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자유-사회, 자유만 아니라, 사회만 아니라, 죽음만이 아니라 죽음-자유-사회의 그물이 목에 생선가시처럼 걸려있다. 생각을 꿀꺽 삼키지 못하고, 내내 그렇게 다른 생각들을 넘기다보면, 찌릿찌릿 통증을 남긴다.
원없이 하고싶은 것, 하기에도 삶이 벅찰터인데, 그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에 대한 터부, 금기에 마음이 많이 의아스러운 상태였다. 그렇게 고정된 가치나 생각들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이정*교수의 강연 뒤풀이자리에서 스스럼없이 말하는 그의 기억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최근 서경식님의 김지하에 대비되는, 김상봉님과 만남에 대비되는 생각씨까지 불을 지피고 있는 상태라 마음은 더 착잡한 와중이다.생명, 죽음, 체념, 슬픔, 아픔.....자유...윤리...도덕....
아픔이란 것이 아프지 않은 것, 불감의 영역에서 시선을 넓히는데 기여한다는 것. 애절하지만 공감의 능력을 높이는 것엔 동감하리라. 그런데, 우리들의 가치의 대부분은 자유라는 명사에 슬픔이나 아픔을 연계시켜 한뿌리로 느끼는 것을 거부한다. 대부분 자유를 밀어부치는 논리의 저변은 이것들과 절연의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밀고 나간다. 철학자들의 진폭은 모르겠으나 하나의 가치로 환원하는 사고의 습관은 우리 사고와 가치판단을 잠식하고 있지 않을까?
체념이 자유의 폭을 확장시킨다. 자유의 한쪽에, 아니 양쪽에 체념을 거느리고 사고를 확장시킨다는 일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자유주의자를 존중하며 한편 그들의 선명함에 존경도 하지만, 더 더구나 이러한 쑥대밭같은 현실에서, 그들이 갈구하는 자유란, 침해받지 않을 자유란 사고의 반경은 얼마나될까? 체념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체념이나 슬픔을 안아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싹이 튼 자유일까? 어쩌면 따듯한 온실의 자유라 그렇게 현실의 바람을 만나면 움찔하고 마는 자유는 아닐까?
얼마전 진실을 향하는 자유. 그것은 만인이 평등하게 갖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현실이 진실로 향하는 온갖 열정과 관심을 거봐~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야라는 한마디의 중력으로 모두 떨어뜨리고 마는 현실을 읽은 적이 있다. 평등과 자유를 짝짓는 놀라운 사실에 얼마나 궁금증과 자유를 중도에 차단시켰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진실을 향한 자유. 밀고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당위를 느꼈다. 전문가란 분야란 한계를 짓고, 시인이나 소설가, 극작가, 의사, 변호사란 허울좋은 경계에 진실이나 궁금증을 강금시킨 나날이 부끄러웠다. 진실에는 경계가 없음에도, 무의식적인 구분이 강금시킨 자유의 공간은 무척이나 넓고, 그 즐거움이 무진장하리라는 생각의 자유를 맛보게 된 사실에 놀라웠다.
그런 개인에 출발한 자유의 공간. 그 공간의 한축에 체념과 죽음이라~ 생각의 자유일까? 현실의 자유일까? 가난함이란 것, 아픔이란 것, 슬픔이란 것이 자유를 감금하는 족쇄일까? 인식의 확장과 자유를 생산해내는 자산일까? 몸으로 밀어내는 슬픔과 몸으로 가득찬 아픔. 아마 자유에 손내밀지 못하는 아픔과 슬픔은 아마아마 고통일 것이다. 현실을 견뎌내야만하는 처절한 고통이리라. 거꾸로 자유로 손내밀지 못하는 그것은 상처만 남기는 것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아마 자유를 한손에 든 체념은 자유란 공간의 확장일 것이다. 머리속에서 사유하는 자유가 아니라, 개인의 공간에 잠식당하고 있는 자유가 아니라 아마 너-나의 윤리를 확장시키는 자유일는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