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물결
신현정
난 보리밭을 지나면서 취한 척만 했을 뿐이다
보리밭에 들어가지 않았다
마침 거길 지나가는 들병이의 손목을 잡았음만은 시인한다
보리밭에 들어가지 않았다
보리밭에서 종다리가 날아올랐는지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종다리가 분홍 목젖이 보이도록 저렇게 공중에서 재잘대는 것은
그건 종다리가 노래하는 것이다
나는 보리밭 한가운데를 저토록 깔고 뭉개지 않았다
거기서 뒹굴지도 숨결이 거칠어지지도 숨을 포개지도 들썩거리지도
구름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보리밭에 들어가지 않았다 허나
오늘은 보리 까끌까끌 익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거니와
나 이번엔 진짜로 취해봐야겠다
어떠세요. 궁금하지 않나요. 보리한테는 지금이 가을이군요. 맥추....맹추가 아니라 맥추. 저도 별반 보리밭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대학농활에서야 보리배던 기억이 있을뿐, 보리물결이 어떠한지는 실감하지 못했네요. 하하. 그런데 이렇게 유배아닌 유배. 좌천아닌 타천??이 되어 객지에 온지 백여일이 지나버렸쌌네요. 강물보다 바다. 도시에서 맡보지 못한 바다향은 아직 신참내기한테는 물리질 않습니다. 흰 눈이 빼곡히 쌓인 날. 몹시도 춥던 날 새벽. 서서히 동터오는 아침을 맞는 이곳의 공제선? 산과 하늘, 바다를 가르는 선은 아담하고 은은하더군요. 아~. 이렇게 남도에서, 이렇게 깊숙히 남쪽으로 튈 줄이야 미처 몰랐네요. 서설이 길었군요. 그래요. 제가 모두에 보리물결. 보리밭을 바람이 가르는 결의 장관이란 이루말할 수 없어요. 많은 화가들이 남도의 보리밭을 소재로 삼습니다. 저두 바람에 흔들리는 그 장관을 보다 다물지 못한 입을...뒤돌아서면 그립고 그런 정취 가운데 하나. 마음에 들어선 모양입니다. 자꾸 빗나가는군요.
그래요. 제가 드리고 싶은 것은 남쪽으로 튀란 소리입니다. 달팽이 간사님도 계시지만, 달팽이를 로고로 한 슬로시티 운동(이탈리아에서 1999년에 시작했다는군요.)으로 아시아에서 다섯 곳이 선정이 되었는데 제가 있는 남도에 무려 네 곳입니다. 경상도 하동 악양에 한 곳. 이곳 신안 증도, 청산도, 장흥 한곳, 담양 한 곳. 어째 이상하지 않나요.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채 5천명이 되지 않는답니다. 심사기준이 다음과 같다고 하던데. 한번 볼까요.
'인구 5만 명 이하에 생태계와 전통 산업이 잘 보존되어 있고 유기농법에 의한 지역 특산물이 있을 것. 그리고 24시간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이 없어야 '.
제가 아는 하나 더.는 5백km 이내의 농수산물?(제 기억이 정확하다면)로 먹을거리를 해결해야한다는 조항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데. 좀 냄새가 나지 않나요. 아마 테마관광이나 여행상품이 본격적으로 나올 것 같지 않나요. 지자체나 관에서 가만 놓아둘 것 같지 않죠. 유명하다면 순식간에 휩쓸어버리는 우리네 심보 역시 일조할 것 같지 않나요. 아무래도. 아무래도. 그곳 주민이 아닌 것 같지요. 무슨 테마동물원?의 한 곳으로 전락할 것 같은 우려말입니다. 왜 씨앗이 생겼는지는 불을 보듯 잊어버릴 것 같은 생각말입니다.
5만명이 먹고살거리를 갖고 24시간 편의점이 없고 패스트푸드같은 자본의 접근점이 없고, 그 지역에서 나는 친환경생산물로 먹을거리를 꾸민다는 것은 무척이나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늘 오대양육대주의 먹을거리가 식탁에 올라오고 있는데. 경제의 세계화, 전염병이나 병의 세계화와 더불어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지표를 나타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말입니다.
전부 도시로 향하거나 도시의 중력에 흡인된 시골의 공간은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5만이하의 느린마을이 지향하는 것은 정말 괜찮은 접점이기도 할 겁니다. 수도권의 한 백분의 일만 도시의 주택을 팔고 서로 짜고 낙향한다면 그것도 대단한 장관일 겁니다. 그렇게 몇만의 도시가 수백곳만 생긴다면, 그 남쪽이 의도된 것이라면 아마 수도권에 중독된 일상을 가진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주택-교육-노후의 짊을 벗어나 한번 쯤 주판알을 튀기게 될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귤이 우리나라에만 들어오면 탱자가 되듯. 그래요. 일본은 스무여곳을 신청했다고 했는데 인위적인 냄새가 나서 다 퇴짜를 맞았다고 합니다. 일본 소설 남쪽으로 튀어도 무색하게 말입니다.
아마 남쪽으로 튀어란 소설에 매료되었다면 한번쯤 섬이 1004곳이나 있는 신안 어느 섬이나 보리밭이 아득해 혼미해지는 강진 어디쯤이나, 대나무가 빼곡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담양 어느 곳으로 튀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헌데. 단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연습삼아 당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연습한번 해보는 겁니다. 아마 당신이 살고 있는 마을, 동, 시내에 마음의 그물망을 펼쳐보세요. 분명 너의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을 겁니다. 세계화된 전염병과 경제의 파고가 그냥 출렁출렁 파도로 넘실거리게 하지말고, 한번 방조제나 모래성도 괜찮을 겁니다. 연습삼아 한번 만들어보는 겁니다. 거래도 한번 합심해서 두레로 해보는 겁니다. 품앗이를 부기에 넣어보는거죠. 친환경농산물도 가까운 학교 급식소위나 먹을거리의 위험을 서로 조금조금 줄여보는 겁니다. 그렇게 늘 파도치면 우박이내리면, 소나기만 내리면 그저 그대로 맞는 것이 아니라, 우산도 써보는 것이고, 어깨동무도 해보는 겁니다.
그래요. 그렇게 남쪽으로 튀는 연습을 해보거나, 남쪽을 만드는 연습을 하거나, 단 서로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고 그리는 남쪽을 세밀하게 드러내놓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마음에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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