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재회를 하다보면, 만남의 중심이, 표준어가 서울에 사는 중산층의 중산?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말이다하는 듯이,  무의식 가운데 차를 가지고 평균적인 직업, 평균적인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평균적인 사교능력을 가진 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인다.  어느 사이에 기준점이 만들어지고 그 기준에 맞춰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일로 이어지는데, 평균적인인 운영의 기준점이 다양하거나, 그런 여건이 되지 않는 분들을 생각할 수 있거나, 좀더 다른 기준점이 달리 운영되지 못하면, 은연중에 모임의 일상이 그러한 분류,부류로 고착되지나 않나하는 자책의 느낌이다. 

삶의 조건들이 나누어지지 않다보니, 그것은 늘 수면아래에 있다보니, 그럴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 더 못된 일이지만, 가난해지는 것이 가장 환경운동을 많이 농도깊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일상, 느끼거나 나눠지거나 공감의 자리가 얼마나 다기해져야하는 것인지. 문득문득 평균적인 삶, 10%의 표준어에 묻힌 스스로의 일상이 무섭기까지 하다. 죽비를 맞고서야 문득문득 졸음에서 깨는 형국이라니 말이다. 기준점은 내려가거나 많거나....감수성도 문제지만 조건을 만드는 일들이 더 중요한 듯 되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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