가 선택해서 만족을 지연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입니다. 스스로 세워놓은 목표에 대해 참을 수 있죠.
내적 통제를 믿는 아이는 부모의 사랑과 칭찬을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격려는 사안에 따른 거고 그것과 상관없이 언제나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행복이 선택이라는 점을 이해합니다. 인간관계에서 갈등회로에서 벗어나 성공회로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 내적통제를 믿는 아이에요.

사건이 뭐냐면 학원에서 몇 명이 귓속말을 해요. 외적 통제를 믿는 애들은 제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해 불쾌감 분노를 느끼고 나중에 행동은 선생님은 좋지만 애들이 이상해서 안 간다 로 되어 버리죠. 저 아이들 때문에 나는 학원에 갈 수 없다고요. 내적통제를 믿는 아이는 플라스 회로에요. 귓속말 하는 것을 봤을 때,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아이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쓸 필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는 없는 거다. 정말 그런 얘기를 했는지 확실히 알 지도 못한다. 그 아이들이 불편하다고 학원을 그만두지 않겠다로 결론이 나요. 따돌림을 당해 온 많은 아이들을 보면 전교에서 자기를 따돌리는 아이들 두 세 명입니다. 수많은 잠재적으로 친구가 될 아이들을 안 봐요.
외적 통제를 믿는 아이는 공부를 많이 했는데 시험을 못보면 역시 실력있는 학원을 다녀야 한다며 불쾌 분노 짜증을 내요. 내적통제를 믿는 아이는 시험성적이 안 나와 등수가 떨어졌을 때 나의 어떤 선택이 이 결과를 낳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실망은 하지만 좌절은 하지 않아요.
외적통제를 믿는 애들은 집에와서 비난 받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걔는 그냥 찍어 썼는데 다 맞아 해요. 아이들은 늘 그걸 하고 있어요. 그건 부모가 외적 통제를 했기 때문이에요. 주말에 티비볼 때 내버려 두는 건 너 어디 잘 되나 보자 하는 게 아니라 걱정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거예요. 이처럼 성공회로를 돌아야 해요. 우리 기억 속에 좋은 세계의 사진첩이 있는데 자신의 욕구가 사랑받고 존중받았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어요. 성공회로를 도는 것은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해요. 격려해주고 아이들은 사진첩을 꺼내보고 다음에도 힘을 낼 수 있어요.

행복 결국 자신의 욕구와 관계의 조화에요. 내적통제를 믿으면 어떤 좌절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지각하고 사람들을 대해요. 자신의 욕구와 타인과의 관계에 조화를 이루는 것이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에서 윈윈하는 길이죠.
이것 뿐 아니라 갈등조정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는데 우리 사회는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강하게 믿어왔어요. 낮은 수준이나마 함께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그 사이에는 수만 가지 길들과 단계가 있음에도 한꺼번에 뛰어넘으려고 해요. 그래서 뛰어넘을 수 있으면 자기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갈등은 내가 투쟁을 해서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윈윈해야 한다는 거죠. 타협이라면 나쁘게 생각하는데 자녀와 부모관계에서 학습이 필요해요.





질문 : 큰애가 있는데 열 살이에요. 동생한테 강요하는 걸 가끔 봐서 동생한테 그러지 마라고 혼내요 엄마가 나보다 동생을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할까봐 걱정되요. 또 아이가 칭찬에 민감한 것 같아요. 제가 책 읽고 판단해보니 통제를 많이 해서 자존감이 낮지 않은가 싶어요.

답변 :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래요. 선생님 칭찬받고 싶어서 잘하려고 하죠. 그런데 또 아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그 자율성의 욕구를 동생한테 풀고 있는 거예요. 엄마가 볼 때, 첫 아이를 외적 통제를 많이 하죠. 둘째 애는 너그러워지면 나만 늘 당했다고 생각하게 되요. 지금 열 살이니 충분히 바꿀 수 있죠.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너 이거 선택했네 하세요. 반드시. 그럼 아이가 엄마 왜 선택이라고 해 물어봐요. 좀 지나면 그대로 물어봐요. 엄마 그거 선택했어? 이렇게요. 부모가 그 동안 했던 칭찬이 어떤 건지 청소를 했을 때 아이 잘했어. 아이 착해. 라고 하진 않았나 싶어요. 착하단 말 하지 말자고 라디오에서 나오잖아요. 어떤 교사는 교사들이 착하단 말만 함면 쫒아간데요. 자기가 육남매의 넷째였는데 눈에 들 수 없는 서열이죠.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공부를 제일 잘했대요. 어느 순간 공부 좀 하네. 눈에 띄죠. 아 똑똑하다. 아 착하다. 이렇게 듣고 지내다가 엄마 나 이거 하기 싫어 하면 왜 그래 우리 착한 넷째딸이. 이렇게 얘기한다는 거예요. 부모가 자기 기준에 맞춰 착하다 천재다 똑똑하다 하고 또 그 칭찬이 인색할 경우 아이는 그것에 목매달죠. 부모의 사랑과 칭찬을 혼돈하죠. 내가 지금 어떤 칭찬을 하고 있는지. 늘 일상생활에서 하면 바뀌죠.

질문 : 저는 아이에게 가끔 행복하냐고 물어요. 그럼 안 행복하데요. 초등학교 중학교 까지 행복했는데 고등학교 가니까 안 행복하다는 말이 곧바로 나오더라고요. 우리나라 고등학교 청소년 치고 행복한 아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아이들이 안됐다. 부모입장에서 뭘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아이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아이에게 위로나 피드백을 해 줄 수 있을까요?

답변 : 제일 어려운 문제죠. 아이가 고등학교 가서 어느 날 집에 오더니 점심 먹고 5교시에 창문을 보는데 새를 보는데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엄마 이거 정신병이야 물어보더라고요.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엄마에게 할 수 있는 아이는 행복한 것 같아요. 행복하냐고 묻는 엄마도 쉽지 않아요. 행복하니. 아니 했을 때 다 행복하지 않지 다 그러고 사는데 뭘 그런 거 생생하지 말고 네 일이나 똑바로 해 하면 안 되지만요.
힘든 걸 엄마한테 다 펼쳐 보여주게 하면 되요. 행복하지 않은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어요. 이 힘든 학교생활을 견디는 것은 친구에요. 니가 행복하려면 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물어보면 친구라고 답변하면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너는 이 상황에서 무조건 대학가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하는 건지 대견하다. 얘기하면 되죠. 그러니까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보신 것처럼 하면 되요. 자꾸 얘기 보따리를 풀어주시면 되요. 저 같은 경우 상담을 하니까 시행착오를 많이 했어요. 얘기를 하려고 하면 또 시작이다. 하는데 그런 때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 먹이면서 쉬게 하죠.
대학가고 나서 헤매는 아이들이 너무 너무 많아요. 지금 이 아이가 헤매는 모습을 부모는 몰라요. 왜 저러고 있을까. 뒤늦게 혼란스러운 게 많은 거죠.

질문 : 아이가 7세 유치원생인데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울면서 얘기를 해요. 5,6세 때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기면 문제해결을 울면서 해서 걱정이 많이 됐는데. 지금은 좀 좋아졌는데 아직도 자기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려고 할 때도 울어서요.  

-어떤 식으로 해서 좋아진 건가요?
어떤 때는 외면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목록을 적고 어떤 특별한 때에 해주거나 하는 식으로 스스로 해결하겠금 했어요. 친구들 사이의 문제에 있어서도 싸울 때는 관여하지 않는 편이고요.

답변 : 지금 이미 아이가 변화하고 있잖아요. 그 길이 올바른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그대로 가시면 되요. 엄마들 다 알고 있잖아요. 뭔가 더 강하게 떼를 쓰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안돼 안돼하다 이번만 하면서 해주면 안 되요.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 중에 한 분이 매년 수업 반을 맡으면 쿠폰을 줍니다. 수업 안 받는 쿠폰인데요. 반장이 일주일 전에 와서 얘기하고 그 시간에 떠들지 않으면 되는 거에요. 쿠폰 두 장을 잘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해요. 애들이 아까워서 못 씁니다. 그러다가 한 장밖에 못쓰면 억울해서 난리나요. 그 선생님 말씀이 어차피 한 두번 정도 애들이 수업하지 마요 떼써서 안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럼 애들이 떼 쓰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일관되게 하면 떼를 쓰지 않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방법이 맞는 것 같아요.

질문 : 제가 바깥일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저희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이의 욕구와 나의 욕구가 상충해요. 저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하게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하는데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기 권리가 침해되는 거예요. 아이는 집에서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답변 :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독일에서 공부할 때 일이 생각이 나네요. 설문지 조사하고 다녀야 하는데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집에 둘 수는 없고, 데리고 다니자니 얘가 심심해  하던 게 생각나요. 어쨌든 혼자 둘 수 없으니 데리고 간 거죠.
한 달에 네 번이면 타협을 볼 수밖에 없는 사항이죠. 7시부터 10시까지 혼자 집에 있어도 되는데 대신 친척집이나 친구집에 있어야 한다거나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할테니 받으라고 하거나 타협을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사안을 가지고 얘기하는 건 나중에 할 일이고 아이가 같이 있으면서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힘들었는지 다 들어야 되요. 아이들은 놀라운 타협력을 가지고 있어요. 앞부분이 안 되면 싫어 어깃장을 놓을 수 있죠. 그걸 문젯거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접근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질문 : 아들 둘을 키우는데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이에요. 큰애를 시어머니가 많이 키우셔서 1,2학년 때까지 공부량을 많이 못해서 그런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공부하고 엄마한테서 잔소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엄마가 얘가 아직 벗어날 시기가 아닌 것 같은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 저 문제도 굉장히 힘든 문제에요. 아이들에게 네가 원하는 게 뭐냐 물으면 하루종일 게임하는 거요. 얘기해요. 왜냐고 물으면 생각 안 해도 되잖아요. 공부해야 하는데, 숙제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 안 나게 한다는 거죠.
물론 어렸을 때 과잉보호하고 하고 싶은 거해라 한 문제도 있죠. 아이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과부하가 온 거에요. 자기 수준에서 충동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누르면서 공부를 하기가 힘들어 진거죠. 오히려 괜찮은 것은 존중을 해줘서 합의를 해봐야 합니다. 뭘 하고 싶은지 뭘 안 하고 싶은지. 우선순위를 정해서 절대하기 싫은 것은 하지 말도록 그렇게 해서 합의를 보고 어떤 점이 힘드니 확인해야 해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이로 하여금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할 거예요. 특히 우리나라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부모가 열심히 살면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와요. 부모가 자기를 믿으면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금이 좋아요 초등학교기 때문에 중학교 가면 엄마가 다가가기 힘들어요. 지금은 엄마로부터 벗어나야지 이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뱀발. 비단 부모와 아이들 사이의 문제만 아니겠죠. 행복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거나 행복을 돈으로 환원시키는 세상에 살아 행복이 더 팍팍한 것인가요? 행복이란 것에 대해 고민하거나 생각해볼 틈을 만들어야될 사회이겠죠. 아이들이나 부모들이나 어른이만 사는 세상은 너무 외롭잖아요. 옮겨와서 흔적 남겨봅니다. 행복을 생각할 겨를이 있어야 그나마 삶이나 타인과 관계를 고려하는 윤리를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지 않겠는지요. 직접 강의는 듣지 못했지만 감사드려요. 이제서야 꼼꼼이 읽어보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